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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좀하는 엄마 Dec 29. 2020

괴물 vs 좀비, 그들만의 생존법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대 <스위트홈> 

몇 년간 한국 영화나 드라마는 좀비판이었다.

외국 영화에서는 단골 소재로 등장했던 '좀비'라는 존재가 한국에서도 그 위세를 떨치더니 영화 '부산행'의 흥행에 이어서 넷플릭스의 드라마 '킹덤'에서도 연이어 등장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근데 외국의 좀비와 한국의 좀비는 좀 다르다. 

외국의 좀비는 그냥 살아 있는 시체여도 된다. 

'워킹데드'라는 미드를 보면 '좀비'가 식욕의 본능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머리도 쓰지 않고 행동도 어슬렁 거리며 느린 것을 확인하게 된다. 살아 남은 사람들이 좀비에게서 살아남기 위해서 조금 더 수월하게 활동할 수 있다고 해야 할까?

외국 사람들은 외국의 좀비에게 딱 이정도의 설정만 요구하고 이에 만족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좀비는 어떨까?

한국 사람들이 한국의 좀비에게 거는 기대는 이 정도는 아닌 듯 싶다. 

한국의 좀비는 재빨라야 하고 식욕은 더 왕성해야 하며 더 많은 사람들을 헤칠 수 있을 정도로 운동력도 좋아야 한다. 아마 이정도로 열심인 좀비라면 한국형 좀비의 두뇌도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것이다. 


이런 기대 속에서 탄생한 영화가 바로 '부산행'의 엄청 빠른 좀비들이다. 

아마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운동력에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빠르게 달리기는 기본에 몸 뒤로 꺾기, 벽타기, 지붕타고 오르기 등 일반 사람들이 잘 하지 못하는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을 자랑하며 재빠르게 먹이를 향해 달려가는 그 좀비들 말이다. 

그들의 식욕 또한 왕성하여 떼로 몰려 다니지만 자신만의 먹이를 위한 욕구 또한 엄청나고 거대하다. 여기서 일반인들이 살아남야야 하니, 마동석같은 힘센 살아있는 철인들도 죽어나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의 좀비들은 이렇게 정형화되어 가는 듯 보였다. 

여기에 조선시대의 배경을 입히고 좀비 탄생 스토리를 첨가해서 만들어낸 넷플렉스 오리지널 드라마가 바로 <킹덤>이다. 


<킹덤>은 영리한 드라마다. 

많은 사람이 점점 한국 좀비에 식상함을 느끼고 있던 찰나에 시기 좋게 등장한 드라마인 것이다. 

이제는 좀비'만을 소재로는 더이상 사람들이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이런 흐름에서 나온 드라마가 바로 <킹덤>이다.

킹덤의 고민은 '좀비'에 새로운 스토리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대는 조선시대로 그리고 좀비는 조정의 권력투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첨가하여 드라마를 풀어 나간다. 

여기에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참여하고 관계의 긴장감을 끌어 올리면서 꽤 괜찮은 좀비 드라마가 되었다. 



그렇다면 <스위트홈>의 괴물은 어떤가?

한국형 좀비에서 한 단계 비틀어낸 생명체가 바로 <스위트홈>의 '괴물'이라고 볼 수 있다.

'좀비'는 식욕 이외에는 욕구나 본능이 발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을 물어서 먹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위트홈>의 '괴물'은 다르다. 


<스위트홈>이 기존의 좀비물이나 여타 다른 괴물 영화와 다른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드라마의 '괴물'은 인간보다 진화된 생명체로 나온다. 그런데 이 괴물들은 그냥 괴물이 되는 것이 아니고, 개개인의 욕망에 충실해서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존재로 성장(?)한다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면,  운동을 좋아해서 근육을 가지고 싶으면 근육맨이 되고, 다이어트에 지쳐서 먹고 싶어하는 여성에게는 식욕이 그녀의 욕망이 되며, 달리기를 잘하고 싶은 사람은 달리기를 엄청 잘하는 괴물이 되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사람일 때는 욕망을 억누르고 있다가 괴물이 되어서는 욕망에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을 방해하는 존재들, 즉 인간을 헤치는 것이 괴물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살아남은 인간은 점점 사라지고 세상이 점점 진화된 괴물들의 것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괴물화의 최종 목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주인공 '차현수'다. 

'차현수'는 괴물이 되었으나 자신의 욕망과 끊임없이 싸운다. 정확히는 괴물이 되어서 욕망이 실현되는 그것과 싸우는 것이다. 인간인 상태에서 욕망이 현실화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차현수는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차현수'는 살아남은 인간들에게 아군이 되며 이것이 드라마를 이끄는 핵심이 된다. 


두 드라마는 인간 이외의 존재가 있고 이들과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의 투쟁이 존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 세상의 종말로 인식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는 긴장감이 발생한다. 


이 두 개의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는 관전 포인트는 바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아닌, 좀비와 괴물에 집중하는 것이다. 솔직히 살아남은 사람들의 투쟁기는 흔하디 흔하고 이미 외국에서도 닳고 닳은 소재다. 하지만 조선 시대의 좀비와 다양한 욕망을 표출하는 괴물, 그리고 반인반괴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그 생명체(?)들을 영상으로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 아닌가.

조선시대의 좀비들은 영화 <부산행>이후 더 진화되었고, 그들의 행동은 더 현란하고 빨라졌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경악스러워할 정도로. <스위트홈>의 괴물들은 이미 웹툰으로 확인된 것처럼 다양하고 기이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개인적으로 연근 괴물을 창조해낸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이 괴물들을 재현해내기 위해서 드라마 제작비에 몇 억씩 쏟아부었겠는가? 



<킹덤>의 궁녀를 타고 산처럼 올라가는 좀비떼나 낮에는 시체처럼 누워있다가 밤이 되면 활동을 시작하는 좀비들의 행동력, 그리고 연근 괴물, 근육질 괴물,아기 괴물, 거미 괴물 등 욕망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된 괴물들을 차례로 만나는 씬들은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또한 살아남은 사람들만 머리를 써서 생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좀비나 괴물들도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애쓴다. 특히 <스위트홈>의 괴물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계속 새로운 존재들을 창조해 낸다. 이것 또한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이 된다. 


집콕의 시대, 이 두 드라마를 한번에 즐기면 좋을 것 같다. 물론 <킹덤>의 좀비와 <스위트홈>의 괴물은 결이 다르지만 조선시대에서 현재로 오면서 좀비에서 괴물로 점점 변화하는 흐름으로 드라마를 따라 이동한다면 어느새 눈과 머리는 호강의 길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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