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기 아이들의 놀이 사유-
“놀아요.”
한국에서는 이 말은 어떤 느낌일까? 인간의 일생에서 노는 건 얼마나 중요할까? 솔직히 교육열풍이 거센 한국에서는 이 ‘논다’는 말이 긍정적으로 쓰이지는 않는 것 같다. ‘놀면 망한다.’라는 느낌이 쎈 편이다.
그럼, 놀이는 우리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할까?
80년대 내가 어린 시절에는 모두가 밖에서 놀았다. 부모의 동행 없이 대부분 같이 놀았다. 놀이터도 늘 아이들로 북적였다. 그래서 놀이터에 혼자 나가도 놀 친구가 항상 있었다. 지금은 보호자 없이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심지어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어서 형제자매가 없는 아이들은 나이 많은 보호자와 함께 놀아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는 현재 700세대가 넘는 아파트에, 그리고 아이들을 많이 낳는다고 알려진 부산의 한 신도시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놀이터에는 아이가 거의 없다. 확실히 지금의 아이들은 밖애서 놀지 않는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자주 나오는 편이다. 놀이터까지 가는 길에 킥보드도 타고 자전거도 탄다. 놀이터 그네에서 바이킹놀이도 하고 미끄럼틀에서 괴물 놀이, 술래잡기도 종종 한다. 그렇게 있다 보면 거의 한 시간은 기본이고 두 시간 혹은 세 시간을 있을 때도 많다.
도대체 놀이터를 안 나오는 아이들은 집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래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엄마들에게 난 종종 묻고 했다. 바깥 놀이 없이 집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부모와 아이는 무엇을 하고 노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대답은 이랬다. 맞벌이 부부라면 아이들이 오랫동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집에 있는 아이들 중에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는 아이도 있었다. 그냥 장난감으로 혼자 논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김붕년 교수님의 ‘4~7세 조절하는 뇌 흔들리는 뇌’ 책을 보면 48~60개월 남자아이 활동량이 하루 평균 6~10킬로미터나 된다고 한다. 이런 에너지를 가진 아이들이 과연 한정된 공간에서 조용히 노는 게 가능한 걸까?
80년대, 어린 시절 난 노는 게 좋았다. 4계절에 내내 놀이터에서 놀았고, 집안 공터나 집 주변에 논밭에서도 계속 뛰어다니면서 놀았다. 여름에는 논에 들어가서 개구리를 잡으면서 놀았고, 가을에는 잠자리나 메뚜기를 잡으면서 놀았다. 겨울에는 살짝 언 논 위로 썰매나 스케이트를 타고 다녔다.
이러한 경험과 좋은 기억, 추억은 지금 내가 놀이터 죽순이를 자처하는 원동력이다. 나는 내 아이들이 이런 폭넓은 경험을 매일 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신도시로 들어오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 놀이터나 근처 공원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도 너무 속상하다. 골목이 사라지고 골목의 상권도 사라지는 지금,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놀 곳도 구경할 곳도 없어졌다.
나는 내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는 놀이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는 학업을 위해서는 일정 부분 놀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장 에너지가 왕성할 때, 가장 해맑게 아무 편견 없이 즐길 수 있을 때 실컷 놀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 21세기 스마트폰에서 다소 자유로운 이 시기에 아이들은 반드시 놀아야 한다.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의 저자 편해문은 놀이 기회를 얻지 못하고 금지된 아이들,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발생하는 놀이 탈취가 아이의 삶을 망가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고등학교 시기를 스마트폰 중독에 가깝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놀이 기억이나 추억마저 없이 살아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나는 항상 우리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본다. 아이들은 한정된 공간에서도 여러 상상력을 발휘해서 논다. 저기서 어떻게 저런 상상을 하는지 신기할 때도 많고 재미있을 때도 많다. 가끔 괴물 역할이 필요하면 엄마인 내가 그 역할을 해줘서 같이 놀기도 한다. 친구들과 싸우고 속상해할 때도 있지만, 금세 사이좋게 다시 논다. 난 그런 대인 관계의 회복력을 보는 게 참 좋다.
우리 아이들은 끊임없이 역할 놀이를 하면서 사회성을 배운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얼음땡’을 하면서 규칙을 배우고 친구들과 함께 노는 법도 배운다.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냅다 뛰기만 할 때도 있다.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 시간도 나는 참 좋다.
‘놀이의 힘’ 책에서는 놀이를 통해 개인의 성장을 이룰 수 있고 사회적 존재로서 필요한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어린 시절 놀이를 통해 쌓은 지식과 경험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평생 힘을 낼 수 있는 원천이 된다고도 했다. 놀이가 단순한 시간 때우기가 아닌 것이다.
우리 아이가 화려한 놀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 놀이가 학습에 도움이 된다고 굳이 학습을 목적으로 한 놀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 돈이 많이 드는 키즈카페나 드로잉 카페, 슬라임 카페 등 이런 곳으로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아도 된다.
보호자의 심한 감시와 제지가 없는 자유롭게 놀 수 있는 환경, 가르침과 설명이 없이 그저 노는 목적에만 집중하는 놀이, 그냥 의미 없이 이유 없이 뛰고만 있어도 되는 놀이, 그리고 또래 아이들이 많이 있어서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놀이,
나는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유아기와 초등 시기를 보낼 수 있다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중고등학교의 그 혹독한 시기를 그래도 조금은 건강하게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로 향한다. 한여름 땡볕에서도 놀이터 죽순이가 될 각오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