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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Prologue]
'삼류 소설'을 쓴다.

'라 페르 백작부인' 소설을 소개하기 전.

by 랜치 누틴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것이 꿈이었던 나.

중학교 1학년 때 공책에 연필로 꾹꾹 눌러썼던 삼류 단편 소설집이 학년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국어 선생님조차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고 칭찬을 하셨었다. 그래 난 커서 작가가 될 거야. 노벨문학상도 내 차지라고.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나는 작가와는 너무나 먼 공대를 들어갔다. 가끔 소설 과목을 들으려고 국문과를 기웃거린 것이 다였다. 이후 나는 소설 쓰기와는 너무나 먼 길을 걸었다.

하지만 돌고 돌아 작가의 꿈으로 다시 이 브런치를 맞이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려고 자신 만만하게 신청을 하였으나 2번의 고배를 마셨다.

첫 번째 가입 부적합을 알리는 메일에서는 "왜?"라는 의문이 들었고.

두 번째 가입 부적합 알림 메일을 보고는 짜증이 밀려왔다.

결국,

세 번째 신청에서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었다. 작가가 되었다고 알림이 온 순간, 나는 기쁜 나머지 환호하며 직장 동료에게 자랑을 해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밀려드는 책임감이 날 부담스럽게 했다. 네 번째 다가온 감정이었다.

'적어도 브런치 작가는 좋은 글을 써야 해. 블로그에 쓰듯 아무렇게 쓸 수 없어. '

다시 글을 읽어보고 고치고 읽어보고 고치고. '일요일에는 올려야지'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침에 항공사고 비보를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니야, 구할 거야. 그럼 당연하지.'

하지만 내가 바라는 바와 다르게 10년 전의 악몽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그런 내게 다섯 번째 다가온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나만 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살아남았다. 그러나 언제 내 차례가 올지 모른다는 불안한 감정도 스며들었다. 단지 순서를 모르는 번호표를 받고 긴 대기줄에서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여섯 번째 불안한 감정이 요동처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오늘 창 앞에서 한 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고통이지만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일곱 번째의 감정은 '슬픔'이었다.


이태원 사고 때 듣던 음악이 있다.

운전하고 들으며 눈이 뜨거워져 걷잡을 수 없었던 음악.


J.S Bach - Ich Ruf Zu Dir, Herr Jesu Christ, BWV 639 (주 예수 그리스도여. 나는 당신을 부릅니다.)

그리고,

J.S Bach - Well Tempered Book.2 Fugues NO.9 E Major, BWV 878(평균율 2권. 9번 푸가)

비록 내가 크리스천이 아니지만 이 두 음악으로 마음에 위안을 얻은 적 있다. 다시 느낌 감정은 '위안'이다.


소설 속에서 바로크 시대를 살고 있는 나!

삼류 소설. 아니 아류작을 쓰는 작가이지만, 나는 소설의 주인공들을 깊은 책임감과 불안감, 죄책감을 포함한 그 속에 슬픔과 위안, 고통을 느끼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만들어 버렸다. 어쩌면 고통스러웠던 내 인생의 순간들을 주인공들에게 불어넣어 그들을 '그렇게 힘들게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은 작가의 특권이 아닌가. 이런 오만한 마음을 가져본다.


삼류지만, 아류지만 나름 좋은 소설을 써 보려 한다.

돈키호테도 헴릿도 나의 주인공이 되면 사차원의 복합적인 캐릭터로 변신하는 희한한 마법을 보시길.

그리고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 강인한 주인공들을 마주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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