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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깐깐징어 Jul 04. 2016

손꼽아 기다리던 여행을 뒤로하다

대관령, 강릉에서 보낸 1박 2일 | 이제 하루하루 무엇을 기다리나..

세 밤만 자면, 두 밤만 자면 여행간다며 들떠 지내던 한 주가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설레어 하고 떠나는 날을 기다리다가 막상 전날 저녁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니 준비가 뒤죽박죽이었어요. 금요일 저녁인지라 서울 시내를 빠져나가는 것부터가 일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더욱 정신없는 길이었습니다. 옆 차선을 지나가는 차가 앞 유리에 물을 한 바가지씩 붓는 바람에 아찔한 상황을 두 번이나 마주했지만 강원도에 가까워질수록 다행히 빗줄기가 가늘어졌습니다. (그 순간에는 정말 후룸라이드를 타는 것처럼 빗물이 앞을 가려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더라니까요..)

아, 가는 길에 입이 심심하지 않게 사들고 갔던 과자 두 봉지도 성공적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먹는 조청 유과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어요.


하고 많은 날 중에 하필 오늘 폭우라니..

궂은 날씨가 아니었다면 더 빨리 도착했을테지만 무사히 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긴장이 확 풀렸지요. 마실 물이라도 사가야 할텐데 문 연 가게들이 있을까 싶어 고속도로를 빠져나가서 첫 번째로 보이는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숙소로 가는 몇 분 사이에도 두세 군데의 편의점을 더 발견했어요. 그러고 보니 멀지 않은 곳에 스키장도 있고 해서 놀러 오는 외지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소셜 커머스(로 시작했지만 종합 인터넷 쇼핑몰이 되어버린) 사이트에서 여행 상품이며 숙박이며 쉽게 찾아보고 예약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소개되지 않은 곳을 캐내어서 가는 재미도 있겠지만 늦은 시간 도착해서 한 밤 잘 곳이니 씻기에 불편 없고 자리만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해서 큰 고민 없이 고른 펜션도 나름대로 만족스러웠습니다. 물론 열 중 아홉이 그러하듯이 소개된 사진만큼 예쁘고 고급스럽게 꾸며져있지는 않았지만요.


평소에 잠드는 곳이 아닌 방에 몸을 누이는 것만으로도 길 떠난 기분이 확 느껴졌습니다. 굵지 않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만 하루 일정 중에서 가장 큰 고비가 지나갔다는 안도감도 들고요. 내가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 대관령에 있다는 목장 중 한 군데를 방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날씨에 대한 우려를 털어낼 수는 없었지만 될 대로 되라지 생각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바다도 있고, 여차하면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놀 거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목장에 가다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비는 거의 갠 상태였습니다. 꿈꿨던 맑은 하늘은 아니지만 이왕 대관령까지 온 것, 문턱이라고 한 번 밟아보자는 심산으로 목장 쪽으로 향했습니다. 텅텅 비어 있을 것이라는 예상 외로 이미 도착해 있는 차들도 몇 대 있었고 금방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는 아니니 한 바퀴 산책이라도 하기 위해 입장권을 샀습니다. 높은 산 위인데다 비가 온 직후여서 그런지 공기가 이보다 깨끗할 수는 없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마 계획했던 나들이를 영 포기할 수 없었던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겠지요?


들어가자 마자 송아지, 어린 양과 새끼 염소가 있는 곳이 보였습니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어릴 때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귀여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1,000원에 건초를 사서 먹이로 줄 수 있었지만 옆에 있는 꼬마가 주고 있는 것 같아서 더 주지 않았어요. 사람이 오면 먹을 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양들이 희망이 가득한 눈동자로 한참을 쳐다봤습니다. 그렇게 쳐다봐도 건초를 사진 않을거야.. 메에에 하고 우는 소리가 새삼스레 귀엽게 들렸습니다.

그 바로 앞에는 울타리를 쳐 놓은 넓은 풀밭에 더 많은 양들이 있었습니다. 어쩌다 다친 건지 알 길은 없지만 아마도 장난을 치다가 다쳤을 법한, 왼쪽 앞다리에 깁스를 한 개구져 보이는 양도 있었어요. 원래는 말들을 데려다 놓는 곳인지 말이 물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문이 울타리 중간중간 걸려있기도 했고요.


사실 '트랙터 마차'라고 부르는 일종의 셔틀 버스같은 게 있었습니다. 이용료는 6,000원이었고요. 하지만 정해진 출발 시간까지 기다려야만 타고 올라갈 수 있었고 전망대에서 멀리 볼 수 있는 날씨가 아닌 데다가 걷고 싶기도 했기 때문에 입장권만 구매해서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워낙 넓은 곳이어서 끝까지 걸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비가 온 후라 산책로가 질척거렸는데 샌들을 신고 그 길을 오랫동안 걸을 자신은 없었거든요. 아, 그리고 긴 산책로는 단풍이 지는 가을에 걷는 것이 아무래도 가장 분위기있고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탁 트인 넓은 초원을 보니 마음이 시원해지고 아주 좋았습니다. 지나가는 구름에 뚫린 구멍 사이로 가끔 햇빛이 내리쬐기도 했어요. 도시를 벗어나서 걸으려니 괜히 마음이 들떴습니다.



