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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지몽 Feb 26. 2024

새벽녘 김밥집

이날은 강릉 고모네 손녀의 돌잔치에 가는 날이었습니다.

아침일찍 일어나서 달리기를 해야 하는데,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급하게 동네 한바퀴를 뛰었습니다. 봄이 다가오고 있다고는 하지만, 새벽녘에는 아직 동이 터 오르지 않았고, 추운 날씨였습니다. 달리는 동안에는 금새 열이 오르고 땀이 났지만, 오늘 날씨가 춥고 스산하다는 것은 충분히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가볍게 뛰고 나서 집앞에서 몸을 풀고 있는데, 아내가 김밥을 사오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침에 뭘 먹지않고 차를 타면 늘 멀미를 하는 아내라서, 조금은 귀찮았지만 동네에 있는 김밥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달릴때 온몸에 있던 열기와 땀은 금새 식어서, 금새 이날 날씨를 다시 체감하게 되었지요.


새벽의 김밥집은 늘 사람들로 분주합니다. 새벽에 일을 하러 나가시는 분들이 들러서 따뜻한 라면국물에 김밥한줄을 후딱 드시고 일어날 수 있는 몇 안되는 장소이지요. 김밥집 앞 솥에서는 추운 겨울날의 공기를 보기만 해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김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사장님은 만두주문이 있을때마다 솥을 열어서 따뜻한 고기만두, 김치만두를 꺼내주고 계셨지요.


저도 금새 얼어버린 몸을 녹이려고, 김밥집으로 서둘러 들어가려는데, 문앞에 왠 아저씨 한분이 서서 안을 들여다 보고 계신게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일행을 기다리시나보다 싶어 지나치려고 하는데, 왠지 행색이 조금 남루하시고, 무엇인가를 망설이시는 모습에 조금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노란색 파카를 입으셨지만 추워보이셨고, 안절부절 못하고 계셨지요.


제가 조금 멀리서 지켜보는 중에, 아저씨는 주머니에 동전을 꺼내보고 계셨습니다. 손안에는 백원짜리 몇개가 있었지요. 다시 한숨을 쉬시더니 다시 김밥집 안을 들여다 보십니다. 김밥집 문은 김이 서려서 누가 있는지도 잘 보이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저는 더 지켜보지 않고 김밥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내가 시킨 심부름을 빨리 해야 강릉에 출발할 수 있었으니까요.


" 사장님. 참치김밥 두줄, 일반김밥 두줄 포장해 주세요"

" 네 금방 해드릴께요"


김밥집 안은, 얼큰한 라면으로 해장하시는 분들, 새벽일을 나가시는 분들로 북적북적 합니다. 김밥집 사장님 내외분들은 바삐 왔다갔다 하며 라면을 끓이고, 만두를 접시에 담고, 김밥을 말아서 썰고 계십니다. 작은 공간에 사람의 열기와 음식의 열기가 따뜻합니다. 제 몸도 녹아 가구요. 그런데, 따뜻함이 느껴질수록, 바깥에 있는 아저씨가 계속 신경 쓰입니다.


김밥 한줄을 바로 달라고 해서 아저씨께 드릴까 고민하다가, 제가 생각하는 것이 지나친 상상일 수 있어서 망설였습니다. 내가 눈에 보이는 단편적인 장면만 보고 멀쩡한 사람을 궁핍한 사람으로 보는 것은 아닌가. 도움이 전혀 필요 없는 사람에게 값싼 도움을 드리려고 하다가 마음의 상처를 드리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아저씨가 김밥집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 저... 조금있으면 제가 아는 사람이 오니까, 한 3천원만 빌려주실 수 있어요?"

" 아침부터 무슨 돈을 빌려달라 그래요? 저희 바쁘니까 나중에 이야기 하세요"


사장님이 매몰찼다기 보다는, 정신없는 와중에 갑자기 예상못한 요구를 하니까 깊게 생각하실 여유가 없으셨던것 같습니다. 저는 아저씨가 다시 밖으로 나가자 마자 사장님께 참치김밥을 하나 더 포장해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최소한 제가 아저씨에 대해서 생각한게 틀린것은 아닌것 같아서요.


김밥을 기다리는 중에 아저씨는 여전히 밖에 서서 계십니다. 추운 날씨때문에 몸을 움직이시면서 노래도 부르십니다. 추위와, 정확하지는 않지만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김밥집 사장님이 서둘러 김밥을 말고 썰고 계시는 동안에, 아저씨의 노래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저씨의 노래를 들으면서, 얼른 나가서 드려야겠다. 어떻게 말씀드리고 드려야 기분이 안상하실까를 계속 머리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윽고, 포장이 다 끝났습니다. 저는 재빨리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아저씨가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김밥집에서 기다리는 동안 동이 터 올랐습니다. 밤새 잠들어 있던 참새들도 김밥집 앞 나무에서 짹짹 하고 울고요. 고요했던 새벽이 밝은 아침이 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좀전까지 있었던 어둠과 함께 갑자기 말이지요.


저는 시간이 없었지만, 주위를 계속 찾아다녔습니다. 혹시 어디 구석에 앉아 계신건 아닐까 하구요. 아저씨 옆에 있던 케리어가방이 끌리는 소리가 나지 않을까 하고 소리도 들으면서 김밥집 주위를 뛰어다녔습니다. 아저씨를 위해서 하나 더 주문한 참치김밥을 드려야 하니까요. 달리기로 단련된 몸이라 열심히 10분동안 김밥이 들어있는 봉지를 들고 뛰어다녔지만, 결국 아저씨는 찾지 못했습니다.


참치김밥이 다 싸질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먼저 그냥 포장되어 있던 김밥을 얼른 집어서 드릴껄. 노래소리를 듣고있지 말고,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하지 말고 얼른 드릴껄. 안으로 들어오시라고 하고 라면이라도 한그릇 사 드릴껄. 그 짧은 시간에 하지 못한일을, 하지 못한말을 크게 후회했습니다. 


결국 아내가 주문한 김밥보다 한줄 많은 5줄의 김밥을 가지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왜 이렇게 많냐고 물어보는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말해주자, 금방이라도 울것같은 표정을 합니다. 얼른 아무거나 쥐어 드리지 그랬냐고 책망하면서 같이 가슴아파 합니다. 전해지는 마음의 강도는 다르지만, 그 온도와 방향은 같겠지요. 아내는 다음에도 그런분이 보이거든, 그때는 망설이지 말라고 말해 주네요.


이 이야기를 쓰는 지금도, 그 새벽녂의 어둠과, 찬 공기, 김밥집 앞 솥의 하얀 김과, 그 앞에서 서 있는 아저씨의 쓸쓸한 모습이 선명하게 생각납니다. 아저씨의 모습을 보면서, 저의 삶의 시간에 존재했던 아저씨와 비슷한 저를 발견해서 더 마음이 쓰이고, 전하지 못한 김밥 한줄이 더 안타까웠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새벽 달리기를 나가면, 꼭 그 김밥집을 들러서 아저씨가 계시는지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계시지 않았지요.


그래서, 저는 그날이후 스스로에게 하나의 약속을 했습니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것 같으면, 재지말고, 고민하지 말고, 재빠르게 다가가 도움을 주기로요. 그것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대방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도움을 주지 못해 가슴이 아픈 저에게도 큰 도움이 될것이니까요. 저는 부자도 아니고 여유로운 사람도 절대 아니지만, 한줄의 참치김밥 정도는 나눌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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