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Philharmonic Orchestra '16 Season
도밍고 힌도얀의 영웅의 생애
2월 12일 (금)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도밍고 힌도얀 Domingo Hindoyan, conductor
바이올린 김수연 Suyoen Kim, violin
프로그램
요하네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Johannes Brahms, Violin Concerto, Op.77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영웅의 생애 Richard Strauss, Ein Heldenleben, O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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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의 빈자리만큼이나 군데군데 빈자리가 큰 연주였다. 스베틀린 루세브 대신 악장 자리에 앉은 웨인 린의 바이올린 솔로는 나쁘지 않았으나, 확신에 찬 연주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힌도얀과 시향이 그린 영웅은 평면적이었고, 지휘자도 단원도 모두 많은 것을 바라지 않음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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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간 서울시향 연주의 완성도는 일정한 편이 아니었다. 기량의 절정을 찍었던 지난 시즌에도, 수석진들이 총출동하고 예술감독이 포디움에 있을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음악은 명백히 달랐다. 단원들의 눈빛도 달랐다.
그러나 이제는 악장을 비롯한 주요 수석이 이탈하였고 예술감독도 없다. 성공에 있어 매우 결정적이라고 믿어왔던 두 요소 없이 시즌을 치러내야 했다. 그렇게 진행한 첫 연주(브루크너9)는 모두를 놀라게 했고, 두번째 연주(말러6)는 결연한 의지로 충만하였다. 단원들의 집중력은 오히려 발전한 듯 헸다. 관객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고, 실낱같은 희망이라 할지라도 어떤 기대감을 품음직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영웅의 생애>는 중요했다. 지난 두 번의 성과가 온전히 그들의 역량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인디언 서머에 불과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웅의 생애>보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실연을 듣는다는 기대감이 컸다. 워낙 관현악적 성격이 짙은 협주곡이기에, (당연한 말일 수 있으나) 오케스트라와 협연자가 혼연일체로 대등하게 녹아들어가야 좋은 연주가 나오게 된다. 유독 음험한 인상을 풍기기도 하고, 테크닉적으로도 매우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안타깝게도 협연자는 카덴차에서 눈에 띄는 실수를 했고 이후부터는 시향도 김수연도 기대치를 확 낮춘 것 같았다. 오히려 2악장에서 먹먹하고 찬연한 솔로연주를 보여준 오보에 이미성 수석이 주인공인 것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김수연의 음악적 역량은 동년배의 한국인 연주자들에 비해 성숙한 듯 한데, 뜨거우면서도 어느 순간 고요하게 음악을 조망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지휘자 도밍고 힌도얀은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가 키운 지휘자 (중 하나)라고 한다. 남미 출신의 젊은 지휘자가 그려내는 영웅이 어떨까, 자못 기대가 되었다. 결론적으로는 무엇 하나 뚜렷하게 다가오지 못했던 평면적인 모습이었다고 생각된다. 사랑이 시작되어 결실을 맺는 과정에서 고혹적으로 빛나야 하는 바이올린 솔로가 보통의 수수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나쁘다고 하긴 어렵지만, 응당 하이라이트로 자리해야 하는 부분이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또, 굵은 장대비같던 시향 특유의 현이 중심을 못 잡고 내내 휘청거렸고, 목관은 어수선했다. 영웅의 행진을 상징하는 팀파니는 리드미컬했으나, 그것만으로는 승리의 환희를 표현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천천히 슬로프를 내려오는 초보 스키어처럼 자신없게, 곡은 마무리되었다. 어이 없는 '안다 박수'가 터졌다 멈췄다.
돌이켜보면 지난 두 번의 연주회는 목적이 분명했을 것이다. 거장 에셴바흐의 지휘봉 아래 브루크너 9번의 숭고함을 표현해야 했고, 젊은 부지휘자와 서로를 의지하며 말러 6번이라는 거친 산을 올라가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강렬한 색채의 곡인 만큼 악보대로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왔다,고 결론 내렸을지 모르는 일이다. 구심점도 없고 확신도 없는 연주는 시향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이번에도 꾸준한 기량을 보여주었다면, 단순 '응원'에서 '믿음'으로 마음이 기울었을 텐데. 아쉽고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