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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ㅇ Nov 13. 2016

샌프란시스코심포니와 마이클 틸슨 토마스

MTT 명성의 재확인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 & 마이클 틸슨 토마스

11월 10일 (목)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마이클 틸슨 토마스 Michael Tilson Thomas, conductor

협연 임동혁 Dong Hyek Lim, pianist

프로그램

틸슨 토마스 Tilson Thomas, 아그네그램 Agnegram

쇼팽 Chopin, 피아노 협주곡 2번 Piano Concerto No.2 in F minor, Op. 21

말러 Mahler, 교향곡 1번 Symphony No.1 in D Major

출처: 크레디아 홈페이지 (http://www.crediainternatio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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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밀도, 초고해상도의 말러. 해석은 전략적으로, 표현은 편안하게. 서두르지도 않고 과장하지도 않지만 말러의 온갖 다이나믹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포함되어있었던 전략적인 해석. Mutually exclusice, collectively exhaustive. 모든 악기가 맞춤 양복처럼 정밀하고 온화하게, 그러면서도 편안하게 짜여져 있던 색다른 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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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틸슨 토마스가 처음으로 한국에 왔다. 그의 이십년 동반자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를 이끌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공연장을 찾음직 하다. 협연으로는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붙었다. 메이저 오케스트라와 국내에서 하는 협연으로는 실로 오랜만일 것이다. 하지만 티켓 가격은 너무했다. 어떠한 논리로 가격이 책정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장 비싼 티켓은 28만원, 가장 싼 티켓은 6만원이었다.  어찌되었든 지갑을 털어서라도 찾아봄 직한 공연임에는 틀림이 없으니, 본전을 기대하며 결제를 했다. 다만 쇼팽과 말러라는 프로그램 구성이 아쉬웠다.


대편성으로 MTT의 자작곡 '아그네그램'을 신명나게 연주하며 연주회의 포문을 열었고, 샌프란시스코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바로 이런거예요, 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듯 했다. 이어지는 임동혁의 쇼팽은 아름다웠고, 성숙미와 비장미를 동시에 풍겼으나 그를 반주하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는 성향이 조금 안맞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곡 자체만으로도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곡 아닌가. 임동혁은 풍부한 감수성으로 오밀조밀하게 곡을 완성하였으나, 뭐랄까 아래로는 거대한 심해가, 위로는 거친 파도가 풍랑을 만들어내는 곳사이에 낀 해류 같이 쉬이이익, 하고 밀려나버리는 느낌이었다. 임동혁이 가장 빛날 수 있는 곡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보면 기쎈 말러, 그중에서도 후술할 타이탄(...) 에게 묻혔다는 점에서 프로그램의 밸런스가 아쉬운 지점이었다. 오히려 협연 없이 교향곡 2개로 갔으면 어떨까, 아니면 협연으로 컨템포러리한 음악이나 미국식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곡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말러 교향곡 중 가장 대중적이라고도 하고, 또 그 명성에 걸맞게 실황으로도 자주 연주되는 1번 교향곡이다. 마이클 틸슨 토마스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함께 명반으로 거론되는 많은 말러 레코딩을 남겼다. 예상했던 바와 같이(!) 명불허전 MTT, 명불허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였다. 


우선 가장 큰 크레딧은 금관에게 가야 할 것이다. 재즈의 영향일지, 아니면 그냥 기분탓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들은 미국 오케스트라들은 발군의 브라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올해 초 내한한 시카고 심포니도 그랬고, 작년 LA필하모닉도 그랬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금관은 정말 클래스가 다른 명징함을 보여줬다. 흔히들 뿡뿡이라고 표현하곤 하는 브라스의 사운드와는 아예 달랐고, 흡사 타악기처럼 음정이 명료했고 음과 음 사이의 망설임이 하나도 없이 매끈했다. 합창석에 앉았음에도 그들의 볼륨은 정교하게 조절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트럼펫, 호른, 튜바, 트롬본 모두 제각각의 매력을 절정으로 뽑아내는 말러라니, 말러가 살아 있었다면 틀림없이 기뻐했지 않았을까?


너무 절정인 금관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중립적으로 들렸던 현악기군들은 음악 전체를 봤을 때 견제와 균형을 담당하는 듯 했다. 독일계 오케스트라처럼 뚜렷한 색깔이나 특유의 표현법이 있는것은 아니지만, 흠잡을 데 없이 전체 멜로디를 이끌고, 금관과 목관, 그리고 타악기들이 마음껏 연주할 수 있도록 튼튼한 터전을 다져 놓는 역할을 하였다. 가끔씩 드러나는 솔로 부분은 군더더기없이 깔끔했고 심지어 고상하기까지 했다. 특히 3악장을 열어젖히는 더블베이스의 솔로부터, 현악기군들의 돌림노래 연주에서 이 악단의 스트링이 맡고 있는 역할이 극단적으로 드러났던 것 같다. (한마디로 완벽했다는 뜻이다) 한편, 플륫 수석은 촉촉한 음색으로 깊은 호흡의 비브라토로 아름다움 속의 공허함을 미끄러지듯 연주했다. 목관까지 완벽하면 어쩌란 말이지..? ㅠㅠ


말러 1번은 그로테스트하고 음험하게 표현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때때로 '타이탄'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이 음악을 적당히 과장하는 해석도 많이 보았다. 마이클 틸슨 토마스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말러는 뭐랄까, 그로테스크함도 말러의 일부이지만 음악의 짜임에 있어서 얼마나 말러가 완벽을 추구했는지도 보여주려고 하는 듯 했으며, 신파 멜로디의 왕(...) 이라는 점도 잊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반복되는 구조 속을 지루하지 않게 표현하는 방법을 꼼꼼하게 연구한 듯 했다.  왜 말러가 이렇게 했는지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잘, 깊이 이해한다고 해야 맞을까? 중복되는 부분이 없고, 부분을 모두 모아 놨을 때에도 빠지는 부분 없이 전체를 완성해버리는 MECE함을 보여준 마이클 틸슨 토마스, 정말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놀라운 지점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연주가 굉장히 편안했다는 것이다. 과장한다는 느낌 없고, 지나친다는 느낌도 없지만 전혀 모자라지는 않고 오히려 풍성한.. 특히 저렇게 유려하고 맛깔나게 뽑아내는 금관이 있는데도 한치의 과장이 없는 타이탄이라니, 상상한 적도 없었던 방식이다. 이 품격은 흡사 100년된 테일러가 꼼꼼하게 맞춘 비스포크 양복과 같았다. 말러에 대한 전략적인 해석과,  편안하고 온화하게 앙상블을 뽑아내는 악단이라니. 둘의 궁합은 정말 불세출의 그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올해 실황으로 접한 연주회 중 가장 만족도가 높았다. 이런 경험을 하기 위해서 거금을 주고 연주회장을 찾는 것이다. 대통령 때문에 심란하기는 대한민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인 것같아 보이는데, 요즘 새삼 재조명되고 있는 드라마 '밀회'의 대사, "음악이 갑이야!!!" 를 몸소 보여주는 듯 한 이들의 연주에,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격조있고 세련된 매너로 오케스트라와 관객을 이끈 마에스트로 마이클 틸슨 토마스에게는 더욱 더 특별한 의미의 격려를 하고 싶다. 부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의 끈끈한 우정과 의리를 쭈욱 이어나가시기를 기원한다. 그들로 인해, 미국 오케스트라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여지없이 무너졌듯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선입견을 온화하게 품어안고, win over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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