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여행기 - 처음 마주한 홍콩
"아.. 어디든 가고 싶다"
나의 여행병이 슬슬 발동되는 순간이였다.
일상 속에서 가끔, 아니 자주 드는 생각이지만
그 날은 좀 달랐다.
목이 마른 아이처럼 떠나고 싶은 욕구를 갈망하며
나의 손은 어느새 항공권을 찾고 있었다.
'아니야.. 2주 후면 졸업시험이잖아.'
1학기 때도 여행으로 놓친 졸업시험이였다.
같은 과 동기들이 졸업시험을 볼 때, 나는 바다 건너 하노이를 걷고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 2학기 졸업시험.
이게 잘하는 짓(?)일까 망설이고 있던 찰나
이미 홍콩행 항공권이 내 손에서 예약되었다.
겨울방학 쯤 북유럽 가려고 모으고 있던 돈인데 ...
뭐 어떻게든 되겠지."
장담할 수 없는 몇 개월 뒤보다 지금 당장 떠나고 싶은 내 마음이 중요했다.
졸업안할거냐, 내년에도 학교에 있겠네 등. 과 동기들은 각종 망언을 퍼부었고
'시험은 뭐니뭐니해도 벼락치기야. 갔다와서 열심히 하면 되지'라고 보기 좋게 말은 했지만,
나 역시 걱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그치만 지금 내 기분은 '떠나고 싶은' 기분이니까,
이 기분에 충실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1주일 뒤, 홍콩행 비행기에 올랐다.
1년 사이 7번째 국외여행이었다.
제주에서 인천, 인천에서 홍콩.
이젠 조금은 익숙한 공항에서의 일들을 뒤로하고 홍콩에 도착했다.
10월 말.
이제 막 겨울을 향해 가고 있는 쌀쌀한 한국의 늦가을 날씨와는 달리, 홍콩의 날씨는 말그대로 천국의 날씨였다.
긴팔을 입어도 덥지 않고, 반팔을 입어도 춥지 않았다.
다행이다. 긴팔, 반팔, 나시까지 골고루 가져왔는데.
여름 내 사놓고 못입었던 여름옷들을 여기서 입을 수 있게 됐다.
얼마 안되는 비행이였지만, 전날 제주에서 서울로 넘어왔고
깊게 잠을 못자고 아침 비행기로 홍콩으로 온 터라 몸이 조금 지쳐있었다.
하지만 여행은, 무슨 마법이 있는지 그 자체만으로 설레고 힘이 나서 나의 원동력이 된다.
한손에 24인치 캐리어와 등에는 커다란 백팩, 나머지 한손에는 약간의 화장품이 있는 면세품 비닐가방과 작은 지갑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들뜬채로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MTR을 타고 완차이 역에 내려서 조금 걸으니 나의 숙소인 CUE Hotel이 보였다.
늘 그렇듯 조금은 헤맸다.
숙소에 짐을 놓고 간단한 것들만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조금은 막막했다. 사실, 무계획이었다. 철저하게 무계획이었다.
여행오기 바로 전날까지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과제에 중간고사에..
지도 펴놓고 앉아서 이곳 저곳 가고 싶은 곳 리스트를 적고 있기엔 조금은 바빴다.
아니 그래, 사실 저것들은 핑계고 홍콩에 대해 크게 기대가 없었단 게 더 맞겠다.
이번 여행을 홍콩으로 정하게 된 이유는 홍콩이어도 되고, 홍콩이 아니어도 됐다.
그게 이유다. 크게 이유가 없는 것.
난 그저 일상을 벗어나고 싶었고 어디가 됐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비교적 여행 기간이 길지 않고, 거리상 가깝고, 금전적으로 크게 부담없는 그런 곳이면 됐다.
그 중 하나가 홍콩이였고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큰 기대도, 애착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래서 A형 아니랄까봐 꼼꼼하게 계획해서 갔던 그 전의 여행들과는 달리, 가벼운 계획으로 올 수 있었다.
얼마안되는 몇번의 여행으로 남들이 다 가는 관광지, 맛집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큰 감흥을 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이번엔 발길 닿는대로 내가 가고싶은 곳을 가보자 싶었다.
홍콩에 대해 큰 기대가 없었던 나를 원망하게 된 건, 홍콩에 온지 반나절도 안돼서였다.
완차이를 조금 걸었을 뿐인데, 나는 홍콩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마냥 중국같기만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역사가 역사이니만큼 곳곳엔 유럽 문화들이 박혀있었고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 또한 넘쳐났다.
알록달록 색색의 허름한 건물들 사이에 우뚝히 솟은 빽빽한 신축 고층건물, 어디로 가는지 궁금한 2층버스들, 태어나서 처음 본 트램까지.
모든것이 신기했고
낭만적이였다.
'홍콩에 오길 잘했구나'
하지만 낭만도 잠시. 홍콩에 조금 더 취해있기엔,
난 너무 배고팠다.
서둘러 식당을 향해 나의 발길을 재촉했다.
65년 전통 완탕면집. 내가 만난 홍콩의 첫 끼였다.
여행을 하면서 생각이 제일 많아질 때는 밥을 주문하고 그 밥이 나오기까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무슨 맛일까?'
'향신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으면 어쩌지?'
'내 입맛에 맞긴 할까?'
'아예 못먹을 정도는 아니겠지?'
다른 나라에 가면 어울리지 않게 유난히 입이 짧아지는 내가 전혀 도움안될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있으면
어느새 그 걱정의 판단물이 내 앞에 놓여져 있다.
우리나라 밥공기와 국그릇의 중간 쯤 되는 크기의 그릇에 맛을 도무지 가늠할 수 없게 생긴 면발, 그리고 새우가 통째로 들어있는 완탕들이 들어가있다.
먼저 국물을 한 입 떠 먹어보았다.
'음.. 생각보다 괜찮군'
우리나라처럼 쫄깃한 면이 아니라 뚝뚝 끊기는 후루룩 할 맛 안나는 면발이 조금 적응 안됐을 뿐,
나름대로 만족한 첫끼였다.
여유로웠다. 혼자여서 더.
내가 먹고 싶은 밥을 먹고 이제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면 된다.
나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나에게 간섭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나는 내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 되는거다!
일단 조금 걷기로 했다.
한국의 일상에서는 버스정류장 걸어가는 것도 귀찮고 힘든데, 여행에서는 버스나 택시보다도 걷는게 훨씬 좋다.
걸으면 보고싶은 이곳에서의 모습들이 빠르게 지나가지 않으니까"
작은 것 하나하나가 낯설고 신기한데, 그것들을 느낄세도 없이 지나치는건 별로다. (그런점에서 트램은 내가 생각하는 최적의 교통수단이다!)
천천히, 그리고 깊게.
그렇게 나는 홍콩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