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에도 지금처럼 습도가 높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지대가 높은 곳의 3층 아파트는 저녁이 되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매주 수요일, 가족들이 모두 잠들고, 거실 맞은 편 아파트의 불빛도 잠잠해 질 무렵이면 방에서 나오곤 했다. 형광등이 너무 밝았기 때문에 거실 조명은 켜지 않았다.
여름이면 맡을 수 있는 익숙한 냄새의 왕골 돗자리에 누워 텔레비전 리모콘을 눌렀다. 어두운 조명의 무대, 두 명의 숫기 없는 남자가 쑥스러워 하며 사회를 보는 수요예술무대를 보기 위해서였다. ‘저렇게 진행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매끄럽지 못한 진행, 그들을 보며 환하게 웃는 관객들, 회를 거듭해도 나아지지 않는 어색한 진행은 그들의 전매특허가 되었고,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도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끼곤 했다.
매년 여름이면 한 밤중에 거실 돗자리에 누워 있는 고등학생의 내가 생각나곤 한다.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보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컸던 그 때, 가장 행복하고 편안했던 시간은 그 시간이었다. 지금도 감각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때의 시원한 밤 공기와 돗자리 냄새. 그 시간을 생각하면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그런 좋은 시간을 아직까지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