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5일이 저에게는 매년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의 의미보다 조금 더 큰 날이었던것 같습니다. 매일 달리기를 해온 나날중의 중요한 이정표로, 매일 달리기를 시작한지 600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24일을 아이와 하루종일 온 도시를 돌아다니며 크리스마스 이브를 만끽했고, 그 다음날 아침 어김없이 저는 새벽 5시에 일어나 거리로 나갔습니다.
밖에 나가서 뛰면 며칠되에 항상 기관지염으로 고생을 하게 되어서, 헬스장으로 향했습니다. 매번 정해진 속도로 천천히 달리기 때문에, 이날도 1시간을 조금 넘는 시간을 러닝머신에서 달려서 10km 를 채우고 샤워장으로 향했습니다. 달리기를 하면서 했던 또하나의 약속, 찬물샤워가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하 7도가 넘는 새벽, 찬물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순간 숨이 가빠오고, 머리가 조여지는 느낌이 나지만, 시간이 지나면 주체할 수 없는 상쾌한 기분이 몰려듭니다. 샤워를 하면 할 수록 손이 시렵고 살갖이 따가워 오지만, 한번 밀려온 찬물의 희열은 그 모든것을 상쇄하고 남음이 있습니다. 찬물샤워까지 마치고 집에 가는길에, 캘린더에 매일 달리기 600일차 를 기록합니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함께 시작했던 사업, 내가 하고 싶었고 꿈꾸었던 사업은 이제 제 앞에서 사라지고 없습니다. 24년 10월부로 서비스를 종료했습니다. 세상에 큰 기여를 해보겠다, 나만의 길을 개척해 보겠다,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겠다는 저의 다짐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제 다짐만으로 지탱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때 달리기에서도 위기가 왔습니다. 불안한 나를 매일같이 지탱해 줬던 달리기가 쓸모없게 느껴졌습니다. 매일 악을 쓰고 달리면서 불안감을 날리고 새로운 희망을 주입하던 시간들이 헛되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깨진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되지 않을 일에 희망을 주고 의지와 열정을 주기 위해 무리하게 매일을 달려왔던 걸까요? 이렇게 매일을 쉬지않고 달린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것들이 정말 이루어 질까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론이 나지 않았음에도,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런 의식과 의지를 가지지 않고 새벽도로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달렸습니다. 달리면서도 과연 달리기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10km 의 코스가 끝나있었습니다.
저는 그 이후 매일을 달리기에 물음을 던졌고, 달리기는 물음에는 대답이 없었고, 그저 저에게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묵묵히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다 보니, 그 물음을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에 나에게 닥칠 일들, 불안한 미래에 어떻게 생존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달리기에 대한 물음에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던 달리기란 녀석은, 다른 고민에 대해서는 또다른 해법과 열정 그리고 끈기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600일이 지났습니다. 제가 구상한 서비스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저는 새로운 일을 배우고 추친하고 있습니다. 한가닥 희망에 온 몸을 매달고 매일을 바둥거리고 있지만, 전처럼 막연하게 움추려 들지 않고 조금씩 전진하고 있습니다. 모르면 찾아다니면서 묻고, 못하겠으면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고, 도저히 안되겠으면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하면서 한발한발 전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서서히 다시 저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속에서 아침마다 달리기라는 친구가 제 옆에 있었습니다. 600일이 지난 시점에서, 문득, 달리기라는 녀석은, 해묵은 저의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 달리기, 너는 도데체 600일동안 나에게 무엇을 주었니?"
거기에 대해서 이 친구가 저에게 준 해답은 이것입니다.
" 꾸준함, 결코 무너지지 않는 너만의 꾸준함"
맞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600일 연속 매일달리기를 해낸 사람은, 당장의 꿈과 희망이 엎어지고 뒤집어져도 또 다시 다음날을 달리기로 시작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남들처럼 웅크리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았습니다. 이 친구가 준 꾸준함으로 매일을 생존할 수 있었고, 조금이라도 꾸준히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치지 않고 꾸준히 600일을 달릴 수 있게 해 주셔서. 저에게 꾸준함이라는 것을 주셔서. 그리고 결코 포기 하지 않는 에너지와 질긴 생명력을 주셔서. 저는 1000일 2000일을 멈추지 않고 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