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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지몽 Feb 29. 2024

매일 달리기 300일을 지나고 나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달리기로 결심한지 300일이 되는 날 아침은, 참 밝았습니다. 날씨도 뛰기에 적당하고 바람도 없고 미세먼지도 없는 아침이었지요. 여전히 나가기 싫어서 30분을 밍기적 거리다가 나가기는 했지만, 스트레칭을 하고 첫 발을 딛는 느낌이 가볍고 경쾌했습니다. 오늘은 매일 달리던 대로, 서울대학교 운동장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제일 사랑하는 10km 코스 이지요.


300일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스스로에게 왜 그런건가 하고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습관이라는 것은 20일만 지속하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하는데, 왜 나는 300일이 되었는데도 매일 아침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나가는것도 싫을까? 막상 달리고 나면 그 상쾌한 기분과 성취감때문에 이것을 끊을 수 없어져 버렸지만, 매일 아침 밖으로 나가기까지 걸리는 30분 정도의 시간은, 마치 수십명의 사람이 나를 나가지 못하게 손과 발에 매달린 듯 길고 힘든 시간입니다.


저는 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 너는 단 하루도 쉼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도데체 왜 그렇게 융통성이 없는것인가? 일주일에 하루만 쉬어도 회복되는 근육이 있을텐데, 그러면 더 잘 달릴 수 있을텐데, 하루라도 멈출 일이 생길까봐 조마조마하고, 멈추는 것을 두려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너에게 그만한 자제력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인가? 너는 그렇게 의지력이 없는 사람인 것인가?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언덕을 넘어, 서울대 학교 트랙으로 들어섰습니다. 언제나 관악산이, 넓게 팔을 뻗어서 언덕을 넘어오느라 힘을 한참 쓴 저를 안아줍니다. 조용한 트랙에 발을 딛으면, 그때부터는 이어폰을 끼고 있지 않아도 노이즈켄슬링이 된 느낌이랄까요. 오직 나의 숨소리와 발을 내 딛는 소리만 들립니다. 다른 생각은 관악산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날아가 버립니다. 이렇게 달리고 있으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마음은 평온하고 온 몸에는 에너지가 넘치고 가볍습니다. 고개를 들어서 주위 풍경을 돌아보고, 산에서 내뿜는 상쾌한 공기를 즐기게 됩니다.


트랙에서의 달리기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향합니다. 달리기를 시작할때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봅니다. 300일이 지나도 매일 아침 일어나고 나가는 것이 힘든 것은, 전날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소진했기 때문인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눕자마자 잠이 들고, 잠자는 긴 시간동안 너무 푹 쉬다보니, 게으른 몸이라는 녀석은 늘 편안하 상태를 유지하고 싶고, 일어나서 나가는 것이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300일을 넘게 달린 시간이 제 인생에 습관을 만든 것은 분명하지만, 습관이 생겼다=편하다 는 아니다 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이전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게으른 사람일 테고, 그 게으름과 싸우는 습관이라는 녀석은 아주 조금씩이지만 매일매일 강해질 테지요. 그 강함을 체감하기에는 300일 이라는 시간은 아직 부족한가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두번째 질문인, 왜 멈추는 것을 두려워 하는가  에 대해서 답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아직 게으른 나를 습관이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힘이 약합니다. 구멍이 미세하게 뚫린 고무튜브에 바람을 넣듯 하루도 쉬지 않아야 크고 단단한 습관이라는 녀셕이 유지될 터입니다. 습관이라는 녀석이 게으른 나보다 더 커지려면, 하루라도 쉬면 안됩니다. 300일 동안을 쉼없이 바람을 불어 넣었어도, 그 바람이 빠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순식간일테니까요. 그래서 멈출 수 없습니다. 저는 게으른 나를 이겨내고 싶으니까요.


생각이 정리될 쯤, 목적지인 집에 도착합니다. 1시간 남짓 쉼없이 움직였던 다리와 팔 그리고 심장이 목적지에 도착하면서 잔뜩 들어갔던 힘을 빼면, 온 몸으로 뿌듯함과 행복한 기분이 느껴집니다. 습관이 들지 않아서, 멈추는 게 무서워서 고민이지만, 제가 달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는 것을 300번째의 완주에서 알게 됩니다. 오늘도 다치지 않고, 천천히, 행복한 달리기를 마칠 수 있어서 감사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도 달릴건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물론이지! 그래서 400일이 되었을때, 어떻게 내 삶이 달리기를 통해 바뀌어 나갔는가를 다시 한번 살펴 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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