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택시_역삼역
"집사님, 우리 월급이 얼마랬죠? 스물여섯번 채웠으면, 가불해간거 채워줘야 하는거 아니에요?"
기사님은 큰 소리로 통화를 하고 계셨다. 이미 나의 행선지는 입력되어 있기에 굳이 기사님의 통화를 끊어가며 역삼역으로 가주세요, 라고 말할 필요는 없는듯 했다. 나는 C부장님과 함께였다. 기사님과 우리 일행의 거리는 확실해 보였다. 그녀는 그녀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고, 우리는 언제든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는 사이였다.
C_"아마 연말에 집행할 예산이 좀 남아있는 것 같아요. R이사님이 컨펌했어요."
나_"R이사님이랑 왜이렇게 자주 만나세요? 거의 맨날 보는 것 같애"
C_"R이사님이요? 친하죠. 제가 정말 좋아하는 형이죠. 형도 교폰데, 직급 때문에 되게 많이 힘들었나봐요. 그 회사에서 30년 이상 일한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조인한 R이사님을 엄청 질투했나봐요. 또 연봉이 높으니까. 그래서 대표한테 탄원서도 내고 그랬대요. 왜 저 사람만 연봉체계가 다르냐고.."
나_"헐. 연봉은 어떻게 알았대요? 별걸 다 하네, 일이나 할 것이지 피곤하게..."
C_"그러니까. 암튼 근데 그 회사 대표가 외국사람인가봐요, 그래서 탄원서 낸 사람들한테 이렇게 말했대요. [Because he's different.]
나_"그렇구나.R이사님도 얘기 들어보면 들어볼수록 특이한 분 같애요."
한남대교를 건널 때 즈음 우리는 이미 대화의 깔대기, 연애/소개팅 잡담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C_"그분이랑 영화 보기로 했어요. 아.....근데 너무 힘들어요. A님은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이 마음에 안들었을때, 어떻게 하셨어요?"
나_"음...저는 그냥 차단했던것 같아요. 어차피 다시 안 만날거라면, 확실하게 시그널을 줘야 그분도 저도 시간 낭비를 안하니까. 그게 더 나은거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죠 그때는."
C_"A님이 그렇게 소개팅에 퇴짜를 많이 놨다면서요. 뭐 저번에 판사인데 A님이 가차없이 짤랐다고 들은것 같은데. 하하하하. 뭐가 그렇게 맘에 안들었어요?"
나_"아니 또 누가 그런 소문을 냈대? 팩트이긴 해요. 제가 김변언니랑 친하니까, 언니가 법조인들 꽤 많이 소개해 줬었거든요. 근데 그때 그 판사가 저한테 뭐, 막 만나자 마자, 자기는 스마트한 여자가 좋다고 그러지를 않나, 뭔상관? 어쩔? 하여튼 엄청 좀 핀트 안맞게 굴고, 워크 라이프 밸런스가 좋다는둥 뭐 한참 지자랑만 너무 오래 하는거예요. 그래서 뭐 ... 차단했죠."
C_"하하하하하하하. A님 표정보니까 진짜 싫었나부다. 판사라고 해서 뭐..좋대요?"
나_"아니 저는 판사고 뭐고 일단 대화를 해야 만나던 말던 할거 아니에요. 자기 자랑만 하는게 뭐가 대화야. 날더러 뭐 어쩌라구... 진짜 웃겼던게 뭔지 아세요? 판사가 걸어다니는 권력기관인가 그렇대요. 난 그런 말도 처음 들어봤어. 권력기관? 그런게 사람을 향해 쓰일 수 있는 말인지 나 진짜 그때 처음 알았다니까. 근데 그럼 뭐 어쩔? 완전 나는 노상관. 권력기관이고 뭐고 나랑 진짜 1도 상관 없는데. 난 법없이도 사는 사람인데! 어쩌라는 거예요?"
한참을 무르익은 대화에서 불쑥, 기사님이 끼어들었다.
기사님_"권력기관이면 뭐 어쩌라고요. 권력을 가졌으면 그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 안그래요?"
항상 누구에게든 친절한 C부장님은 부드러운 말투로 기사님의 대화 신청(?)에 응했다.
C_"그러게요. 아무 상관없죠 그쵸?"
C부장님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말투에 기사님은 기쁘셨던 모양인지 봇물이 터지신 듯 했다.
