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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수니 Sep 13. 2021

육아를 덜기 중입니다.

첫 번째 작업­ : 이야기 들려주기


발도르프를 경험한 지 5년 차가 되어서야 첫째를 발도르프 자유학교로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발도르프자유학교는 대안학교다. 결심하고 나니 육아 방식에 전면 대수정이 필요했다. 발도르프 교육을 진심으로 좋아했지만 공교육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던 상태라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부분만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만이 해오던 엄마표 놀이 시간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도 괜스레 복잡하고 막막했다. 육아 관련 도서는 왜 그리 사두었나. 교육 강의는 얼마나 찾아들었던가. 아이와 영어책으로 노는 재미에 빠져 테솔 프로그램까지 수료했지 않았던가. 이제는 가던 길을 멈추고 발도르프를 더 진지하게 실천해야 했다. 발도르프 서적을 읽을수록 이 교육 방식대로 아이를 키우고 싶어졌다.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없었지만 감명 깊은 부분들을 믿고 따르고 싶은 마음이 훨씬 앞서게 된 거다. 발도르프가 주는 힘을 제대로 만나기 위해 가족 모두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했다. 그동안 해왔던 육아를 돌아보고 덜어놓는 작업을 시작했다. 엄마인 나부터 어깨에 힘을 빼고 하나 둘 새롭게 나아가는 중이다. 그 이야기들을 풀어 보고자 한다.






첫째가 여섯 번째 가을을 맞이하던 어느 날. 이때만 해도 아이를 공교육에 보낼 예정이었다. 떠수니가 잘한다고 소문난 놀이육아도 시들시들해진 무렵이었다. 밀가루를 거실에 풀어주는 일도, 베란다 아틀리에에서 물감을 가득 찍어 바르는 일도, 밀가루 반죽으로 직접 찰흙을 만들어 주는 일도 횟수가 확실히 줄었다. 전교권에서 놀아본 적은 없어도 공부를 좋아하던 나라서 때가 되면 아이들도 학습을 시킬 각오를 했다. 대학 입시를 목표로 두진 않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교육 환경에 놓인 아이들에게 적어도 상실감은 없이 키우고 싶었다. 학교 입학을 앞둔 1년을 어떻게 잘 보낼까 고민했다. 학교 수업 진도를 맞추랴 과제도 해내랴 뒤처지지 않으랴 고군분투하다 보면 아이를 잡을 일도 불가피할 테니 남은 시간을 뜻깊게 보내야 했다.


그 접합점이 한글놀이었다. 자기만의 세상이 강하고 자기만의 속도로 소화하는 아이라 학교 가기 전 조금씩 한글을 노출할 필요도 있었다. 이왕이면 발도르프 방식으로 해보고 싶었다. 5세 이후 발도르프 기관을 보내지 않았으니 내가 대신 공부해 아이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발도르프는 우리 아이를 믿고 기다려 주었던 고마운 교육이기에 내가 힘닿는대까지는 학습서 없이 세상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발도르프 교육 관련 이야기는 틈나는 대로 써보겠다.


한글 놀이를 준비하면서 값진 것을 얻어 냈다. 이야기 들려주기다. 발도르프 교육에선 동화나 노래를 CD로 들려주는 걸 금기시한다. 음원 듣기가 필수인 엄마표 영어와 대치되는 점이다. 나는 실생활에 가장 익숙했던 음원부터 접었다. 대신 내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려면 며칠 동안 애를 써야 했다. 이야기를 내가 먼저 소화해야 했고 아이에게 어설프지 않게 이야기를 술술 내뱉는 연습을 따로 해보곤 했다. 그 와중에도 이야기 핵심 단어를 빠트리지 않게 기억해야 했다. 긴 이야기를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휴대폰 전화번호도 외울 필요 없던 대학교 1학년 시절 이후 긴 호흡으로 익히고 외우는 일이 얼마나 있었던가 반성을 했다.


지금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사라졌다. 어릴 때만 해도 할머니 무릎에 앉아 옛이야기 듣는 일은 일상이었다. 엄마와 할머니가 즉석 해서 만든 노래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던 내 어릴 적과 달리 요즘 아이들은 책이 없으면 큰일 나는 줄 안다. 많은 교육 전문가가 독서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교육 강의를 들어도 어떤 도서를 살펴보아도 기승전 독서가 답이다. 이야기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왜 이야기의 미학이 사라졌을까. 아이가 어릴 때부터 전집을 사두지 않으면 불안했을까. 나 역시 책 육아의 덫에 빠졌었는지도 모른다.


책이 좋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나 역시 책이 곁에 없으면 불안한 사람이니깐. 다만 책만 보여줘도 괜찮을까 하는 점을 나누고 싶다. 아가 때부터 책을 들이밀 의무감은 교육 시장이 학부모에게 안겨준 족쇄이지 않을까.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고 매주 경험치를 채운다고 책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까. 주중 내내 책을 아이에게 읽어주고 주말마다 다양한 체험 활동을 넣어주면 아이의 창의력과 상상력에 도움을 줄까. 차라리 책을 읽어 주면서도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떠한가.


아이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늘수록 미쳐 알지 못했던 걸 깨달았다. 책을 읽으며 나누는 시간보다 CD플레이어로 들려주는 영어노래나 동화 이야기보다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아이는 귀를 더 잘 기울였다. 책으로도 쌍방향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는 기분이었다. 아이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디에 홀리는 느낌이었다.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 만의 그림을 만들어 가고 자신 만의 생각을 확장했다. 지난밤 들려준 이야기를 또 들려 달라고 부탁했다. 도대체 이야기의 힘은 무엇일까?


"아이들은 들으면서 모든 것을 보고 경험한다. 아이들의 이런 듣기와 상상하는 힘은 나중에 문자 읽기를 할 때도 십분 발휘된다. 글자 너머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이른바 지성이 깨어난다."(모두가 배우는 발도르프 학교 24page, 이은영 지음)


"이야기 들려주기는 아이들의 감각과 마음을 열어 세상을 진정으로 배울 수 있게 하는 마법이다."(모두가 배우는 발도르프 학교 25page, 이은영 지음)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은 바로 그것으로 이미 훌륭한 교육이다. 이야기를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릿속에 갖가지 장면을 떠올리고, 서로 어울려 한바탕 웃고 가슴 졸이는 사이에 이미 아이들은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태도를 배우고, 말귀를 알아듣는 힘을 키울 뿐 아니라 상상의 즐거움과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것은 결코 훈계나 잔소리를 얻는 배움과는 다르다. 머리로 깨우치는 배움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는 배움이기 때문이다. (옛이야기 들려주기 123p, 서정오)

 


아이는 누가 보아도 자유로운 영혼 유형이고 자유놀이만으로 시간을 200% 쓸 줄 안다. 혼자 노는 놀이가 재미있어도 엄마가 이끄는 대로 눈길을 갖도록 어느 정도는 이끌어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한글 놀이를 시작했는데 이야기 들려주기는 지난 1년 동안 아이가 상상의 날개를 펼치도록 돕는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가장 큰 선물이 있다. 아이와 나의 관계였다. 우린 돈독해졌다. 엄마의 눈빛을 엄마의 목소리를 소중하게 여긴다.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 학교에 진학하면 학업 과제들을 따라 가느라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겠나. 부지런히 들려주기로 마음을 굳게 다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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