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_수습변리사, OA(Office Action)을 담당하다
장마가 가고 한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때쯤이었습니다. 수습 병아리 고별리사는 그쯤, 국내에 진입하는 인커밍 건의 번역을 주 업무로 담당하고 있었죠.
사무소마다 세부적인 변리사의 역할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국내에 진입하는 인커밍 건은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우선, 한국에서 특허를 권리화하고 싶은 해외의 출원인이 사무소로 국내 진입 업무를 의뢰합니다. 그러면 사무소에서는 담당 변리사를 지정하여, 출원인의 의뢰 서신을 포워딩해줍니다. 담당 변리사는 해당 서신의 구체적인 요청사항을 확인하고 첨부된 서류를 검토합니다. 문제가 없다면 고객에게 잘 전달 받았다는 확인 서신을 보내고, 일부 서류가 누락되었거나 잘못 작성이 되었다면 고객에게 정정을 요청하는 서신을 작성하죠. 그 이후, 며칠에 걸쳐 명세서 번역을 하고 번역이 완성되면 비로소 국내 진입을 위한 서류를 준비하여 출원을 합니다.
(참고로, 사무소에서 "서신"이라는 단어는 접수 또는 발송되는 모든 이메일을 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외부로 발송되는 모든 이메일은 담당자가 임의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수차례의 검토와 결재를 받아 사무소의 이름으로 발송되는 것이라 "서신"이라는 무게감 있는 단어로 칭하는 것 같아요.)
위와 같이 출원인으로부터 건을 접수받으면, COB(Close of Business: 근무 종료시간을 의미하는 약자로, 오후 6시경을 의미합니다) 이내에 당일 답신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만약에 접수된 서류에 문제가 없다면, "잘 전달 받았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신만 하면 되므로 당일 답신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혹여나 접수된 서류에 문제가 있어서 이의 정정을 요청하는 서신을 작성하게 되면 당일 답신 발송이 꽤나 빠듯하게 진행이 됩니다. 어떤 서류가 누락이 되었는지 검토하고, 어떻게 정정해야 하는지 확인을 하고, 검토한 내용과 정정의 방향을 안내하는 서신을 영어로 작성하고, 이를 검토받고 결재받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죠. 특정 건에 어떤 이슈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건을 배정받았을 때 서류를 촤라락 일사천리로 검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명 페이퍼워크라고 하죠.
변리사 업무는, 그 중에서도 고객과 직접 대면할 일이 거의 없는 인커밍 업무는 매일매일이 페이퍼워크와 이메일과의 전쟁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페이퍼워크가 너무 많아서 대패닉을 많이 한 기억이 있네요. 이 서류는 아까 검토한 서류가 맞는지, 저 서류는 어디에 갔는지, 이 순서대로 철하는 것이 맞는지, 서신은 이렇게 결재받는 것이 맞는지 어버버하다보니 하루가 지나가곤 했죠.
몇 년 전쯤 유행했던 개복치 게임 혹시 아시나요? 꼬꼬마 개복치는 생각치도 못한 이유로 돌연사를 하지만(물이 차가워서, 오징어를 너무 많이 먹어서, 점프 뒤 착수시 충격을 받아서, 눈이 너무 나빠서, 등등…), 사인이 반복될수록 사망률은 줄어들고 강력한 슈퍼 개복치가 되어가죠. 병아리 수습 고별리사도 처음에는 생각치도 못한 일들이 일어나서 대패닉을 했으나(예상치도 못한 급박한 문의를 받아서, 서신을 대폭 수정할 일이 생겨서, COB 한시간 전에 건을 배정받아서, 등등…), 패닉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단단한 수습 변리사가 되어갔습니다. 오후 5시에 건을 배정받아도 문제없었죠. ‘훗, 이런 건 처리는 20분이면 할 수 있어…’ 네, 어떤 일이 들어와도 더 이상 패닉하지 않는 슈퍼 수습 변리사의 경지에 다다랐었습니다.
그렇게 슈퍼 수습 변리사가 되어갈 때쯤, 메일함에 처음으로 OA(Office Action) 배정메일이 꽂혔습니다.
아, OA에 대해 간단히 설명드려야겠네요.
우리나라는 특허청 심사관의 심사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심사청구가 된 출원 건만 심사를 하는 심사주의를 택합니다. 즉, 명세서가 작성되고 출원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심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출원인(또는 제3자)이 출원일로부터 3년 이내에 심사청구를 한 경우에만, 기술분야에 따라 심사과와 담당 심사관이 배정되어 심사가 이루어집니다.
심사라 함은, 해당 특허출원이 특허요건을 모두 충족하는지 심사관에 의해 검토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심사가 이루어지면 곧바로 특허결정이 되는 일은 드물고, 대개 심사청구 후 1년 전후로 의견제출통지서가 발부됩니다. 의견제출통지서란, 담당 심사관이 거절이유와 해당 거절이유를 갖고 있는 청구항을 명시한 서류입니다. 변리사는 거절이유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필요에 따라 출원인과 논의하여 보정 요건을 충족하는 범위 내에서 보정서를 작성합니다. 또 보정의 내용을 설명하고, 그에 따라 거절이유가 모두 극복되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작성하여, 의견제출통지서의 마감일 전에 특허청에 보정서 및 의견서를 제출하죠. 그러면 심사관은 의견서와 함께 보정된 명세서를 다시 검토하여, 거절이유가 극복되었는지, 새로운 거절이유는 없는지 심사를 합니다. 그 결과 기 발부된 거절이유가 모두 극복 되었고, 새로운 거절이유가 없다면 심사관은 특허결정을 합니다. 그에 대하여 등록료를 납부하면 특허등록이 되고, 비로소 특허권이 발생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OA란 Office Action의 약자로, 문언상으로는 특허청에서 발부되는 서류를 통칭하는 용어이지만 변리사들 사이에서는 위 '의견제출통지서 대응 건'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됩니다.
“변리사님, OA건 파일 전달 드립니다. 영역의뢰 필요하실지요?”
OA 배정메일은 담백했습니다. 메일에는 해당 건의 출원된 국문 명세서와 의견제출통지서가 첨부되어 있었죠.
“와! 나 OA 배정됐다?!” OA건을 처음 배정받은 저는, 옆자리에 앉은 동기에게는 마냥 신나 얘기했습니다.
워후, 번역가 탈출 변리사 시작!(몰랐었죠, 사실은 “워후, 칼퇴 탈출 야근 시작!”이라는 것을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