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전쟁 -1부

by 도드리

1. 우리에게 '배움의 시간'이란 사실 그리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그리고 또 다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요즘을 사는 우리들 대다수는 14년~16년이라는 시간을 '학교'라는 곳에서 보낸다.


어릴 때는 공부하는 게 너무 싫고 지겨웠다.

대학에 가기 전까지 12년이나 공부해야 된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시간은 빨랐다.

금세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가끔 뒤를 돌아보면, 내가 배운 것이 무엇이고 난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짙은 해무가 깔린 모래사장 위를 뒤뚱거리며 헤매이는 듯한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리고 그 애처로운 발걸음은 점점 더 난해해져만 간다.


-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초등학교 때는 그다지 깊은 생각이 없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뭔가 조립하고 고치는 걸 좋아했던 나는, 막연하게 '그림 그리는 과학자, 화가 과학자'가 꿈이라고 했다.

어떤 친구는 대통령, 어떤 친구는 경찰, 또 어떤 친구는 연예인을 꿈꿨다.


그리고 어른들은 하나 같이 그 꿈들을 존중하고 지지해주었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는 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의 꿈도 달라졌고, 나와 우리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도 예전 같지 않았다.


중1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영재 수학 학원에 간 나는

중3, 고1 수준의 수학 공식들을 도저히 외울 수도 없었고 그 수준의 수학 문제들을 풀기도 너무 힘들고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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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동안의 지난한 씨름이 이어졌고

나도 내 나름대로 어머니를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과 수치심으로부터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학원에 오셨고

선생님과의 어떤 면담이 있었고 나는 그 날로 학원에서 나왔다.


그 때만 해도, 난 내가 어릴적부터 꾸었던 '화가 과학자'라는 꿈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을 전혀 알지 못했다.


2. '비현실'이 용인되던 시절은 지나가고 '현실'이 불쑥 내 삶에 끼어 들었다.


사실, 내 삶은 이미 현실이었다. 다만, 내가 '어렸기' 때문에 부모님이, 선생님이, 주변의 어른들이

내가 꿈꾸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내가 서있는 곳이, 그리고 내가 곧 있을 곳이 현실임을' 알려주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나 또는 친구들의 꿈은, 전교 석차 OO등 안에 드는 것이라든가

외고나 과학고 같은 특목고에 가는 것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 변화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전면적으로 모두에게 전이되었다.


"대학 입학"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는 흡사 전쟁과도 같았다.


우리들의 꿈은 모의고사 성적표 뒤에 있는 '대학 배치표' 안에 모두 들어가 있었다.


'4년제', '인서울', '스카이', 각자 조금씩 꿈은 달랐지만

우리들의 꿈은, 그려진 그림만 다를 뿐 모양은 모두 같은 유리컵과 같았다.



3.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은 달았는데, 그 다음 무엇을 할지를 모르겠다.


'입시 전쟁'이라는 전쟁을 끝내고 마침내 각자가 꿈꾸던 유리컵을 전리품으로 챙긴 이들 대부분이 놓이게 되는 상황이다.


(요새야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현실 감각이 지나친 친구들은 입학하자마자 도서관으로 달려 갔다.

고시 준비를 하는 친구,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친구, 교직 이수를 하겠다는 친구..


이런 친구들은 소수이다.


보통은, 아무 생각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별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군대를 다녀오고 나면 이 친구들에게 갑자기 꿈이 생긴다.


"취업"


여기에서 '취업'이란 '대기업 입사'의 다른 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 여기에는, 현실 감각이 지나쳤던 소수의 친구들도 (그들의 현실에서 쓴 맛을 본 뒤)일부 합류한다.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민규도

경찰이 되고 싶었던 재석이도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미선이도

화가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그리고 조금 더 자라 광고쟁이를 꿈꿨던 나도


그냥 어디든 취업하는 것이 꿈이 되려고만 했다.



4. '취업 전쟁'의 전초전은 '스펙 전쟁'이다.


좋은 학점은 기본.

높은 토익 점수와 OPIC 점수, 토익 스피킹 점수가 필요하다.

해외 연수 경험도 필요하며, (회사에서 좋아할만한)동아리나 학회에서 리더의 경험도 쌓아야 한다.

컴퓨터 활용 능력도 자격증으로 증명해야 하며,

각종 공모전 수상 경력 및 대학생 참여 프로그램 경력도 있어야 한다.

조금 더 나아가서,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남다른 경험도 있으면 좋다.

(히말라야 등반이라든지 철인 3종 완주 같은..)


3.5년~4년 동안 치르게 되는 이 전쟁이 끝나면 그 때서야 비로소 전면전,

'취업 전쟁'이 시작된다.


-


나의 대학생활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던 공부를 원없이 하며 학구열에 불탔던 나의 대학 시절이 무던히도 지나가 버렸다.


'스펙 전쟁'에서 빗겨나 있었던,

마치 전쟁통에서도 너무 깊고 험한 산턱 아래 마을에서 사는 탓에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그 어떤 이와 같았던,


그런 나에게 갑자기 무지막지한 선전 포고가 내려졌다.


그렇게 나는 순진한 양의 눈을 꿈뻑거리며 포화 속으로 내던져졌다.


나는 다시 TBWA에서 내가 꿈꾸었던, 롤모델로 삼았던 광고 선배들과 같은 길을 갈 수 있을까.

아니, 광고 일 비스무리한 일이나마 할 수는 있을까.

(지금의 꿈은 아니지만)어쩌면, 인턴을 했던 백화점에 들어가 유치원 때 막연히 생각했던 '백화점 사장'의 꿈을 이룰 수 있을 지도?


막연한 생각들이 매일 같이 나를 흔들고 또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기 전, 그리고 마지막 학기가 막 시작되었을 때의 나의 잔상들이다.


어찌됐든 비로소,


'나의 취업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의 꿈"을 주제로 썼던 학급 문집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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