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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Aug 04. 2020

1994년 4월 18일, 월요일

비 오다 개임

오전 11시쯤 당신의 전화를 받았어.

방금 잠을 깬 탓도 있겠지만 별반 사우디 건은 신경 쓰지도 않고 있었는데. 전화 속의 당신 목소릴 통해 결정되었다는 소릴 듣는 순간 잠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어.


지유 아침 준비한다며 김을 재우는데도 내 마음은 그냥 이곳저곳을 붕붕 떠다니는 것 같았고. 엄마에게 결정 났다고 전화드리는 내 목소리도 그냥 허공 속을 맴도는 것 같았어.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나오는 이휘재의 "그래, 결정했어"처럼 당신과 나 온양 내려오면서 참으로 다부지게 "그래, 결정했어!"라며 많은 가능성들을 얘기했는데.


글쎄 지금은 뭐랄까?



물론 참 잘된 일임에 분명하고 만약 안되었다면 두고두고 갔었으면 좋았을걸 하며, 놓쳐버린 우리의 가능성들을 아까워했겠지만... 막상 결정되고 나니 갑자기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고 우왕좌왕하게 되는 건  사우디가 워낙 먼 곳이기 때문일까?

당신 만난 지 6년 만의 가장 긴 떨어짐 때문일까?



새벽부터 조금씩 내리던 비가 그쳤어.

땅은 촉촉이 젖어있고 하늘은 조금씩 파란빛을 드러내기 시작했어. 가려진 구름 탓에 무등산은 그저 아스라이 멀리 느껴지고.




지유는 잠이 들었어. 엄마- 엄마-하며 노래를 불러대던 엄마 소리도 이젠 지유와 함께 잠 속으로 떨어졌고. 난 당신이 담배 피우는 그 자리에서 이 노트를 펼쳐 들었어. 이제부터 시작될 장문의 편지의 그 전초전이랄까?



지금 당신이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조급해지고 허둥거려지는 마음이 당신이 함께 한다면 가라앉을 테니까.



모든 것이 잘되길 바래.

늘 소원하는 마음으로 우리들의 현재 그리고 내일이 좋은 방향으로 잘 나아가길 빌 거야.


그래 이 모든 것들이 잘 되길 참으로 오랜만에 하나님께 기도드려야겠어. 늘 우리와 함께하시고 또 우리와 함께 하실, 우리 모두를 다 지켜주실 그분께 기도드려야겠어.


모든 것을 믿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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