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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좀하는 엄마 Dec 28. 2020

우리는 모두 빚진 자, 영화 <말모이>

영화 말모이

한국어를 말하고 한글로 글을 쓴다. 

그냥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나는 특별히 이런 활동의 수혜자다. 


나는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한국어 교육학과를 다시 졸업할 예정이다. 

국어로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며 돈도 벌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임신했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서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살고 있다. 

이런 일련의 인생 과정을 보면 나는 확실히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국어와 한글, 한국어에 빚진 수혜자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렇게 눈문 콧물 쏙 빼면서 2시간 내내 영화를 본 것 같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정말 좋은 의도를 바탕으로 만들었음에도 한글은 오랜 시간을 천시받아왔다. 한글 반포가 1446년에 되었으니 이를 기점으로 해도 500년 동안 무시받고 일제 강점기에는 몇십 년을 뿌리를 잘라 버리겠다고 기를 쓰고 못 쓰게 했으니 한글의 생명력이란 과히 놀랍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과 열심히 그냥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위해서 목숨을 던지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재산과 수고로움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의 희생과 헌신에도 굴복하지 않는 신념을 지니고 이 일을 행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가치는 바로 이러한 과정을 재현해냈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아마 이 영화는 '조선어학회'라는 명사 대신 '말모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사용했으리라 본다. 

'말모이'는 주시경 선생이 편찬한 최초의 국어사전 이름이라고 국어사전에는 명시되어 있다.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하지만 이 단어의 이면에는 말을 모으는 그 힘겨운 과정을 감내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그 과정에 대한 강조가 스며 있다. 


가치 있는 일들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탄압이나 억압 또한 심각하게 받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식민지를 삼는 일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지던 1차, 2차 세계대전 시기를 지나면서  자국의 언어나 문화가 살아남은 식민지들은 많이 없었다. 그 정도로 식민지 시기에 언어나 문화를 살려서 현재까지 가져오는 행위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조선어학회 사람들 <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하지만 한국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언어도 완전하게 회복하여 현재까지 아주 잘 쓰고 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일련의 과정은 자연스럽게 저절로 아무 노력 없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글을 지키고 사전으로 만들어내면서 겪은 탄압과 억압, 고문, 죽음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1940년 창씨개명과 신사 참배 강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의 종용 등의 하루도 평탄치 못했을 그 시기에 한글을 바탕으로 한 사전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그들의 정신과 시도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표준어 공청회를 했고 사전을 만들어 낼 기초 작업을 해냈으며 그 결과물을 끝내 남기는 데 성공했다. 이 결과물이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그 시기에 이러한 과정이 얼마나 긴박하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일 것이다. 


이러한 일을 이뤄내고자 하는 정신과 신념, 그리고 이를 실행으로 옮긴 행동력, 그리고 죽음으로 지켜낸 결과물, 등 이러한 것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먹먹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 값지고 가치 있는 일들이었다.  


오늘도 난 외국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친다. 한글의 '기역'도 못 쓰던 학생들은 2주도 안 되는 시간에 한글을 익히고 2년이 안 되는 기간에 한국어를 익혀 한국인들과 소통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의 한국어 교육은 없었을 것이며, 외국인 학생들이 언문일치가 된 한국어를 쓸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선어학회의 노력이 없었다면 외국인들이 매일 끼고 살다시피 하는 사전 또한 없었을 것이다. 외국인들이 열심히 찾는 국어사전을 보면서 한글의 무게감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이들의 수고에 나는 참 크게 빚진 자이며 우리 모두 그러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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