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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장소에서 일어난다

서귀포에서 만난 마을 축제, 칠십리 축제

by shanti


제주에 산 지 10년이 넘었지만, 서귀포는 마음속에서 늘 멀었다. 그러다 올가을 처음으로 칠십리 축제를 찾았다.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고, 퍼레이드가 한창이었다축제란 무엇일까. 빌 ‘축(祝)’과 제사 ‘제(祭)’가 겹치는 순간—기쁨을 나누며 잃어버린 것들을 함께 기억하는 시간. 그날 서귀포는 의무도 없고 누구나 환대받는 그런 곳이었다.



70리를 걷는 마을 이야기


그날 내가 본 축제에는 긴 역사가 깃들어 있었다. 서귀포 칠십리는 조선시대 정의현 관청 관문에서 서귀진 관문까지의 거리가 70여 리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1995년 서귀포 시민들이 시작한 이 축제는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되면서 남제주 군민들도 함께하게 되었다. 지금은 서귀포 105개 마을이 모두 참여하는 큰 축제로 자리 잡았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칠십리 대행진(거리퍼레이드)'이다. 올해는 17개 읍면동이 각자의 마을 이야기를 살려 오랜 기간 준비했다. 반딧불 보호 지역인 예래동, 나비 박사 석주명 선생님이 머물렀던 영천동, 최영장군의 범섬전투를 형상화한 대륜동. 각 마을은 예술가들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하고, 그 과정을 인스타그램으로 오픈하며, 축제를 준비해 왔다. 그렇게 완성된 이야기들이 다양한 퍼포먼스로 변해 서귀포 도심을 힘차게 누볐다.



신화가 되살아나는 거리


서귀포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축제의 열기가 느껴졌다. 거리 퍼레이드가 시작되고 있었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있었다. 공들여 준비한 퍼레이드는 예상보다 훨씬 더 즐거웠다. 각 마을의 특색이 살아있는 의상과 소품들, 그리고 주민들의 밝은 표정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화려한 장면들 사이로 비눗방울 총을 든 근엄한 어르신이 내뿜던 비눗방울, 사탕과 귤을 건네던 아이들 같은 소소한 순간들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퍼레이드를 보고 난 뒤, 나는 문화의 달 개막 공연장으로 향했다. 축제와 함께 열리는 이 공연은 제주의 설문대할망 신화를 재해석한 '설문대할망 본풀이'였다. 심방님과 서귀포 어르신들, 오케스트라, 예술가들이 협업한 무대였다. 세대와 장르가 만나는 순간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제주의 신화가 어르신들의 목소리와 오케스트라의 선율로 되살아나는 장면을 보며, 축제가 '장소'를 만나야만 온전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운영도 축제의 일부


하지만 감동적인 공연을 보는 동안에도 불편함이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모인 인파에 비해 운영은 준비가 부족해 보였다. 어린이와 어르신이 많이 참여하는 행사인데도 자리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주최 측에서는 자리를 맡지 말라고 공지했지만, 야외 행사에서 그게 쉽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안다. 공연이 한참이 늦어져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안내는 없었다. 한참 뒤에야 전광판에 짧은 공지가 "엄숙히 대기"해달라는 짧은 공지가 뜨더니 끝이었다. 이후에도 별도의 사과는 없이 공연이 이어졌다.


결국 작은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어떤 스태프는 가방만 놓여 있는 의자를 보고 "(타인의) 가방을 들고 앉으세요"라고 했고, 공연 내내 자리를 맡으려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났다. 옆에서 열린 장터의 연계 이벤트에 대해 물어보자 스태프가 "잘 모른다"고 답하기도 했다. 야외 행사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좀 더 명확한 기준과 안내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좋은 콘텐츠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운영'이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는 환경도 축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장소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그 장소를 관리하는 시스템도 함께 작동해야 한다. 아무리 준비가 잘 된 공연이라도, 그것을 즐기는 과정이 불편하면 축제 전체의 경험이 흐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제는 계속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준비하고 거리로 나와 즐기는 그 자체가 이미 의미 있는 일이니까. 칠십리 축제는 서귀포라는 장소가품은 이야기들을 꺼내 보이는 시간이다. 올해의 아쉬움이 내년에는 개선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환대받는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 축제는 결국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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