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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지몽 Apr 03. 2024

타협하자. 그래야돼

때는 지난 주 저녁, 가족들과 식사를 하다가 출강하는 학교의 조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 교수님, 계약서에 서명을 하러 학교에 좀 오셔야 할것 같습니다."


시간강사의 처지이기 때문에, 매년 계약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저는 그러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마침 작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조교가 계약서 서명이 필요하다고 저에게 안내할 시기를 놓쳐서, 전날 저녁에 전화해서 다음날 아침까지 학교에 와서 서명을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저는 제 생업과 관련일정이 있다고 일정을 좀 다시 잡아달라고 요청했지만, 조교는, 그럼 제 계약서에 본인이 대리서명을 해도 되겠냐고 묻더군요.


대리서명이라니, 제가 계약과 관련된 일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오랬동안 하다보니 이 상황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제치고 다음날 아침 학교로 방문하는데, 이 학교의 교직원이라는 사람이 전화가 와서, 왜 마감일까지 서명을 하지 않는건가 하고 따져 묻더군요. 운전중에 울컥한 저는 어떤 안내도 받지 못했으며, 조교가 저에게 대리서명을 하겠다고 해서 학교에 가는 중이라고 설명을 했지요. 이 과정에서 이 교직원이 너무 괘씸했던 나머지, 이 모든 과정을 해당지역 근로감독관에게 전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요.


이후 뭔가 크게 잘못되었던걸 느꼈는지, 계속 이사람 저사람 바꿔가며 사과하겠다는 전화를 받았고, 실수로 저에게 고지하는 것을 놓치고 대리서명이 어떤것인지 모르는 상태로 실수를 하고 어쩔줄 모르는 조교를 보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그 일을 그냥 묻어두었었지요.


그런일이 있어서,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학교에 방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조교가 내미는 계약서는 작년만큼 참담했습니다. 계약서의 시작날짜가 작년 9월부터로 지정되어 있었던 것이죠. 이것이 왜 그런가를 따져 묻자, 조교는 학교 본부에서 시키는대로 드렸을 뿐이라고 합니다. 별일 아닌것처럼 그냥 싸인하면 된다는 말에, 지난번처럼 소란을 일으키기 싫어서 일단 알았다고 말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 조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 조교 선생님.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이해가 가지 않아서요. 어떻게 24년도 계약을 다시하자고 부르면서 작년부터 시작하는 계약서를 저에게 주시고 본부에서 그렇게 시켰다고 하실수가 있나요. 조교님께 시켰다는 그분께 전화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


" 교수님. 지금 그분이 회의중이라고 하시는데, 그분께서 5시에 회의가 끝나니까 그 이후에 전화를 달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할까요?"


본인들이 잘못한 내용에 대해서 항의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저보고 전화를 하라고 하니 , 참았던 분노가 폭팔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께, 이번에는 그냥 쉽게 넘어가지 않겠다. 어떻게 강사와 계약을 하는데 2년 연속으로 부주의하게 처리할 수 있느냐. 회의고 뭐고 당장 전화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잠시 후, 제 지도교수님께 전화가 왔더군요. 제가 모교에 출강을 하다보니, 궁지에 몰린 학교 교직원들이 제 지도교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저의 민원을 무마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태도와 사고방식이 너무 한심했지만, 스승님이 하시는 말씀에 저는 그냥 이 일을 흘려보내야 했습니다. 


" 전박사. 그 일이 그렇게 크리티컬하게 본인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적당히 넘어가는 것도 삶의 기술이에요"


그날 결국, 학교 본부의 교직원의 전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일이 있고 일주일후, 다른 학교에서 강의가 끝나고 부리나케 모교 강의를 위해 출발했을 때의 일입니다. 전주에 전화했던 조교가 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고용보험을 위해서 학교 시스템에 들어가서 신청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겁니다. 강의 시작이 임박한 때였기 때문에 그러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는, 강의 시작 10분전 학교에 도착해서 주차를 막 끝냈지요. 그런데 조교가 또 전화가 옵니다.


" 교수님 아직 처리가 안되었는데요."

" 제가 3시부터 강의라서, 쉬는시간이나 강의 중간에 처리해드리겠습니다."

" 아 그런데, 저희 마감시간이 3시 30분까지라서, 지금 해주셔야 합니다."

