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빨인 날에는 먼저 선점하는 사람이 임자다.
늘 오가던 동네 길목에 평소에 보지 못했던 색상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 떡볶이 색이 차지하고 있던 곳이었는데 노란 단무지 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간판이며 문틀이며 모두 노란 단무지 색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동네 떡볶이 집이 김밥 전문점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오후 4시쯤이었던가. 가게 앞에 나와 있는 입간판의 메뉴를 보니 충동구매를 자극시켰다. 오픈빨이라 당장 사지 않으면 재료가 없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저녁거리로 사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사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래, 어디 오늘만 날인가. 오늘 아니면 내일 사 먹어도 될 일이다. 오늘 오픈한 가게가 내일 당장 망할 확률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 정도의 확률일 것이다. 그래서 일단 집으로 향하였다.
저녁 6시가 되니 영부인의 호출에 의한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안건은 저녁 메뉴였다. 여러 메뉴를 던지다가 '설마 이걸 먹겠어?' 싶은 마음으로 아까의 노란 단무지 간판 이름을 툭 하고 던져 보았다. 그런데 세상일이라는 게 다 그렇다. 생각 없이 툭 던진 게 먹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영부인의 결정에 따라 당장 옷을 주워 입고 길을 나섰다. 미션명은 '세트 2번'.
가게에 들어서니 앞에 두 명이 있었다. 진열대를 보니 거의 동이 나 있기는 했지만 훤히 보이는 주방에서 열심히 김밥을 찍어 내고 있는 걸로 보아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앞에 서 있던 2명의 대기자가 김밥을 들고나간 뒤 순서가 돌아와 기쁜 마음으로 외쳤다.
"세트 2번이오."
"저, 재료가 소진되어 진열대 남은 거랑 병아리 김밥 밖에 안 됩니다."
설마 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지고 만 것이다. 오픈빨을 무시했다가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 진열대에 남은 건 소고기 유부초밥 4개, 명란마요 유부초밥 2개뿐이었다. '그래도 저거라도?' 하는 순간 뒤를 돌아보니 한 사람이 더 대기를 타고 있었다. 저 6개를 싹 쓸어가면 뒷사람은 망연자실하는 상황이 될 게 뻔하였다.
"저, 소고기 유부초밥 2개랑 명란마요 유부초밥 1개 주세요. 나머지는 뒷 분 주시고요."
그 말을 들은 뒤에 서 있는 여자 사람이 미소를 지으면서 고맙다고 하였다. 결코 그녀가 이쁘다거나 매력적이라거나 혹은 여자라서 눈이 뒤집혀서 양보한 것은 아니었다. 혹여 그녀가 번호를 준다고 해도 써먹을 데도 없다. 단지 싹 다 긁어가면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게 너무도 뻔해서였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광경 아니었겠나. 주인장도 감동 먹었을게다. 이쯤 되면 주인장이 천 원쯤은 깎아주겠다고 나서도 될 판이었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도 땡전 한 푼 깎아주지 않는 주인장은 분명 부자가 될 것이다.
오픈빨인 날에는 먼저 선점하는 사람이 임자다. 오픈빨인 날이 사람으로 따지면 첫인상을 보여줘야 하는 날인 것이고 그날에는 김밥집 주인장처럼 땡전 한 푼의 아량조차 허용하지 말고 오픈빨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물론 평소에도 꾸준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오픈빨'이라는 버프 아이템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가끔 당신의 오픈빨을 점검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