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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깐깐징어 Jul 08. 2016

"내 남편이랑 무슨 사이에요?"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통해 본 이탈리아의 남자들

갑자기 전화가 옵니다. 모르는 번호이지만 혹시 얼마 전 예약한 건에 관련된 것일지도 몰라 일단 받아봅니다.


"Hello?" 하더니 내 이름을 말하며 이 사람의 전화가 맞느냐고 묻습니다. 억양으로 판단하건대 영어를 잘 하는 이탈리아 사람인 것 같았어요. 전화 번호와 이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인고 하고 통화를 이어갔습니다.


"I'm Alexandro's wife."

뜬금없이 전화를 하더니 자기가 이 사람의 아내라고 하네요. 이 말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는 '그래서 어쩌라는 거죠?' 하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큰 의미는 없을지라도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다른 이름을 썼지만) 이름들이 거기서 거기라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을 한 명 쯤은 알 법도 한데, 참말로 나의 지인 중에 알렉산드로라는 사람은 없는데 말이지요.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더 가관이었습니다...

"내 남편이랑 무슨 사이에요?"


으아니, 이게 무슨 소리랍니까 대체? 당신의 남편하고 나하고 무슨 사이냐니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공교롭게도 알렉산드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둘은 고사하고 하나도 없으니 알렉산드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의아한데 무슨 사이냐고 물을 건 또 뭐랍니까. 어안이 벙벙해서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고 말이에요.

그 시점까지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로라는 사람은 한 명도 모른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이어지는 설명을 듣고 보니 단순히 내가 그 사람을 잊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석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전시물 앞에서 근무할 때였어요. 관람객들이 들어오면 저 앞에 있는 커다란 옹기 모형에 대해서 설명도 하고, 곧 시작될 영상물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이야기해주어야 했기에 영상이 재생되는 시간 동안은 주로 위험한 것은 없나 지켜보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같은 설명을 해야 하니 누군가 질문을 해 주거나 하면 지루함이 덜해서 반가웠지요.


문제의 그 날도 한 관람객이 질문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전시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했지만 우리나라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는지 여러 가지를 묻더군요. 한국에서 평소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부터 시작해서 북한에 대한 질문까지 참 많은 것들이 궁금하구나 싶었습니다. 영상이 몇 번이고 돌아가는 시간동안 전시관에 머물면서 질문을 했으니까요.


"더 궁금한 것이 많은데 일을 너무 방해하는 것 같네요. 이메일을 보내서 좀 더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에게 거절을 하기도 그렇고, 반복적인 일상에 펜팔이라도 생기겠구나 싶어 이메일 주소를 준 적이 있더랍니다.


알렉산드로

이 분, 그러니까 이 알렉산드로로 말하자면 페루지아라는 이탈리아 반도 정 중앙부에 위치한 도시 출신으로 밀라노에서 열린 학회에 참가하는 김에 이 곳에 방문한 학자였습니다.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그 후로 몇 통의 이메일이 왔고, 마지막 이메일에는 답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밀라노에 다시 올 일이 있으니 시내에서 밥이라도 먹자는 것이 골자였는데, 근무와 교통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울 뿐더러 뭔가 쌔-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애를 쓰지?' 하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무섭게도 이 아내는 내가 마지막 이메일에 답장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이메일을 읽어보니 식당 이야기가 있고 만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어떻게 된 건가요?"


오해를 해도 초특급 오해를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질문의 내용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흥분하는 기색 없이 너무나도 차분하고 점잖은 말투 덕분에 나 역시 흥분하지 않고 설명을 시작했지요.


"이야기를 들으니 기억이 납니다. 6월에 관람하러 오셨는데, 한국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것이 더 있다고 해서 이메일 주소를 알려드렸습니다. 나중에는 답장도 하지 않았어요. 생각하고 계신 건 결코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 말이 끝나자 알렉산드로의 아내는 안도의 숨을 내쉬더니 저한테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이 상황에서 고맙다는 말이 어울리는지를요... 알고 보니 이 알렉산드로가 아내의 속을 엄청나게도 썩였던 것입니다. 이메일을 확인한 이유도 알렉산드로가 수 회에 걸쳐 이런 전적(?)을 쌓아 두었기 때문이랍니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어서 여러 번 있어서 남편의 이메일을 확인해요. 밀라노에 다시 간다는 말도 있고 만나자는 이야기가 있길래 또 불안해져서 전화를 했어요. 이렇게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얼마나 황당하고 실망스럽고 또 화가 나서 이메일 서명에 있는 나의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을지 생각해 보면 이 이름모를 여자분에게 연민의 감정이 생길 지경입니다. 나 역시 황당한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이 일이 너무나도 웃기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대체 알렉산드로는 얼마나 화려한 역사를 써두었길래 아내가 이렇게까지 불안해 하면서 사는 걸까요? 그 후의 일년은 또 다른 "내 남편이랑 무슨 사이에요?" 하는 전화 없이 무사히 보냈을까요?



이 전화가 왔던 것은 두세 달 후였던 것 같습니다. 그 사이 이름도 기억에서 지워진 것을 보면요. 그런데 이 전화를 받고 나서 이탈리아 남자들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하게 됐습니다. 모든 이탈리아 남자가 그렇다고 일반화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 남자들과 평생을 함께 하자고 약속하고 사는 배우자들은 어떤 기분일까 하고요.



내가 느낀 이탈리아 남자들의 특성은...

내가 받았던 이 전화도 그렇지만 전시관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꽤 있었어요.


근무 중인 스탭들하고 사진을 찍고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요, 그 중에서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한아빠이자 남편인 분들도 다수 있었습니다. 워낙 말로도 손으로도 표현을 크게 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인지라 누구의 아빠이자 남편인 그 분들도 "Bellissima!" 혹은 "che bella!" 하는 말을 아주 극적으로 하곤 했지요. 그러고는 장난스레 꼭 붙어서 사진을 찍어가는데 함께 사진을 찍지 않은 아내는 눈을 굴리면서 양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곤 했지요. 마치 '저 화상을 어쩌면 좋아..." 하는 것처럼요.


'종특'이라는 말이 나쁜 뜻으로도 쓰이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내가 여기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다수의 이탈리아남자들의 특성도 어찌 보면 하나의 종특 - 가치 판단 없이! - 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스타일이나 감정을 꾸밈 없이 표현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스스럼 없이 다가가고, 여성을 존중하고 친절히 대하는 모습이 이탈리아의 남성들에게서 내가 발견한 공통점이었어요.


가끔은 이런 특징이 배우자에게는 못마땅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한 알렉산드로처럼 도를 넘어선 경우도 있을 것이고요. 그치만 스탭과 관람객의 인연으로 스쳐지나간 이 나라 남자들을 보면 누구에게서든 칭찬할 구석을 찾는 데는 세계 최고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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