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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칠이 Jul 05. 2016

헌책방이라는 방앗간

그리고 나는 참새


책이 주는 재미의 반절은 사는 데서 나온다.
 Half the fun of books is acquiring them.


나 같은 사람이 신용 카드를 들고 책방에 가면 망해요.
 I'm not to be trusted in a bookstore with a credit card.


etsy.com에서 찾을 수 있는 버튼 뱃지에 적혀 있는 문구들입니다. 나는 책을 아주 좋아하지만 꼬맹이 시절 이후로는 다독상 따위를 받아 본적도 없고, 어디선가 누군가가 책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에 쉽께 끼어들만큼 잘 알지도 못합니다. 그래도 책을 아주 좋아해요. 손에 책을 잡고 휘리릭 페이지를 넘길 적에 책장이 얼굴에 바람을 훅 끼치는 것도 좋아하고, 그 때 맡을 수 있는 냄새도 좋아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책을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책들이 적지는 않지요. 그치만 그 책들을 다 읽었느냐 묻는다면 아주 자신있게 아니라고 이야기할 겁니다. 꼭 읽을 책들이 아니라고 해도 사면 기분이 좋고 바닥 한구석에 쌓아 놓은 더미가 되었든 가지런히 꼽아 둔 책장이 되었든 줄지어 서있는 책등을 보고 있으면 행복하거든요. 읽지도 않을 걸 왜 샀어? 그냥 좋아서..



책등에 갈라진 곳 하나 없고 표지며 속지며 상처 없는 깨끗한 새 책을 봐도 기분이 좋지만 가끔 인간미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책은 더럽히면 안될 것만 같아서 괜히 더 조심스럽게 읽게 됩니다. 책에 씌울 수 있는 천으로 된 커버를 쓰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물론 헌책방에도 이게 새 책인지 헌 책인지 구분할 수 없이 깨끗한 물건들이 아주 많지요. 정말 책을 깔끔하게 본 주인이었을 수도 있고, 가끔은 책갈피 용도로 달려 있는 줄이 처음 상태 그대로 접혀 책장 사이에 남아있는 책들도 있고요. 그래도 대부분이 누군가가 읽었던 흔적을 어딘가에 지니고 있습니다.


헌 책에는 사은품이 달려있는 것 같다

나빌리 운하 근처의 이탈리아의 중고서점 Libraccio 지점 - 30주년을 기념해 오늘 모든 책을 2유로에 팝니다!

손을 탄 흔적이 남아있는 헌 책들을 보면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여긴 귀퉁이를 왜 접어놓은 걸까 혼자서 궁리해보기도 하고요. 또 책을 선물하는 사람이 간지에 써둔 메세지라던지 책 사이에 끼워져 있는 종이 조각을 보고 있자면 그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 말고도 숨겨진 이야기가 하나씩 더 있는 것 같거든요. 도서관 열람실에서 자리를 잡고 받은 확인증이 끼워져 있는 경우도 있었고, 여름 방학에  할머니 집에 놀러가는 아들한테 책을 선물하면서 "네가 책을 읽는 재미를 알게 되기를 바란다"는 부모님의 메세지를 발견한 적도 있어요.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다른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를 몰래 훔쳐보는 것 같다고 할까요? 그런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헌 책에는 사은품이 달려있는 것 같다고 느껴요.


새롭게 찍어낸 책들이 바뀐 표지 디자인으로 나오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포스터로 표지 디자인이 바뀌기 전의 책을 찾으려면 꽤 발품을 팔아야 할 때가 많아요. 이런 책들을 헌책방에서 찾아보면 은근히 수확이 있는 때가 있답니다. 찾던 판을 구하게 되면 조금 구겨졌거나 색이 바래있더라도 구했다는 기쁨에 작은 흠집들은 눈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책들이 저렴하기까지 하다면 일석이조이지요.


헌책방에는 차별이 없다

라픽 샤미의 소설을 골라서 카페에 앉았다

헌책방에 가는 또 하나의 이유는 차별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시중의 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니 신작이니 하면서 잘 팔리는 책들을 눈에 띄는 곳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지요. 베스트셀러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책들을 나도 물론 읽어보기도 합니다. 허나 특별한 책을 염두에 두고 사러 가는 게 아니라면 나는 대부분 새로운 책을 발견할 기대를 가지고 서점에 갑니다. 인터넷 서점이니 킨들이니 하는 것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책장에서 찾은 책을 손에 쥐고 직접 읽어 보는 것하고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니까요. 가장 접근성이 좋은 위치에 있는 가판대를 지나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경우에 따라 장르나 국가랄지 작가의 이름순으로 배열이 된 책장을 만나게 됩니다.

찾고 있는 책이 있다면 이런 배열 속에서 찾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일 겁니다. 하지만 우연히 기대하지 않았던 책을 발견하는 데에는, 글쎄요..


그런데 헌책방에서는 - 적어도 내가 가보았던 곳에서는 - 이런 차별이 없거나 덜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책을 많이 볼 수 있었어요. 옷가게에서 티셔츠 균일가 행사 하듯이 책을 별다른 기준 없이 큰 박스에 담아놓고 파는 곳에서 책을 살펴보는 게 정말 재밌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건진' 책이 벌써 몇 권인지 몰라요.




책이 한가득 꽂혀 있는 책장을 보면 행복하지만, 그 중에서도 헌책방에서 예기치 않게 만나게 된 책들을 모아둔 칸은 특히나 마음이 갑니다. 오늘도 헌책방에서 찾은 패니 플래그의 소설이 가방에 들어 있네요. 가까이에 한 군데 있었다면 점심 때마다 마실을 갈텐데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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