기사님_"아니. 택시 회사도 그래요. 회사 상무님이 날더러 그래요. 따박따박 말대꾸를 한대요 나보고. 너는 기사고 나는 상문데 어디 기사가 상무한테 따박따박 대드냐는 거예요. 근데 그렇지 않아요? 스물 여섯개를 못했다고 월급에서 못한 만큼을 가불을 해가요. 그러면 스물 여섯개를 하면 돌려줘야 되는거 아니에요? 내가 그렇게 얘기를 했더니 그러는 거예요. 따진다고. 상무면 상무지. 계산은 정확하게 해야지. 까스도 그래요. 까스값을 미리 떼간단 말이에요? 이만큼 넣는다고. 근데 내가 그걸 다 안쓰면은 남는 만큼은 돌려줘야죠. 그만큼 쓰지도 않았는데. 안그래요?"
C_"그럼요. 쓴만큼만 가져가야죠."
기사님_"그런데 나한테 따박따박 대든다고 뭐라고를 해요. 내가 그럼 그러지. 상무님. 내가 택시하니까 상무님이 상무님이지 내가 간호사 하던 시절에는 당신같은 사람 발톱의 때만큼으로도 안봤어요. 그리고 스물 여섯개를 했으면 가불해간 돈은 돌려주는게 당연히 맞잖아요. 내가 아까 집사님한테도 그랬어요. 월급 받는 돈이 백이십만원이래길래. 스물 여섯개 했냐고. 그랬더니 했대요. 아니 그러면 가불해간 돈 돌려 받아야지. 내가 보니까 택시 기사들도 전부 병신들이야. 당하고만 있지 따지지를 않어요. 상무님은 뭐 자기가 윗사람 다워야지. 따진다고 뭐라고 하면 그게 돼요? 내가 삼십년동안 간호사를 했는데. 아랫사람들한테 내가 모범이 되어야 그사람들이 나를 따르지. 내가 수간호사라고 내가 하고싶은대로만 하라고 하면 그사람들이 따라요? 요즘에는 안그래요.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내가 행동을 해야지 아랫사람들이 따라하죠. 안그래요? 택시한다고 무시하고 그러면 안돼요. 근데 기사들도 바보들인게. 매앤날 사고나면 드러 눕기만 하지 막상 윗사람들한테 잘잘못을 시시비비 따지지를 않는다니깐? 드러 눕는거는요. 내가 간호사였어서 알아요. 뭐를 그런걸로 병원에를 가, 가지 말라고. 내가요. 택시한지 이틀인가 삼일밖에 안됐을때. 므소가 나를 들이 받았어요. 완전히 므소가요."
기사님의 말에 귀기울이던 중 므소라는 단어를 듣고 나는 갸우뚱했다. 무와 소? 동그랗게 뜬 눈을 C부장님은 눈치챘나보다.
C_"아아, 무쏘요? 그 커다란 차요?"
기사님_"예에. 그게 나를 들아받았다니깐. 내가 그래서 죽을고생했어요. 고생 심하게 했어요. 어디 여기예요? 이건물? 아이고 내가 좀더 빨리 얘기를 할걸 그랬네."
C_"예, 여기에서 내려주시면 돼요. 기사님, 그런데 다 나으셨어요? 이젠 괜찮으신거죠?"
나는 재빨리 카드를 갖다대고 차문을 열어 내릴 채비를 했다.
기사님_"괜찮죠 이제. 들어가요~!"
C부장님은 친절했다.
C_"예, 감사합니다!"
나는 감탄스러울 정도로 다정다감한 C부장님이 그저 놀랍기만 했다.
나_"기사님께서 부장님 때문에 설레셨겠어요. 아주 말투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네요 부장님!"
C_"헤헤. 아니에요. 기사님이 심심하셨나부다. 우리한테 말거시고. 그쵸?"
나의 택시 탑승은 대부분 혼자다. 외근이 잦지만, 시급으로 책정되는 인건비 규정상 외부 활동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인원으로 움직일 것이 권장된다. 하지만 오늘은 C부장과 함께여서 외롭지도 않았고, 타자마자 섬유유연제와 비슷한 향긋한 냄새가 나던 택시를 타서 다행이었다. 기사님은 씩씩하셨고, 생활에서 우러나는 두터운 지혜 같은 것이 있는 분 같았다. Street smart 라는 단어가 참 어울리는 분이었다. 부디 그분이 가불된 돈을 다 돌려 받으셨기를, 그리고 그분의 동료들도 무사히 스물 여섯번을 하셔서, 처음부터 가불당하는 일이 없으시기를. 나는 택시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고, 택시 기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거친지는 이미 수많은 기사님들을 통해 들은 바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들의 노동에 대해서는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택시 기사님들이 연결해주신 내 수많은 외근들도,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할 텐데...라는 자조섞인 바람도 더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