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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눈썹 May 09. 2023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 갖고 태어나지요

달콤 쌉싸름한 초콜렛 - 라우라 에스키벨 작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자신의 불씨를 지펴 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이 책은 욕망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불피우는 이야기이다. 요리의 힘을 아는 이에게, 사랑의 이름으로 억압받는 자식들에게, 생명의 무거움을 아는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페이지를 넘기면 목차에 열 두개 달, 열 두개 요리 이름을 따 매 장의 제목이 붙어있다.부엌에서 대부분의 서사가 이루어지는 이 책은 일상적이지만 섹시하고 단순하지만 뜨겁다. 


첫 장면은 부엌에서 시작한다. 티타의 손녀가 할머니를 회상하며 양파를 썰고 있다. 티타의 집은 막내딸이 죽을 때까지 엄마를 돌보는 관습이 있다. 막내로 태어난 티타는 태어나자마자 가사노동을 도맡는다. 티타는 페드로를 사랑하지만 결혼을 할 수 없어, 티타 대신으로 언니 로사우라와 페드로가 결혼하며 비극이 시작된다. 티타는 힘들 때 뜨개질에 집중한다. 아픔의 크기만큼 그녀가 만드는 담요 길이도 길어진다. 


연금술 같은 묘한 작용이 일어나 그녀의 존재 자체가 장미 소스, 메추리 고기, 포도주, 음식 냄새 하나하나 속으로 스며들어 녹아내린 것 같았다. 티타는 그렇게 달아오른 채취를 풍기며 육감적이고 섹시하게 페드로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매 장마다 다사다난한 에피소드가 발생하지만 상황이 종결되면 곧이어 새로운 요리가 등장하며 삶은 이어진다. 티타의 레시피를 따라가다 보면 사는 게 별 건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하는 태평한 마음이 든다.부엌은 티타의 실험실이고, 아지트이다. 부엌에서 그녀는 반짝인다. 모두들 부엌 일은 싫어하지만 티타의 요리는 환영한다. 그녀의 요리는 마치 마법을 부린 것처럼 사람들을 그리움에 몸살 나게 하고, 열정에 불타게 하고, 슬픔 속에 침잠하게 한다. 가장 인상적인 요리는 3월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 음식을 맛본 페드로의 몸 곳곳에 유혹의 에너지가 퍼진다. 노골적인 묘사가 없어도 에로틱하다. 


거세할 상대를 잘못 찾았으며 자기를 거세시켜야 했다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티타는 거세를 잘못해서 죽은 수탉이 버려져 있던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우리에게 제일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은 보통 가장 가까이 있다. 드라마 <글로리>에서 동은이 엄마가 그랬듯, 이 작품의 최대 빌런은 엄마 마마 엘레나다. 마마 엘레나가 죽은 후 발견된 편지들을 보면 그녀도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공식적으로는 혼란한 세상에서 거친 삶을 살았기에 가족들에게 규범을 지키도록 하여 보호하고자 한 것이지만, 마음 깊이 한 부분에서는 젊은 티타의 사랑과 풍요로운 삶에 대한 가능성에 질투를 한 건 아닐까 추측해본다. 생전에 티타를 억압했던 마마 엘레나는 죽은 후에도 따라다니며 티타가 페드로와 가까워질 때마다 경고한다.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마마 엘레나의 환영은 티타가 ‘당신을 증오해요!’라고 말하자 연기로 사라진다. 어쩌면 티타를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엄마 자체라기 보다는 엄마에 대한 양가적인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차가운 입김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는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장 강렬한 불길이 꺼질 수 있으니까요.

사랑하는 이와 가정을 꾸리지도 못하고, 애지중지 먹이고 키운 조카를 붙들어 놓을 수도 없는. 사랑의 욕구를 채울 수 없는 티타는 조카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정신을 놓아버린다. 정신병원으로 보내질 뻔한 그녀는 다행히 브라운 박사의 집에서 점차 회복한다. 그녀는 끝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책을 덮자 다시 태어난듯 생생한 기운이 돋는다. 삶을 이겨내는 힘은 각자에게 맞는 형태로 스스로 지니고 있다는 희망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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