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찾은 나의 이야기

한 영어 가이드의 소회

by 스윗비타


직업의 이름 뒤에 숨겨진 세상



나는 영어 가이드다. 이 직업의 타이틀을 들었을 때, 누군가는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뿜어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 더운 날씨에 고생이 많으시네요" 하며 애처로운 표정을 지을지도 모른다. 호기심이든 연민이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의 직업은 그 자체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 세계는 넓고 직업의 세계는 더욱 다양하지만, 유독 나의 직업만큼 국내외 정세에 민감한 분야가 또 있을까 싶다. 한때는 한적했던 이 작은 나라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지금, 나는 그 변화의 최전선에서 오늘도 길을 나선다.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코로나 팬데믹. 나를 비롯한 수많은 가이드들에게는 가장 뼈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활기 넘치던 공항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예약은 모조리 취소되고, 우리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불안감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마치 기적처럼 넷플릭스와 K-POP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 ‘한류’라는 거대한 물결이 상상 이상의 힘으로 번져 나갔다. 눈 깜짝할 새 서울 구석구석은 다시 외국인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반가운 풍경이었다. 경복궁과 비무장지대(DMZ)에는 저마다 휴대용 마이크와 스피커를 목에 건 채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는 가이드들이 넘쳐났다. 이 글은, 길 위에서 춤추는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 나와 그들의 이야기다.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고백


‘브런치 작가 신청’ 자체가 목표가 되어 도전했고, 마침내 작가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승인 직후 거짓말처럼 글쓰기는 미루어지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서 읽었던 책 제목,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작정하고 글을 쓰려니 내 이야기를 써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지난 34년을 영어 가이드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글을 발행하면서 굳이 나의 직업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고나 할까. 다른 작가들처럼 ‘나’라는 사람 그 자체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글쓰기 플랫폼에 나의 일상을 가이드라는 색깔을 최대한 배제하고 썼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글 안에는 어쩔 수 없이 스며드는 영어 가이드의 목소리가 있었다. 나의 직업에서 비롯된 특유의 시선과 경험이 글의 틈새를 비집고 드러나는 것이었다. 한 번은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분이 나의 직업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한데 왜 소재 걱정을 하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어쩌면 내가 나의 직업을 너무 평범하게, 혹은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밖에서 보는 나의 세상은 그 자체로 독특한 이야깃거리라는 것을.


그렇게 시간이 또 흘렀다. 나이를 한두 살 더 먹어가니 일의 양도 한편으로는 늘어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줄어드는 미묘한 변화를 겪었다. 한국을 찾는 여행객들은 점점 더 젊은 세대로 바뀌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나는 훨씬 더 '원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젊은 층보다는 은퇴한 시니어들의 단체 패키지 관광 의뢰가 더 많이 들어왔다. 한때는 기업체나 공기관의 중요한 행사들을 전담하며 일 년 스케줄이 꽉 찼던 시절도 있었다. 나는 꽤나 젊은 감각을 가진 베테랑 가이드였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담당자들이 나를 "여사님"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금세 익숙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익숙해지기도 전에 연락이 뜸해지는 것을 느꼈다. 프리랜서의 세계는 냉혹하다. 연락이 끊어지는 순간, 나는 잊힌다. 담당자도 바뀌고, 정권도 바뀌고, 세상도 바뀐다. 그것이 프리랜서로서 살아가는 자의 숙명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던가. 척박한 환경에도 적응하고 생존해 나가는 '인간'이라는 이름의 존재가 아닌가. 나는 나에게 주어진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요즘 나는 평균 연령 70세가 넘는 분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분들은 조금 느리고, 때로는 피곤해하면서도, 한국의 모든 것이 궁금해서 기꺼이 비행기를 타고 찾아온다. 나는 미소를 한껏 머금은 채 그분들을 친절히 안내한다. 젊은 손님들에게서 얻는 활기 넘치는 즐거움과는 또 다른, 느긋하고 따뜻한 보람을 느낀다. 이 또한 나의 직업이 선사하는 새로운 경험이자 배움이었다.



언어의 벽을 넘어, 마음의 문을 열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외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것이 큰 장점으로 여겨진다. 나의 삶에서 '영어 공부'는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지긋지긋하게 이어진 오랜 동반자였다. 어디를 가든 영어가 들려오고, 심지어 꿈속에서도 외국어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나는 또 듣는다. 새로운 표현을 배우고, 더 정확한 발음을 익히기 위해 끊임없이 귀를 열어 둔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외국어 습득이 훨씬 편리해진 환경에서 자란 덕분일까, 아니면 어린 시절부터 외국 생활 경험이 있어서 그런 걸까. 옆에서 들어보면 외국인과 구별이 안 갈 정도로 유창한 실력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한때는 그다지 인기 없었던 '외국어 관광 통역 안내사' 자격증 시험을 보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경쟁률이 상상 이상이라고 한다. 심지어 그 문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도 동등하게 열려 있다. 한국에 사는 이유야 어떻든, 나라에서 시행하는 자격증을 취득하면 정식으로 관광 통역 가이드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니, 많은 이들이 이 직업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는 눈부실 정도다. 조만간 귀에 꽂는 작은 장치만으로 실시간 통역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닌, 충분히 가능한 현실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의 직업은 곧 인공지능에게 대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 법도 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맑고 경쾌한 기계음 안내보다, 눈을 맞추고, 때로는 농담을 던지며 함께 웃을 수 있는 '인간' 가이드를 더 좋아하는 듯하다. 완벽하게 정제된 정보 전달보다, 함께 교감하고 추억을 만들어가는 가치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손님들에게 너스레를 떤다. "미리 감사하세요. 인간 가이드를 고용하는 것이 매우 비싸질 날이 올 겁니다!" 물론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이 속에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 가진 힘에 대한 나의 믿음이 담겨 있다.



오늘도, 길 위에서 외치는 나의 주문


2025년의 대한민국은 '한류'라는 이름으로 온통 들썩인다. 세계 정세의 불안정성, 기후 변화로 인한 이상 현상, 그리고 국내 정치경제의 크고 작은 혼란 속에서도, 한국은 마치 빛나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듯하다. 물론, 이것은 온전히 '영어 가이드'인 나의 시선이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한국을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의 눈빛을 통해 더욱 희망적이고 아름답게 비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건다. "It's gonna be a great day!" (멋진 하루가 될 거야!) 이 문장은 한국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기 전, 스스로에게 외우는 긍정 주문이다. 내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야, 그 에너지가 손님들에게도 잘 전달될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 내가 만날 사람들은 한국에서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갈까.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 속에서 어떤 순간을 함께하며 그들의 기억 속에 특별한 추억을 선물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을 품고, 나는 오늘도 길 위로 나선다. 발밑의 아스팔트는 뜨겁고, 공기는 후텁지근하지만, 내 마이크와 스피커를 메고 환하게 웃을 준비를 한다. '단 한 번의 삶'을 살아가는 내가, 또 다른 '단 한 번의 여행'을 온 사람들의 삶에 작은 기쁨과 의미를 더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오늘도 길 위에서 펼쳐질 나의 이야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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