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서고자 할 때 남부터 서게 하고, 자신이 뜻을 이루고 싶을 때 남부터 뜻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기욕립이립인, 기욕달이달인. 능근취비, 가위인지방야이)” 《논어∙옹야》
“둥근 세모는 없다”는 말처럼 하나의 이질적인 특성을 동시에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둥글면 둥글고, 세모는 세모입니다. 우리의 눈은 밖으로 향해 있어서 눈 밖의 사물은 인식하지만, 안을 볼 수 없습니다. 거울을 볼 때를 제외하면 자신을 보지 못하는데 자신을 볼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눈은 밖을 보는 게 당연하지만, 삶에서 자신의 자리에서 한 쪽만 보려고 할 때는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봐.” 어느 시대에서나 사회를 막론하고 ‘갑(甲)’은 존재해 왔습니다. 그래서 ‘갑’의 존재를 없애려고 노력하기보다 현실적으로 ‘갑질’하는 사람이 적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갑질’에서 벗어나 ‘갑’다운 갑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시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하는 데, ‘자신의 서 있는 자리를 바꿔보는 행위’를 뜻합니다.
미국의 작가이자 목사인 존 맥스웰은 자신의 저서 《함께 승리하는 리더》에서 ‘어머님의 선물’이라는 예화를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한 어머니에게 세 아들이 있었다.
이 세 아들이 성공하여 늙으신 어머님에게 무엇을 선물했는지 자랑하고 있었다.
첫째가 말했다. "나는 어머님께 큰 집을 지어드렸지."
둘째가 말했다. "나는 어머님께 운전기사가 딸린 최고급 스용차를 보내드렸지."
셋째가 말했다. "형들 모두 나에게 졌어. 어머님는 성경 읽으시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요즘 시력이 약해져서 글을 잘 못 읽으시잖아. 그래서 나는 성경 전체를 모조리 암송하는 갈색 앵무새를 드렸지. 수도원에 사는 수도사 열두 명이 12년 동안 밤낮으로 훈련시킨 결과였지. 훈련비로 자그만치 십만 달러씩 10년이나 기부금을 내야 했지만 난 전혀 아깝지지가 않아.
얼마 후 어머니는 세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첫째야, 네가 지어준 집은 너무 크구나. 내가 사용하는 방은 오직 한 개인데 온 방을 다 청소해야 하니 정말 힘들구나."
"둘째야, 난 이제 여행을 다니기엔 너무 늙었구나. 난 안제나 집에만 있기 때문에 그 최고급 승용차를 탈 일이 별로 없구나."
"사랑하는 막내야, 역시 이 늙은 어미의 속내를 아는 사람은 우리 막내밖에 없구나. 그 닭고기는 정말 맛있었단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닭고기를 먹은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세 아들은 어머니이 원하는 선물이 아닌 자신의 생각대로 선물을 하다보니 이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 번쯤은 어머니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있었으면 좋았겠죠.
본문에서 제자 자공은 공자에게 여쭤봅니다. 자공은 타인과 어떻게 관계에게 ‘인(仁)한 삶’, 즉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묻는데, 그 질문은 곧 관계에서의 ‘사람다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자공이 묻기를, 만약 백성들 중에서 널리 은혜를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습니까? 인(仁)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해 공자는, “어찌 인에만 해당된 일이겠느냐? 반드시 성인일 것이다. 요임금과 순임금조차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근심으로 여기셨다. 인이란 것은 자신이 서고자 할 때 남부터 서게 하고, 자신이 뜻을 이루고 싶을 때 남부터 뜻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라고 대답합니다. 《논어》는 대부분의 내용이 공자와 제자들의 문답으로 이뤄져 있는데, 특히 어떻게 사는 것이 ‘인(仁)’을 실천하는 삶‘에 대한 질문이 상당히 많습니다. 본문도 바로 그 ’인(仁)‘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어서 공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미루어서 남이 원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인의 실천 방법이다.”라는 답을 제시합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입니다. ‘욕망’은 자신이 추구하는 그 무엇입니다. 그게 유형의 물질이 될 수도 있고, 무형의 가치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와는 구별해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살 때 관계는 틀어집니다. 우리 사회는 세대차이로 갈등을 겪지만 요즘은 같은 세대인 ‘노노(老老) 갈등’이라는 단어도 생겼습니다. 지하철은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가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서울의 경우 전철 내의 노인 비율이 상당히 높다보니 경로석이 늘 만원입니다. 그 자리에 가끔 젊은이들이 앉아 있을 때면 ‘큰 소리 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이 경로석이 늘 만원이다 보니 노인끼리 자리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종종 보곤 하는데 이를 ‘노노(老老) 갈등’이라고 부릅니다.
