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고나 마케팅 쪽 일을 하고 싶어요."
너무나도 쉽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얼마나 순진한 행동인지, 취업전선에 뛰어 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현실을 잘 모르기도 했고 넘치는 자신감 때문에 그런 말이나 생각을 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던 것 같다.
뉴스에서 매일 같이 나오는 내로라 하는 대기업 외에는 눈에 차지도 않았다.
매출 1조 정도 올리는 대기업 공채가 뜨면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였다.
이상한 곤조도 부렸다.
'누구나 흔하게(많이) 들어가고 들어가봐야 일개 부속품으로 전락할 것 같으니 삼성전자는 쓰지 않겠다'
(결국, 나는 정말로 삼성전자에 지원서를 내지 않았다...)
'정부의 무역 보호와 정책으로 성장했음에도 장래성이 낮다고 판단되는 현대자동차 같은 회사는 쓰지 않겠다'
나 나름대로의 이상한 논리를 만들어가며 회사를 골라 썼다.
그래봐야 '어차피 회사원'인 것을... 그 때는 그런 식으로라도 최소한의 자존심과 미래에 대한 자주적 선택권을 지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까지 내가 써낸 입사원서는 60장 가량이 되었다.
9월에서 10월로, 또 11월로 갈 수록 그 양이 점점 늘어났던 것이다.
2. 나는 무얼 했는가?
처음에는 서류 탈락이라는 고배가 너무나도 낯설었다.
'보는 눈이 없다'라거나 '제대로 안 봤나?' 같은 생각으로 스스로를 자위함으로써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나름 서류 통과와 면접 통과의 소식도 들려 왔다.
17개 회사에 서류 합격했고
4개의 회사 필기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2개 회사의 면접과 1개 회사의 필기시험을 포기했다.
이미 광고, 마케팅 쪽으로 쓴 것들은 우수수 사정없이 서류에서부터 탈락되었고,
필기시험에서 낙방한 4개의 회사는 방송국 2곳과 광고회사 1곳, 마케팅 직군 1곳이었다.
(나와 함께 TBWA에서 광고 공부를 했던 친구들은 여럿 이 광고회사에 취업하였다.)
마케팅이나 광고 전공이 아닌 인문학 전공자의 한계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필기시험을 포기한 1곳은 신문사였고, 면접을 포기한 2곳 중 1곳은 공교롭게도
내가 인턴 입사 지원했다가 떨어졌고 한 때 너무나도 가고 싶던 홍보 직군의 최종 면접이었다.
다른 면접과 겹쳐서 이 면접을 고민 끝에 포기하게 되었는데,
재미있는 건 이 면접을 버리고 간 곳은 총무 직군에다가 아주 보수적이고 루틴한 업무, 공무원 같은 직장 생활로 유명한 곳이었다.
지난한 취업 전쟁을 치르면서 나도 닳고 닳아 버린 것이다.
불과 3개월만에 오랜 꿈을 잊거나 저버릴 만큼.
남은 10개의 회사 중 2개의 회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최종 면접까지 치렀다.
나는 의기양양해졌다. 8개 회사 다 붙어버리면 어딜 갈까?
행복한 고민까지 하게 되었다.
어찌됐든, 대기업들만 쓴 걸 감안했을 때 서류 합격이라든지 면접 합격율이 주변 친구들에 비하면 꽤나 좋았다.
경영학 복수전공을 하지 않아서 힘들 거라던 주변의 이야기가 무색해졌다.
내가 그 때 했던 것들을 짧게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3. 취업은 결코 쉽지 않다. 지금도 맞고 그 때도 맞다.
미국에서 서브 프라임 사태가 터졌다.
연일 뉴스에서 이 소식을 다루더니 급기야는 국내 기업들까지 세계 경제의 난국 속에 타격을 받고 있었다.
대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을 대폭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아예 적은 인원만 뽑겠다고 공지하거나 신규채용을 취소하거나 채용일정 도중에 합격자 수를 줄이는 일들이 일어났다.
거짓말처럼, 최종 면접까지 본 8개 회사 중 7개 회사가 발표를 했는데 모두 떨어져 버렸다.
물론, 외부 요인 탓만 할 수는 없는 것. 최종 면접에는 그만큼 쟁쟁한 경쟁자들만 남았으니 쉽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은 그렇게 정리되었지만, 충격이 꽤나 컸다.
호프 면접(맥주 마시며 면접)에 합숙 면접에 무슨 연극까지 하고, 면접장에서는 랩에 성대모사까지 하고 영혼이라도 팔 기세로 별 짓 다했지만 죄다 낙방해버린 것이다. 밀려드는 허탈감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렇게 나도 취업 재수생이 되는 것인가...'
