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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Jul 26. 2020

만리재길, "불"이 필요한 사주

글을 쓰면 좋아질 팔자

주변인들과 사주나 별자리 등 운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꼭 덧붙이는 말이 있다.

"내가 사주/별자리를 믿지는 않는데, 있지..."

하지만 나는 무려 핸드폰에는 내 사주팔자를 분석해주는 명리학 어플도 갖고 있고 일주일마다 별자리 운세도 꼬박꼬박 체크한다. 대운이 언제 들어오는지, 내가 어떤 기운이 강한 사람인지, 별자리 운세가 일러주는 올해의 전체운은 어떤지 눈감고도 줄줄 욀 수 있다는 것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앞으로는 사주나 별자리를 믿지 않는다는 거짓부렁 따위는 그만 덧붙여야겠다 싶다.




그저 운세라고만 인식하고 있던 사주의 세계에 대해서 처음으로 제대로 듣게 된 것은 만리재길 어딘가를 달리고 있던 택시 안에서였다. 택시의 동승인은 나의 지도교수님으로 당시 명리학의 세계에 푹 빠져 계셨다. 그녀를 통해서 나는 "아이고, 내 팔자야~." 할 때의 그 "팔자"는 명리학에서 사람이 태어난 연, 월, 일, 시에 해당하는 음양오행의 성질로 구성된 여덟 가지의 기운이라는 명리학의 가장 기본부터 내가 물(水)과 흙(土)의 기운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어딘가 밋밋한 색의 조합을 띄고 있는 내 사주팔자를 보며, 나에게는 다섯 가지의 기운인 금(金), 수(水), 화(火), 목(木), 토(土) 오행 중에 "불"과 "나무"가 없다 했다. 그녀는 그중에도 내가 "불"이 있으면 기운이 조화로와질 사주팔자를 가지고 있으니 "불"의 기운을 가진 사람을 옆에 두거나 "불"을 만들어내는 일을 자주 하는 것이 좋다 했다. 불과 관련된 행위가 뭐냐 묻는 내게 교수님은 창작하는 것들이 그 예시가 될 수 있겠다며 "그중에서도 J씨는 글을 쓰는 것이 좋겠어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논문이나 쓰세요."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할 즈음 우리는 택시에서 내려야 했고 자연스레 사주와 명리학에 대한 이야기도 끝이 났다.



짧은 대화였지만 불이 주는 이미지가 강렬했던 탓인지 (아니면 그저 내가 이런 운세에 연연하는 탓인지) 나는 그 대화 이래로 초기의 인류가 그러했듯 '불! 나에게는 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잘(good이라는 의미보다는 well에 가까운 잘-) 못쓰는 탓에 한문단을 쓰는데 하루 온종일이 걸리는 나는 쉽사리 글 쓰는 일에 도전하지 않았다. 게다가 논문을 쓰며 여러 좌절을 맛본 이후에 역시 사람은 팔자대로 살아야 한다며 완전히 절망했었다.




그렇게 글쓰기와 불이 필요한 내 사주풀이는 자연스레 차차 잊혔다. 그러다 며칠 전 문득 회사에서 사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습관처럼 "제가 사주를 믿지는 않는데요" 라고 말문을 열며 익숙한듯 명리학 어플을 키고 동료들의 사주를 봐주고 있을 때였다. 한 동료의 불이 가득한 사주팔자를 보자 "J씨는 불이 필요해"라던 교수님의 음성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제서야 돌이켜보니 운명의 장난인지 지금의 나는 "불"의 기운에 둘러싸여 있더라. 출판사를 하는 남자를 옆에 두고 있고 브런치를 시작해 종종 글을 쓰고 있으니... 게다가 올해 하반기에 작은 집필/편집 프로젝트 계획까지 세웠다. 주변의 환경이 바뀐 탓인지 사람을 만나고 에너지를 바깥으로 쏟아내는 것을 좋아했던 내가 외려 최근엔 집에 틀어박혀 읽거나 쓰는 것을 즐겨하기까지 한다.




며칠 전 일기장에 작년과 지금의 시간을 비교하며 "지금의 삶과 그때의 삶 중 어떤 삶이 더 나은가 물으면 지금의 삶이 더 좋다 얘기할 수 있을 거 같다."라 썼다. 지금의 삶이 더 좋다고 확언할 수 있는 건 마침내 사주팔자에 불의 기운이 들어왔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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