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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Aug 07. 2020

1994년 7월 15일, 금요일

여전히 무더움

유난히 들들 볶아대던 지유를 간신히 재우고

여전히 찜통처럼 푹푹 삶아대는 날씨를 견디지 못해 샤워를 했어. 팔 다리 움직이는 것조차 덥고 짜증스러운 요즘 날씨.


당신 생각을 했어.


지금 시간 오후 4시 30분 일테고,

사우디에 도착한지 겨우 12시간 쯤 되어가고 있는 자기에게, 그 낯설디 낯선 무더운 나라 사우디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당신에게 다가오고 있나 하는.


잘 도착했다는 전화에 서울만큼은 덜 더웁다는 말도 덧붙혔지만, 나 걱정할까봐 거짓말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나라에 대해서 나 아는게 아무것도 없어.


간다 간다 하면서도 갈 것 같지 않던

어쩌면 안 나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의 사우디 행. 그 믿기지 않는 사우디 행을 7월 14일 8시 10분 비행기로 정말 치뤄냈어.


지유 안고 돌아서던 발걸음도 이곳 음성으로 오늘 내려와 최종 안착을 하는 마음도 어떠한 모양새인지 알 수가 없어.


매일 매일 쉴새없이 토닥거리며 싸우고 부대끼고

심지언 원수보다도 더 미워하며 펄펄 날뛸때에도

당신과 나 이렇듯 긴 떨어짐 같은 건 상상도 못했었어.


3년.

길 것 같지만 않던 시간들이.

6개월 뒤의 휴가 때문에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던 시간들이. 6개월 뒤의 휴가를 다섯 번을 끝내야만 얻어낼 수 있는 시간이란 걸 알았어.


당신과 함께 할 수 없는 그 긴 시간들 무엇으로 채울까? 나중에 우리 무엇으로 보상받지?




할 말이 태산같이 많았는데 당신 떠나 보낸 피곤이 아직 가시질 않았는지 눈꺼풀이 무겁기만해.


아직 많고 많이 남아있는 시간들을

태산같이 많은 이야기들로 채우기로 하고 오늘은 이쯤해야겠어. 전화 속에 들려오던 당신 목소리를 생각하며 잘거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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