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접지몽 Jan 03. 2024

마음이 뿌옇습니다. 그래서 달립니다

작년 한해동안 열심히 개발했던 우리 팀의 프로젝트가 결국 세번째 엎어졌습니다.


새로 뽑은 개발자에게 외주개발자의 개발상태를 인계하는 과정에서 우리프로젝트의 상태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분은 입사한지 일주일 만에 그만두면서, 이 정도의 개발상태는 어느누가 와도 살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매번 테스트 할때 작동이 되지 않는 부분을 수정하면 다른부분이 고장나고, 그 고장난 부분을 수정하면 원래 되던 것이 또 고장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의사결정이랄 것이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까요. 속절없이 지나간 시간이 너무나 아까울 따름이었습니다. 제 나이도 한살을 더 먹었고, 제가 가지고 있는 인맥과 네트워크는 파도 앞에 쌓여있는 모래성처럼 쓸려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 생각해 보니, 그렇게 된지는 꽤 된것 같습니다. 안타깝다. 정말 안타깝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결정이 있고 난 후의 날씨는 늘 흐리고, 눈과 비가 번갈아 오고, 햇빛이 비추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시간이 되어도 해는 뜨지 않아서, 이불속으로 파고들어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내 몸은 본능적으로 그러면 안된다고 머리를 깨웠지만, 마음이 몸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속절없이 1년이 간것처럼, 의미없이 24시간중 한두시간이 침대에서 날아가 버립니다.


하지만 습관이라는것은 참 무섭지요. 화장실에 다녀와서 침실로 들어가는 길에, 어제 저녁 고이 모셔놓은 운동복과 양말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 보입니다. 망설이고 머뭇거림 없이 양말을 신고 옷을 입고 운동화 끈을 맵니다. 조용히 대문을 열고 문 밖으로 나갑니다. 밖은 우중충하고 회색빛이고 여전히 해는 뜨지 않은 시각입니다.


간밤에 찌뿌둥한 몸을 스트레칭으로 정신차리게 하고는 가볍게 발을 딛고 출발합니다. 처음 3km 정도는 몸이 풀리지 않아 달릴때 힘들다는 생각만 듭니다. 이 구간을 지나고 나면, 가슴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듯한 생각들이 머리속을 조금씩 채우기 시작합니다. 


지금 내가 달리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달린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안타까워하고 한탄하는 데 내 힘을 쏟지 말자. 지금 이 자리에서 이시간에, 주어진 오늘 하루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자. 결국 나는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무슨일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다만 내가 불안해 하는 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확신을 줄 만큼 신뢰를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신뢰를 주지 못하는 이유는, 내 마음이 아직 나약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나의, 내 마음의 나약함 때문이며, 내가 해결할 것은 다만 이것뿐이라는 결론을 내려버립니다. 그 나약함을 없애기 위해, 내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고, 내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에게 힘을 쭉쭉 밀어줄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이 필요합니다. 내가 본능적으로 달리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무의식의 내가 마음의 힘을 키우기 위한 해결책을 알고 있어서는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오랜만에 찾은 보라매공원은 아직도 해가 뜨지 않았습니다. 회색빛입니다. 하지만 한참을 달리면서 제 마음도 머리속도 점점 개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아침도 제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열심히 달리고, 오늘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0일을 매일 달린다는 것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