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위한 메이커 스페이스, 내돈내산 후기
방배동 42길은 내가 어렸을 때 자주 들락거렸던 길이다. 초등학교 가는 길에 있었으니 당연한 얘기지만, 그때는 메인 골목 뒤에 있는 조금은 더럽고 후진 그런 골목길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이 길을 다시 걷게 되었는데, 사이로 길은 다양한 학원, 카페, 옷 가게 등이 즐비한 골목길이 되었다.
그 길 한가운데 박박이라는 아이들을 위한 메이커 스페이스가 있다. 주변에 아기자기하고 예쁜 미술학원에 비하면 매우 raw 하고 자칫하면 투박해 보이는 이곳이 왠지 모르게 나는 확 끌렸다.
선생님이 작성하신 블로그 글도 읽었는데 교육관이나 철학이 넘 좋아서 당장 멤버십에 가입했다. 가서 열심히 작업하는 아이들을 꿈 궜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시간에 예쁜 결과물을 가져오는 미술 학원에 익숙해진 나는 아무런 결과물이 없거나 정말 터무니없는 ㅋㅋ 작품(?)을 아이들이 가져왔을 때… 실망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가서 원하는 것을 하고 오는 것이라 한 동안 아이가 가지 않아도 강요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특히 첫째가) 생각보다 공간에 자주 들락거리지 않았고 가서도 뭔가 와우 하는 결과물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가 꽂힌 게 있었는지 박박에 가야겠다며 비장하게 나서더니 낫과 바주카 포를 엄청 집중해서 만드는 것을 보면서…
기다려 주면
본인이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본인이 하고 싶을 때
엄청 몰입해서 작업을 하는구나…
그리고 결과물이 평소 내가 접했던 미술 학원의 고퀄의 결과물이 아니더라도… 아이가 너무 흡족해하는 걸 보면서, 기다려 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박 선생님은 아이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가이드를 주고 피드백만 살짝 주신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어려운 거 중에 하나가 뭐냐면… 아이를 믿어주고 가이드만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더 빠르고 좋은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론 실패를 통해 아이들은 배워야 하고 또 아이들이 우리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때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좋았던 것은… 그 공간에 다니면서 친구, 형, 누나들이 준기 작업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 같이 고민하고 작업도 함께 한다는 점이다. 연령, 성별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조언과 도움을 받고 함께 작업한다는 사실이 너무 귀하지 아니한가…
MIT에서는 Infinity Hall이라고 해서 교실의 복도 창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교수, 학생 등이 프로젝트에 서로 간섭할 수 있고 논의를 하여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해 내도록 의도적으로 그렇게 설계를 했다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콜라보레이션, 크리에이티비티… 미래 교육에 필요한 키워드를 동네 작은 골목길에 있는 작업실에서 경험하게 되다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는 것처럼 보인다…
가서 책만 읽고 톱질만 하고 온다…
결과물이 그게 뭐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이가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 걸 하고
크고 작은 실패도 해 보고
친구들과 얘기하고 도와가며 결과물을 내고 성취감을 맛보는…
이런 귀한 경험은 MIT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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