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을 때 아프면 백 배는 더 서럽다는 말,
들을 때는 그러려니 했었다.
그래 뭐, 서럽겠지. 여럿이 있을 때 아픈 것도 서러운데.
평소 건강관리를 잘하면 걱정할 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타지살이에서 이유 없는 자신감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꽤나 최근의 일이다.
새벽녘의 어느 날이었다.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에 선잠이 깼다.
'아, 오늘도 바람이 세게 부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하려던 순간이었다.
우리 집 창문의 무게는 산들바람정도에는 끄떡없는 무거운 재질로 되어있다는 사실,
그리고 아무리 거센 바람으로 유명한 네덜란드라 할지라도
여름에 이렇게 바람이 창문이 흔들릴 정도로 부는 것은 겨울이거나 태풍이 오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떠올라버리고 만 것이다.
1층 내 방 창문 커튼너머 두 개의 그림자가 아른거렸고,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에 전화해야 해'
생각했지만,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버리며 늘 손안에 두었던 스마트폰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가 혹여 창문을 열고 들어오면 어쩌나 싶어, 최대한 목소리를 낮게 내면서 욕설을 시전 했다.
(당시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효과가 있을까 싶었지만, 두 명(으로 추정되는)의 좀도둑들이 곧 살금살금 떠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이 그리도 열심히 살살 흔들어대던 창문을 뒤로하고.
내 어설픈 목소리 연기에 어찌 그리 감쪽같이 속았을지, 잠들면서도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 궁금증은 다음날 아침에 허망할 정도로 금방 해결되었다.
햇빛에 살균하려 놓아둔 핑크색과 파란색 두 개의 칫솔.
한 쌍의 칫솔과 다소 낮은 걸걸한 목소리의 콤비네이션은 그들의 상상력을 오묘한 방향으로 증폭시켰으리라.
집에서 사용하는 칫솔과 여행용 칫솔로 두 개다 내 칫솔이었다는 것은 '안' 비밀이다.
사건의 여파였을까.
괜찮은 줄 알았던 내 몸은 정확히 다음날부터 으슬으슬 떨리는 것을 시작으로, 물 한 모금도 제대로 소화를 시키지 못했다. 물만 마셔도 배가 아픈 탓에, 아픔을 잊기 위해 목이 마를 때만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바로 침대에 가서 잠들기를 반복했다. 몸에서는 알 수 없는 악취가 올라왔고, 잠은 끝도 없이 밀려왔다.
사실 속이 메슥거려 토하기를 반복하느라 잠에 제대로 들었다 할 수도 없었다.
머리가 아파 창문을 열고 환기라도 시키고 싶었지만, 또 찾아올 도둑놈들이 겁나 창문을 열어놓을 수도 없었다. 물주머니가 식을 때마다 데워서 가져다줄 손이 그리워졌고, 토할 때마다 따뜻하게 등을 두들겨주던 엄마의 손이 그리웠다.
이틀뒤에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어떻게든 그 안에 나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굶고, 통증이 가라앉은 듯하면 살짝 동네 한 바퀴씩 돌며 땀을 뺐다.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엔 허망할 정도로 통증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방심할 수 없었던 나는 여행지 도착 다음날 까지도 자발적 단식을 감행했다.
어쨌든 슬픈 사실이지만, 여자 혼자 산다면, 나처럼 창틀에 칫솔을 두 개 정도 놓아둔다던가, 문 입구에 남자신발을 하나 둔다던가 하는 건 어쨌든 도움이 된다.
때때로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나'싶은 자괴감이 '불쑥'튀어나오기도 한다.
안락했던 혼자만의 시간이 갑자기 범죄영화의 한 장면같이 공포로 얼룩져지기도 한다.
그럴 땐 심호흡 한 번 하고, 예쁜 소품으로 집 한구석을 장식하고, 내가 사랑하는 공간을 더욱더 애정에 찬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이렇게 한 뼘 더 강해진 것에 기특해하며 스스로 나 자신을 토닥인다. 그래야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테니.
해프닝은 해프닝일 뿐이다.
그저 벌어진 일에 나 자신을 소모시키지 않는 것 또한 나를 가장 사랑하는 나 자신이 지닌 의무일 테니,
그 의무를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