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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un Jul 21. 2023

뒷맛이 씁쓸하더라고요

네덜란드 유학일기 

최근 졸업을 했다. 

길다면 길었던 학부생활동안 이런저런 일들도 참 많았다. 

그중에 한 가지 떠오른 일을 풀어보려 한다. 


'뇌와 심장을 집에 빼놓고 회사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우스갯소리처럼 하던 내 인생에 회의감을 느끼고 떠나왔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과는 반대로, '시키는 대로 할게요'성향은 네덜란드에 오고 나서도 당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닐 때, 마련된 시스템에 나 자신을 맞춰 나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투덜거리면서도 시키면 시키는 대로, 요구하면 요구하는 대로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하기 싫었던 학교 과제나 시험도, 업무도, 그 외의 일들도 위에서 시키는 일은 어쨌든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부끄럽게도,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질 여유 따위는 없었다. 


네덜란드에서 학업을 지속해 나가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저런 과제나 프로젝트에 치이면서도, '뭐.. 시키는 데는 이유가 있으려니..' 했다. 

정기적으로 하는 교수님과의 첫 개인면담에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기 전까지는. 


"너는 내가 요구한 걸 잘 해내는 훌륭한 학생이야. 하지만 그게 니 단점이기도 해."


나름대로 보람찬 학기를 보내고 있었고, 대부분의 과목에서 만족할만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칭찬 같지만 칭찬 같지 않은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본격적으로 뼈가 쑤실정도의 아픈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네가 자라온 문화권에서는 요구한 대로 충족하는 학생이 최고의 학생일 거야. 

하지만 네가 내가 시킨 것을 100% 완벽하게 해냈다고 해서 내가 니 실력과 니 미래를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어. 좀 더 여유를 두고 차분히 너한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정리해 봐. 

너한테 옳은 결정은 너만이 내릴 수 있으니까. 내가 교수로서 해 줄 수는 없는 일이지."


왜인지 모르겠지만 반감이 불쑥 올라왔다. '내가 할 일'이 아님을 상정하는 냉정한 태도, 그리고 '문화권'이 언급된 것만으로도 불쾌한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 교수님 말씀대로라면, 교수님은 '너의 문화권'에서 온 학생들을 선호한다는 말씀이신 거죠?

 '내 멋대로 할 테니까 너는 옆에서 지켜만 봐!'라며 자기 내키는 대로 하는 식의?"


 "좀 극단적인 면이 있지만, 적어도 자네에게는 그런 정신이 좀 받아들여질 필요가 있다고 보이네만."

 

그는 '학습속도나 습득 면에서도 개개인의 특성이나 분야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기저기 들쑤셔 보면서 자신한테 맞는 것을 찾아가는 게 최선의 배움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이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이후, 속상한 마음에 일주일 정도 프로젝트도 전부 취소하고, 학교에 두문불출하며 방에서 칩거하는 생활에 들어갔다. 


물론 교수님의 의도는 내게 충분히 전달되었다. 

당시 끝도 없이 쏟아지는 수업과 과제, 그리고 다양한 프로젝트 참여로 인해 내 체력과 인내심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수업과 과제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빨리 실무능력을 쌓아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제안 들어오는 프로젝트들을 다 들쑤시고 다녔다. 거절해야 할 프로젝트도 차마 거절하지 못해, 억지로 떠맡은 일들도 부지기수였다. 

부족한 잠과 체력에 정작 수업시간에는 병든 닭처럼 억지로 눈 뜨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쳤다. 

( 이후, 해당 교수님과 졸업 후 차 한잔 하는 자리에서 힘들어하는 제자의 모습을 보며 다소 안쓰러운 마음에 꺼낸 이야기였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감사한 마음이다. )



칩거를 끝내고 일주일 만에 학교에 가던 날, 늘 두통에 시달리던 머리가 오래간만에 너무나도 시원했다. 

몸에는 힘이 넘쳤다. 아무 일도 없이 지냈던 그 일주일이 내 몸에는 오히려 약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내심 취소하고 나서 제일 마음에 걸렸던 프로젝트들도 전부 잘 마무리되어 있었다.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던 일들이, 사실은 나 없이도 어떻게든 될 일들이었다. 



내 공부를 하고, 내 시간을 살기 위해 온 '학교'라는 기관에서 나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실 안에서 듣는 수업뿐만이 아니라, 여기저기 다니면서 내 호기심을 자극할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고, 업계 내, 외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곳에 참여하는 등의 기회들을 만들어가야 했을 시간에. 시간의 여유를 누릴 필요가 있었지만, 유학 초인데다, 30년 넘게 착한 딸, 학교 내에서도 크게 튀지 않는 평범한 모범생으로 살아왔던 내 삶의 패턴을 바꾼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론적으로 교수님의 직언은 아팠지만, 내게는 필요한 약이었다. 

효율성을 내 인생에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감정낭비나 시간낭비와 같은 에너지 소모를 최대한 줄임으로써 효율성을 높이고 자신이 중시하는 것에 좀 더 집중할 것, 그리고 내 인생을 살 것. 

그리고 그러기 위해 내가 이 이국 땅으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했다. 


추신. 

나중에 '문화권'언급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았냐며 다시 한번 이야기하긴 했지만, 정작 교수님 본인은 기억을 못 하셨다. (아니면 그런 척하시는 건지..) 어쨌든 그 부분에 대해서 '사과'를 해 주시긴 했지만..

그래도 뒷맛이 살짝 씁쓸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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