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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ㅇ Feb 04. 2017

마르쿠스 슈텐츠 사이클1_낭만주의 시대의 혁명가들

서울시향 '17시즌 정기 연주회_Jan20

마르쿠스 슈텐츠 사이클1_낭만주의 시대의 혁명가들

1월 21일 (토)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지휘 마르쿠스 슈텐츠 Markus Stenz, conductor

피아노 데죄 란키 Dezső Ránki, piano


프로그램

스트라빈스키 장송적 노래 (아시아 초연) Stravinsky, Funeral Song Op.5(Asian Premiere)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제1번 Liszt, Piano Concerto No. 1 in E-flat major, S. 124

슈만 교향곡 제2번 Schumann, Symphony No. 2, Op. 61 

출처: 서울시향 홈페이지 http://www.seoulphil.or.kr/lounge/spo/list.do 


롯데콘서트홀에는 "마르쿠스 슈텐츠 취임연주회"라는 별도의 타이틀이 더 붙어 있었다. '17시즌부터 서울시향의 수석객원지휘자(conductor-in-residence)로 활동하기로 한 마르쿠스 슈텐츠는 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와 꽤 훌륭한 말러 사이클을 녹음하여 출반한 적이 있는 지휘자이다. 나는 지난 시즌 서울시향과 함께 말러 교향곡 1번을 지휘한 것으로 그를 처음 접하였고, 내 지인들은 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의 내한 연주때 굉장히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단다. 연주 직후 짧게 적어두는 내 메모에는, 시향과 그의 말러1번(시향은 오죽 말러1번 연주를 자주 했다, 내 기억으로는 브람스 4번과 더불어 가장 자주 연주한 교향곡 중 하나로 기억될 정도이다)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었다: "기괴함을 잔뜩 장전하고 타이탄을 씹어드신 마르쿠스 슈텐츠".


취임연주회라는 괴상한 타이틀은 차치하더라도,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지휘자가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 어떤 합을 선보이게 될 지, '17시즌을 넘어 시향의 연주력과 색채에 대한 향방을 점쳐볼 수 있는 중요한 연주회다 싶어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갔다. 결론은, 슈텐츠의 영입은 '로맨틱, 성공적' 으로 요약할 수 있을 듯 하다. 그가 지휘하는 연주회가 연내에 단 하나밖에는 더 계획되어 있지 않으나, 슈텐츠가 어떻게 시향을 조련할지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기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악장은 웨인 린이 맡았고, 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오보에, 플륫은 수석이 빠진 상태로 스트라빈스키의 '장송적 노래'로 연주회의 문을 열었다. 해당 곡은 아시아 초연이라고 한다. 스트라빈스키가 그의 스승인 림스키-코르사코프를 기리기 위해 작곡한 곡이라 한다. 장송 하면 연상되는 음울한 색채 대신 변화무쌍하고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악상들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는 곡이었다. 연주시간이 생각보다 길었지만(12분), 지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수석진이 없는 상태에서의 시향 연주력에 대해 다소 마음이 아픈 상태로 감상했다. (특히 플룻과 오보에는 오랜 시간 동안 합을 맞춰온 두 수석간의 케미가 엄청나고, 두분 다 기량의 기복이 거의 없으신 분들이라 그런지 항상 만족하곤 했었다) 


협연으로는 헝가리의 피아니스트 데죄 란키가 역시 헝가리 출신의 작곡가/피아니스트인 프란츠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예정되어 있었다.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실연으로 들어보는 것은 처음이었고, 데죄 란키 역시 처음이었다. 롯데콘서트홀 특유의 부드러운 울림 때문인지, 그의 소리는 리스트가 요구하는 무지막지한 테크닉을 체감할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하고 편안하였다. 이 곡의 특이한 점은 3악장에 트라이앵글과 피아노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인데, 트라이앵글 주자가 2바이올린과 비올라 사이의 앞쪽으로 이동하여 굉장히 큰 소리로 전면에 나섰다. 피아노와 트라이앵글의 소리는 생각보다 잘 어울리지는 않았다. 데죄 란키의 소리는 순수하고 깨끗한 편이었는데, 금속성이 짙은 트라이앵글이 전반적으로 소리를 확 잡아먹는 느낌이었다. 물론 특이한 조합으로 오랫동안 기억이 날 것 같기는 하다. 그밖에도 데죄 란키는 서울시향을 많이 기다려준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곡은 피아노가 굉장히 많이 부각되는 곡으로 짐작하고 연주를 들었지만, 실상은 그의 차분하고 오밀조밀한 타건은 의외로 오케스트라에 녹아들었다. 

 

2부의 슈만 교향곡 2번이 놀라웠다. 보통 협연 반주는 그럭저럭 하고, 2부 교향곡의 3,4악장에서 하얗게 불태워버리는 시향 스타일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색깔이 완전히 달라진 연주를 선보였다. 


내가 생각하는 시향 사운드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유려하고 낭만적인 1바이올린으로부터 시작해서, 2바, 비올라로 갈수록 진한 음색으로 그레디에이션 되다가, 거칠고 투박하게 으르렁거리는 베이스로 애수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현악군들, 그리고 이에 얹어진 청초한 아름다움의 목관이다. 때문에 시향의 손에 꼽히는 열연/명연들 (말러 9번이라던지, 5번이라던지, 브람스 4번이라던지, 베토벤 6,7번이라던지, 프로코피에프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던지, 차이코프스키 6번이라던지...)은 지극히 낭만적이었지만 어딘지 모를 우수와 애처로움을 짙게 풍길 수 있었다. 그리고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플륫과 오보에, 클라리넷은 비현실적으로 반짝임으로서 이 애처로움을 더욱 극대화하는 장치로 작용하였던 것 같다. 대체로 전 예술감독 정명훈의 지휘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졌기 때문에 어쩌면 정명훈이 선택한 서울시향의 색깔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르쿠스 슈텐츠 지휘봉 아래에서의 시향은 위의 특징을 완전히 걷어내 버린듯한 인상이었다. '신파'라고도 비난받기도 했던 모든 자극적이고 때로 과장되었던 우수는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현악기군들은 화려하고 다채롭게 빛났고 베이스와 금관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듯 했다. 플륫, 오보와 클라리넷이 너무 빛나서 다소 존재감이 덜 드러났던 바순은, 목관의 소리를 자연스럽게 융합하여, 3개 악기의 윤기와 활기를 더했다. 슈만 2번은 그냥 듣기에도 아름다운 곡이지만 마르쿠스 슈텐츠의 전략은 슈만 2번을 통해 시향이 그간 표현하고 추구해온 '아름다움'과는 전혀 다른 종류, 매우 긍정적이고 화려한 류의 극단까지 실험해 보는 듯 했다. 아주 탐미적인 슈만이었고, 시향은 해당 영역에서 나쁘지 않은 밸런스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마르쿠스 슈텐츠가 올해 시향을 지휘하는 것은 앞으로 한번밖에 더 예정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알지만, 에너지 넘치고 의외로 싹싹한 그의 태도가 서울 관객의 드셈, 혹은 젊음과 상당히 잘 어울릴 것 같다. 그가 조련할 서울시향이 슈만 교향곡 2번을 통해 살짝 드러난 셈이라면, 정말로 많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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