" 네? 언제까지라는 말씀은 없으셨는데요? 지금 수업 시작 10분전인데, 일단 수업을 시작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 시간동안 학생들이 기다릴텐데요"

" 아네.. 일단 알겠습니다"


헐레벌떡 강의실로 들어가서 강의자료를 띄우고 있는 와중에, 학교 교직원이 전화를 저에게 합니다.


" 강사님. 제가 조교를 통해서 들었는데, 고용보험 관련 처리를 못해주시겠다고 하시더라구요"

" 못하는게 아니라, 수업 중간이나 수업 종료중에 해드리겠다고 한건데요?"

" 저희가 퇴근시간이 5시인데, 수업이 끝나고 나서 하신다고 하면 그건 못하겠다고 하신거지요"

" 네? 제가 전화하신분이 언제 퇴근하는지 어떻게 알까요? 지금 수업 직전에 저에게 전화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셔도 되나요?"

" 어쨌든 지금 바로 하셔야 합니다."

"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그럼 학장님과 강사님 지도교수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 맘대로 하세요"


여기까지 통화를 하자 이미 수업시작시간이 3분이 지났습니다. 저는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고 수업을 진행해야 했지만, 혹여나 지도교수님께 또 연락이 갈까봐, 잠시 수업을 멈추고 그 일을 처리했습니다. 3시 30분 전에 처리를 했지만, 제 수업을 들으려고 모인 60명의 학생이 5분이상 저를 기다렸습니다. 많은 사람의 기다린 시간의 합은 5시간이나 되었지요.


잠시후, 지도교수님의 문자가 왔습니다.


" 수업중인걸 알아서 문자 남깁니다. 자초지정은 잘 모르지만 학교에서 요청한 작업은 일단 처리해 주기 바랍니다."


저는 학교에서 원하는 대로 원하는 시간내 처리했다고 답변을 했지요. 잠시 후 교수님의 문자가 다시 도착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정의를 실천하는 것은 중요하나, 작은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거나 감정소모를 하면, 정의실천도 어렵고 자신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도 거의 비슷한 삶을 살았던 적이 있어서 잘 압니다. 당장의 즉석정의보다 시간을 갖고 한템포 쉬며 추후 그때는 그랬다고 상대방에게 설명하는 것이 상대방과의 관계 및 감정관리에 낫고 결국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요즘 깨닫고 있습니다. 누구의 말이 맞고 틀리는 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상대방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고 또 들어봐도 애매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삶을 통해 배웁니다."


수업 중간에 교직원 사무실로 뛰처 올라가려는 충동을 지도교수님의 장문의 문자를 보고 멈추어 섰습니다. 뒤돌아보면, 대학 학부때부터 지도교수님에게 가르침을 들었고, 지금의 제 성미와 태도는 이분에게 많이 나온 것이었습니다. 저의 바로미터 였던 분께서, 이제는 살아보니 그게 좋지 않다고, 그러지 말라고, 내가 살아보니 그게 참 나를 힘들게 하더라 라고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학생들에게 태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늘 가르쳐 왔는데, 때로는 사람간의 관계를 위해서,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누그러트리고 타협할줄도 알아야 한다고 이제는 말을 바꿔야 하는것인가 에 대해서 혼란스러웠습니다. 제 고민을 아내에게 털어놓자, 아내는 이런 답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 오빠와 똑같은 태도로 삶을 살았던 스승님이 하신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어? 꼭 나처럼 경험해 봐야 겠냐고 말씀하시고 계시잖아. 오빠가 지금과 같은 태도로 학교에서 부딫치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어떤말을 해줘야 할지를 고민하는게 의미가 없지 않을까? 그 기회가 영영 없어질 테니까"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이래서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구나.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과도, 내가 배워왔던 훌륭한 가르침과도, 타협해야 한다는 현실이 참담했습니다. 


저는 그날 결국, 교직원 사무실로 처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집으로 와서, 작년의 그때처럼, 지난주의 어느날처럼, 그냥 묻어두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저의 생계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크리티컬한 것도 아니니까요. 너무 하나하나 짚어가며 살아온 제 자신을 미워하게 됩니다. 다른사람은 그냥 쿨하게 넘어가는 일이 왜 저라는 까다로운 사람에게는 되지 않는가 라고 자책하게 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제가 수십명의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앞에서 이야기한, 태도가 모든것이다 라는 말은 더이상 할 수 없다라는 사실이 크게 다가옵니다. 뾰족하게 살지 말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그게 아직 가슴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태도인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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