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llybelly Sep 22. 2020

당신의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_1

아빠가 치매에 걸렸다.

1996년 8월 초등학교 1학년.

기억에 남는 모습은,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아빠가 선풍기를 세대씩 틀어놓고 마루에서 하루종일 티비를 보는 광경. 기억나는 한 이 모습이 아빠가 병마와 싸우기 시작한 첫 모습이다.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아빠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본관 로비에서 쓰러져 뇌출혈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96년의 응급체계와 뇌수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나는 모르지만 아빠는 천만다행으로 로비에서 쓰러져 빠르게 이송되어 수술을 받을 수 있엇다.


8살짜리 꼬마에게 붕대를 감고 가만히 앉아있는 아빠는 병원놀이를 하기 딱 좋은 타겟이었다. 아빠는 TV를 보는건지 허공을 보는건지 모르게끔 시선을 어딘가에 던져놓고 있었고, 꼬마는 한 일주일은 아빠 옆을 빙빙 돌며 의사선생님이 되었다가 간호사가 되었다가 하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이 지나자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다. 원래도 그렇게 다정한 편은 아니었지만 유난히 움직임이 없고 회사도 나가지 않는 아빠를 보며 집안 공기가 매우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때 살 던 집에는 할머니,엄마,아빠, 나 이렇게 4가족이 살았는데 80이 넘은 할머니와 60이 되어가는 아빠 그리고 늘 아팠던 엄마까지 어린나이의 꼬마가 감당하기엔 유난히 늙고, 아프고, 어둑어둑한 집이었다.


늘 집에만 있는 할머니와 아빠때문에 어디 마음대로 나가지도 못하는 엄마가 영 불쌍해 보였다.

"이제 아빠 회사 가! 안 그러면 밥도 먹지마!" 하며 리모콘을 아무리 뺏어보아도 아빠는 묵묵부답이었다. 공무원이었기에 다행히 휴직이 가능했고 2년간 아빠는 마루의 의자 자리를 사수했다.


그때부터 아빠는 재미없고, 어딘가 늘 멍하니 보고 있고, 묻는 말에 대답도 잘 안해주는 그런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 아빠와의 관계는 사춘기가 되기도 전에 점점 소원해졌다. 원래 타고난 성격도 있었겠지만, 뇌출혈로 인해 아빠는 뇌의 상당 부분이 이미 죽어 있었고 약간씩 행동이 어눌해졌다. 




작가의 이전글 남보다 조금 더 외로운 사람의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