대관령에 와서 탕수육을?

여행과 맛있는 음식은 뗄레야 뗄 수 없을진대 - 종종 음식 탐방을 최대의 목적으로 두고 떠나는 여행도 있지요 - 당연히 어디에 가서 무얼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떠났습니다. 맛있다고들 하는 황태는 100% 내 취향이기에 약간 부족하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고기를 먹으러 가기도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른 것이 중국집이었어요. 많이 먹어본 음식이니까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이 식당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직원분들이 정말 친절하셨다는 점이에요. 관광지에서 이름난 식당에 가려고 마음먹었을 때에는 기본으로 친절함에 대한 기대치를 바닥으로 뚝 떨어뜨려놓고 가는데 이곳은 영업중이시냐는 문의 전화에서부터 - 바쁜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 성의껏 응대해주셨습니다. 도착하였을 때도 이용에 관해서 조목조목 설명해주셨기에 짧지 않은 대기 시간을 기분좋게 보내다가 전화 연락을 받고 식당을 다시 찾았지요. 홀에 계신 다른 한 분도 차분하고 친절하게 안내해주셨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놀라운 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여요.

미식가도 아니고 웬만한 음식은 입에 다 맞아서 잘 먹으니 음식에 대한 얘기는 짧게만 적어 두려고 합니다. 튀긴 고기를 달고 시큼한 소스와 먹는 음식이다 보니 느끼해서 금방 질리기가 쉬운 메뉴라고 생각해 왔는데, 생배추와 부추, 양파가 넉넉히 올라가 있는 이곳의 탕수육은 저 그릇을 다 비우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식욕을 특별히 자극하는 모양새는 아니지만 먹어보니 만족스러웠습니다. (사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늦은 점심이기에 더 맛있게 먹었던 것 같습니다.) 탕수육에 기본 서비스로 제공된다는 군만두는 결국 포장해 왔지만요.




파란 하늘을 온 몸으로 받치고 있던 바다를 보다

배를 땅땅 두드리며 식당에서 나서니 날이 활짝 개어 햇빛이 쨍쨍한 날씨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냥 돌아가기가 아깝기도 하여 강원도에 오면 자주 찾는 안목해변에 가기로 했어요. 동해안에서 바라본 바다는 우중충한 날보다 햇살이 내리쬐는 날씨에 왠지 더 에메랄드 색으로 빛난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 영롱한 색을 원없이 바라보고 왔습니다.

강릉항을 둘러싸고 있는 방파제를 따라 걸으면서 바라본 안목해변의 모습입니다. 개장이 아직 일주일 남은 시점이었지만 벌써 해수욕을 하러 온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위험해 보이지만 방파제 위에서 낚시를 하는 아저씨들도 많았어요. 낚시의 재미를 모르는 나에게는 오매불망 기다리기만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느 구석이 재미있는걸까 싶었습니다. 그 재미를 이번 생에 알게 될 것 같지도 않지만, 또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겠지요. 대여섯 명 친구들끼리 모여 일찍 휴가를 온 대학생들의 부탁으로 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습니다. 참 예쁘게도 하고 온 학생들이 많았어요. 그 풍경의 일부가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바닷가 산책이었습니다.


걷다 보니 울타리 바깥에서 낚시를 하는 아저씨들 중 한 분이 물에서 끌어올리다 뒤로 내팽개쳐진 것만 같은 물고기 한 마리가 길 위에서 파닥거리고 있었어요. 아무리 봐도 잡아다가 둔 것 같지도 않고, 파닥거리면서 입을 움직이기도 하는 걸 보니 아직 죽은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맞는 일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 모습이 너무 안돼보여서 물에다가 다시 던져줬습니다. 아직 살아는 있는지, 다친 곳이 있었다면 나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카페거리가 있어서 2,3층짜리 카페 건물들이 줄지어있는 안목해변인데 이번에 가서 보니 대형 프랜차이즈 체인이 적잖이 들어와있었습니다. 직접 굽는다는 케익이 여러 종류 진열되어 있어서 시선을 끌던 곳이 있었던 기억이 나 그곳을 찾았습니다. 테라스에서 바닷바람 맞으면서 사정없이 휘날리는 머리카락 덕분에 맛이 어떻니 할 겨를은 없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앞두고 잠깐 앉아서 커피를 한 잔 마시기로 한 건 좋은 생각이었습니다. 활기찬 바닷가를 두고 아쉬움 가득한 마음으로 길을 떠나지 않고 잠깐 앉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어요. 짧은 짬을 내어 도망치듯 1박 2일 여행길에 오른 것은 처음이었던지라 이런 마무리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을 위해서 영동고속도로는 곳곳에서 공사가 한창입니다. 그래서 차로가 하나 밖에 없는 구간도 많은데 특별히 길이 막히지는 않아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어요. 끝으로 손세차장에서 약간의 육체 노동으로 이 짧은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처음 해본 것이 많았고 모난 구석도 없는 기분 좋은 여행길이었어요.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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