현대인의 욕망을 인간의 발달 단계에 따라 5단계 욕구설을 제시한 심리학자가 에이브러햄 매슬로입니다. 그는 인간의 욕구를 ‘생존욕구, 안전욕구, 소속에 대한 욕구, 인정에 대한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이렇게 다섯 단계로 설명합니다. 맨 아래가 가장 기본적 욕구인 ‘생존욕구’를 거쳐 마지막으로 ‘자아실현의 욕구’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명하는데 본질적으로 인간의 삶을 자신의 욕구를 충족해 나아가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욕구를 더해야 합니다. ‘자아실현의 욕구’를 넘어서 ‘자이초월의 욕구’입니다. 욕구나 욕망은 채워져야 하지만 ‘이기주의’나 ‘자기중심적주의’로 무장한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삭막하기 그지 없기 때문입니다.
친구를 배려하고 깊은 우정을 나눈 이야기 가운데 ‘관포지교(管鮑之交)’가 있습니다.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에 살았던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는 어릴 적부터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관중은 어려서부터 톡톡 튀는 성격으로 말썽을 많이 일으켰는데 그때마다 포숙아가 대신 벌을 받고 매를 맞았습니다. 청년이 되어 둘이 함께 장사를 했는데, 돈이 벌면 항상 포숙아보다 관중이 더 많이 가져갔습니다. 그런데도 포숙아는 불평하지 않습니다. 관중의 집이 가난하고 모셔야 할 어머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관중이 관리가 되지만 계속되는 실수로 많은 이들로부터 비웃었는데, 포숙아는 여전히 그를 두둔합니다. “무능한 게 아니라 때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또 둘이서 전쟁에 나갔을 때 관중이 세 번이나 도망을 치니 사람들이 비겁하다고 욕을 하자, 집에 연로한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변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제나라에 환공이 왕위에 오르고 포숙아가 재상을 오를 수 있음에도 제롼공을 설득하여 관중을 재상으로 삼게 합니다. 이때부터 관중은 제환공을 도와 당시 최강대국으로 올려놓습니다. 관중은 이런 포숙아에 대해 “나를 낳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아는 것은 오직 포숙아뿐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라고 포숙아에게 진정어린 감사를 돌립니다.
재상의 자리와 부와 명예는 포숙아에게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포숙아는 공자의 가르침처럼 ”인이란 것은 자신이 서고자 할 때 남부터 서게 하고, 자신이 뜻을 이루고 싶을 때 남부터 뜻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라를 삶으로 실천한 사람입니다.
‘이타심’은 기분을 좋게 해 줍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자기중심적’으로 살도록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자신의 욕망에 앞서 자식의 바람을 먼저 채워주고, 자식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여깁니다. 마찬가지로 바른 리더는 성공을 꿈꾸지만, 자신을 따르는 이들의 성공에 감격에 겨워합니다. 항상 남을 위해 사는 ‘이타주의’는 어렵지만 우리 자신을 초월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은 인생에서 더 깊은 의미와 보람을 가져다줍니다. 우리 자신을 초월하는 능력, 즉 ‘자기초월의 욕구’야말로 ‘사람다운’ 삶을 사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다.
유태인으로 태어난 이유 하나만으로 히틀러의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은 ‘의미’의 학자로 부르는 데 그는 말을 남깁니다. “어떤 면에서는 눈의 기능 역시 자아초월적이다. 눈은 거울을 볼 때를 제외하고 그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시장논리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항상 ‘돈’과 ‘성공’이라는 안경을 통해서 바라봅니다. 가장 소중한 인간 관계 조차도 삶에서 나만의 성공과 행복을 꿈꾸고, 관계에서 소중한 ‘가치’는 사라지고 돈의 논리인 ‘가격’과 ‘성공’으로만 관계를 규정하려고 합니다. 공자가 생각한 ‘인(仁)’, 즉 ‘사람다움’은 자신의 성공만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먼저 타인을 성공의 자리로 보내는 삶입니다.
권영민 소장(권영민인문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