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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비타 Mar 04. 2022

추억은 현재 진행형이다

홈 드레스를 입은 엄마를 기억하며.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까? 지난날을 회상하면 할 말이 많아진다.

어린 시절의 단편적 기억들은 문득문득 계획도 없이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일부러 기억하려고 하면 떠오르지 않던 인물들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떠오를 때면 도대체 인간의 뇌 용량은 얼마나 큰 것일까 알고 싶어 진다.  



중년의 나이는 표창장인 양 이마에 주름으로 새겨지고,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사는 게 맞을까 생각에 잠기곤 한다.  

인생이라는 것은 좋았던 날들, 힘들었던 날들, 놀랐던 날들이 다 합쳐진 것이 아닐까?  저마다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에 모임에 가면 파란만장한 삶을 요란스럽게 풀어놓는 사람이 있고, 졸졸 흐르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과거의 이야기들을 꺼내 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사람들이 불러오는 기억들이 현재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는 것을 본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은 끊임없이 교류하며 흐르는 것 같다.




나에게 추억이라는 단어는 ‘엄마’와 동의어이다. 젊은 날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루 걸러 한 번씩 안부전화를 하는 엄마를 새삼 추억 속으로 소환하고 나니, 나도 그 시절 꼬맹이로 돌아간다. 아련한 기억 속에는 새로 지은 단독주택에서 화단을 가꾸던 엄마가 있다. 세 마리나 되는 강아지도 뛰어다닌다. 평화로운 그림 속, 마당에 있던 라일락 꽃 향기마저 진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 시절 나는 행복한 아이였을까? 문득 엄마는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궁금해진다.



재미있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 만난 동창들 중 많은 아이들이 우리 엄마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가 끝나면 자주 친구들을 집에 데려가곤 했었다. 그 시절 아이들 눈에 비친 우리 엄마는 항상 긴 홈드레스를 입고 과일을 내오고 삶은 밤을 일일이 까주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그 모습은 바쁘게 밭일하고, 자식들 챙기느라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자신들의 엄마와 사뭇 달라서 부러웠다고 한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더니, 같은 장소와 시간 속에서 기억에 남은 장면들이 제각기 다르다. 재봉틀로 직접 만든 옷을 입고 있던 엄마의 모습이 아이들의 눈에는 우아한 가정주부로 보였던 것이다.

언젠가 엄마에게 말해주었더니 재미있어하시면서 ‘언제 아이들이 그렇게 왔었지?’ 하셨다.


항상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 있던 엄마와 달리, 나는 바쁜 ‘워킹맘’이 되었다. 여행사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특성상 며칠씩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고, 워낙 외향적인 성격이었기에 출산 후 육아의 시간이 무척 힘에 겨웠다. 한 번은 육아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서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무작정 다른 도시를 다녀온 적도 있다. 우리 엄마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겠지만, 그만큼 어른이 되는 과정은 힘들었다. 한 번도 연습해 보지 않는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잘 해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스스로 위안해 보면서도, 우리 삼 남매를 잘 키워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엄마에게도 이십 대, 삼십 대 시절이 있었을 텐데 이 나이가 되도록 엄마의 청춘을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다. 엄마도 나와 같은 시간을 겪었을 터인데, 내 시간만 이해받고 싶어 하는 자신이 참 이기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일하는 엄마의 아기는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서 키가 훌쩍 커 버렸다.

바쁜 ‘워킹맘’들은 항상 아이에게 미안해한다. 엄마가 집에 있을 때와 일하러 갔을 때를, 아이의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던 유치원 선생님의 말에 가슴이 찔렸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매일 일하지 않아도 돼서 쉬는 날에는 아이와 온전히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보상심리가 작동해서 뭔가 항상 새로운 것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아이를 어린이 집에 안 보내고 한강으로 오리배를 타러 간 적이 있다. 아이는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마냥 좋았지만 처음 타는 오리배가 무서웠던지 안 타겠다고 울기 시작했다. 시간 내서 억지로 좋은 추억 만들어 주려는 엄마와 울어대는 아이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어쩌면 아이는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삶을 밤을 일일이 까서 입에 넣어주는 것을 더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추억은 이벤트가 아닌데 왜 그렇게 뭔가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역시나 세월이 지난 후에 깨달은 것이다.

‘엄마’는 그 자체로 아이에게 행복감을 뜻하는 것이었다.


전에 읽은 책 중에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라는 제목이 기억난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에게 보내는 헌사로 가장 적합한 말이다. 엄마와의 추억이 많은 아이는 세상을 견디는 면역력이 강하다. 엄마의 사랑과 존재를 공기처럼 당연하고 영원하리라 착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내 옆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머뭇거리지 말고 한 번 더 불러보고, 안아보자.

추억은 하루하루 만들어 가는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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