의기양양해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사라져 버렸고 '취업에 실패했다'는 스트레스에 불규칙적으로 식사하거나 폭식을 일삼기도 했다.
(그 때, '스트레스성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병을 처음 얻어서 지금까지도 간간이 고생하고 있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한 학기 더 다닌다고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분명히 등록금 부담이 되실 터였다.
장학금을 몇 번 타긴 했지만 그런 부담감과 미안함 때문에, 어렵게 어학연수를 보내주겠다고 하신 말씀에도 극구 괜찮다고 했던 나였다.
좌절감이 며칠 동안 나를 괴롭혔고,
드디어 마지막 남은 1개 회사가 최종 합격자를 발표했다.
4. 타협은 유익한 것?
결과는 합격이었다. 내가 인턴 사원으로 근무했던 그 회사였다.
나중에 들어 보니,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채용 인원을 당초 계획보다 훨씬 감축했다고 한다.
어쨌든, 내 밥벌이는 하게 되었음에 감사했다.
광고쟁이의 꿈도 날아갔고
마케터의 꿈도 날아가버렸고
방송국 PD의 꿈도 산산조각나버렸지만,
꿈이 아닌 현실에서 살아남을 수 있음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입사교육까지 남은 시간은 단 일주일 뿐이었다. 며칠 빈둥거리다가 함께 최종 합격한 형과 함께 사회인이 되기 전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매년 굴 축제가 열리는 굴의 고장, 천북으로 '굴 먹방 여행'을 다녀왔다.
이렇게 나의 대학생활 마지막 학기는 적막하고 추웠던 서해바다의 갯벌처럼, 고요히 끝나 버렸다.
백화점에서도 마케팅이나 광고를 할 기회가 있겠지? 아마도 거의 없겠지만...
나중에 광고나 방송 사업을 할 수도 있고..그런 쪽으로 전출할 수도 있을거야..
이상한 타협을 하면서 씁쓸한 마음을 정리하였다.
그러자, 뭔가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5. 집에 홈쇼핑 방송이 안 나와도 홈쇼핑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
여행을 다녀와서 며칠 빈둥거렸다. 휴식이 너무 짧은 게 불만이었다.
새벽에 자서 10시~11시에 기상하는 식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 날도 한참 늦잠을 자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뭐지? 전화를 받았다. 내가 최종면접까지 봤던 회사 중 하나였다. 물론, 난 그 회사도 최종합격하지 못했다.
아니, 이 회사는 애초부터 기대조차 안 했던 회사였다.
(이유인즉슨, 다른 회사와 최종면접 시간이 비슷했는데 먼저 본 회사의 면접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반포기 상태로 택시를 잡아서 면접을 보러 갔었다. 하필이면 길도 막혀 근처에서 내리니 이미 면접 시간이 40분 가까이 지나 있었다.
그냥 포기하고 집으로 가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로비로 들어가 기웃거리고 있는데,
면접 안내자가 일단 대기실로 올라가라고 했고 올라가자 정말 고맙게도 면접 기회를 준 것이다.
그러나, "왜 이렇게 늦었냐?"는 질문에 "가스불을 켜고 오고 간 것 같아서 다시 집에 갔다 왔다"라고 말도 안 되는 답을 하고..
면접관은 "많이 늦으셨군요?"라는 말로 면접을 시작했으며, "10년 뒤에 뭘 하고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는 "내 사업을 할 것 같다"고 답해버렸기 때문에 합격에 대한 기대를 일찌감치 접었었다.)
"OOO씨 맞으시죠?"
"아, 예...무슨 일로...?"
"아..지원하신 직무에 결원이 1명 생겼는데요. OO씨만 괜찮다면 함께 일하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타협이 이루어진 선택지 상에서 내가 꽤나 가고 싶었던 회사.
역동적이고 나름 화려한 방송이 매일 같이 스크린을 통해 펼쳐지는 회사.
그리고 이 회사의 꽃이자 무려 300:1의 경쟁률을 자랑했던 MD라는 직무.
"어떻게, 다음주에 입사교육에 입과하실 수 있으신가요?"
"...예, 예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벙벙해진 나는 얼떨결에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집에 홈쇼핑 방송도 안 나오던 나는 이렇게 홈쇼핑 MD로서 사회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나 자신을 위한 타협이 시작되었다.
(#9. 에서 계속..)
※ 집에 케이블 TV가 없어 홈쇼핑 방송도 안 나오던 내가 어떻게 합격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