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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Apr 26. 2024

모스크바에서 산책을 즐기는 방법 : 가로수길 고리

도심을 둥글게 둘러싼 가로수길 고리 따라 걷기

산책할까요?


날씨가 아주 좋은 날이면 여유롭게 산책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산책하기 좋은 공간이 많이 있지만, 걷고만 싶은 날에는 유난히 모스크바가 간절하게 가고 싶어진다.


모스크바에는 곳곳에 예쁘고 드넓은 녹색 공원은 물론, 도심 속에서 하염없이 산책할 수 있는 긴 가로수길이 있어 오랜 시간 단조롭지 않게 산책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의 가로수길 풍경(출처: photocentra.ru)


특별히 모스크바 중심가에 가면 어떻게든 보행자를 위한 이런 산책로를 한 번은 만난다.

복잡한 시내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명소를 탐험하며 중간중간 휴식할 수 있는 가로수길이 있다! 

가로수길은 9km의 길이로 모스크바강 북부의 시내를 둥글게 주욱 감싸고 있는데,

길이 활처럼 휘어져 고리 모양과 같다고 하여 '가로수길 고리(бульварное кольцо)'라고 부른다.

이 고리에는 10개의 가로수길이 건물과 도로 사이사이로 끊어질 듯 이어진다.


이 엄청난 산책로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모스크바 도심 속 10개가 이어진 녹색 가로수길 고리(출처: dzen.ru)


고대 성벽 따라 만들어진 길


고대 러시아는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주요 도시에 성벽을 쌓고 살았다. 16세기의 모스크바도 마찬가지였다. 타타르 침입 이후 모스크바의 크렘린과 키타이 고로드 밖으로 '벨리 고로드(Белый город 흰 도시)' 성벽과 탑이 세워졌다.


17세기 벨리 고로드 영역(노란색)과 풍경(출처: ru.wikipedia.org,  nikolay-saharov.livejournal.com)


그러나 도시가 성장하여 방어의 기능을 상실한 성벽은 18세기 철거되고 그 자리에 평평한 길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바로 가로수길 고리의 시초가 된다. 제일 먼저 1796년 트베르스코이 가로수길이 생겼다. 당시 외곽의 성벽은 모두 길로 다져졌고, 성벽의 탑들은 현재 가로수길 사이사이 광장 이름으로만 남아 있다.


트베르스코이 가로수길의 19세기, 20세기 초 모습(출처: interesnyefakty.org, um.mos.ru)


가로수길 고리의 지금 모습은 조국 전쟁이 발생한 1812년 이후 도시가 복원될 때 일련의 길들이 고리 형태로 이어지면서 완성된다. 이 길을 따라 19세기에는 마차가 운행되었고 1911년에 트램이 다녔으며, 주변으로 주요 건물들이 조성되었다. 이후 폐쇄와 변화를 지속한 가로수길 고리는 대조국 전쟁이 끝나고 모스크바 설립 800주년 기념으로 1947년 재건되었다. 이때 주철 울타리와 나무 벤치가 설치되고 수많은 나무와 목초가 등장했다. 가로수길 고리는 1978년 공원 조경 예술 기념물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모스크바 시민들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무엇보다 여유롭게 산책하면서 모스크바의 역사를 느낄 있는, 더없이 좋은 장소이다.


모스크바 시민들의 쉼터가 되는 가로수길 고리(출처: emilia-spanish.ru)


가로수길 고리의 명소들


가로수길 고리는 모스크바강 북부로 서쪽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이 있는 프레치스첸스키 대문 광장에서 동쪽 쇼이 우스친스키 다리 인근까지 주욱 이어진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 벤치와 화단, 동상 등 조형물을 비롯해 광장과 가로수길 옆을 지나는 트램, 멋진 건축물 등 볼거리로 지루할 틈이 없다. 물론 건물과 도로로 인해 가로수길이 중간중간 끊겨 길을 건너야 하는 곳들도 있지만 건물과 도시 풍경을 구경할 수 있어 오히려 좋다.


게다가 모스크바 도심에서 웬만한 곳들은 이 가로수길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닿는 거리니

두발만 있다면 어디든 누릴 수 있는 셈이다.


고리를 이루는 10개의 가로수길(출처: yandex.ru/maps)
① 고골렙스키 가로수길 Гоголевский бульвар
② 니키츠스키 가로수길 Никитский бульвар
③ 트베르스코이 가로수길 Тверской бульвар
④ 스트라스노이 가로수길 Страстной бульвар
⑤ 페트롭스키 가로수길 Петровский бульвар
⑥ 라즈제스트벤스키 가로수길 Рождественский бульвар
⑦ 스레첸스키 가로수길 Сретенский бульвар
⑧ 치스토프루드니 가로수길 Чистопрудный бульвар
⑨ 파크롭스키 가로수길 Покровский бульвар
⑩ 야우스키 가로수길 Яузский бульвар


10개 가로수길은 저마다 비슷한 듯 다르다. 그중 트베르스코이 가로수길이 875m로 가장 길고, 스레첸스키 가로수길이 214m로 가장 짧으며 스트라스노이 가로수길 폭이 123m로 제일 넓다. 


가로수길 포인트별 지도


먼저, 서쪽에서 시작하는 고골렙스키 가로수길은 영화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에도 나온 배경이다. 여기 주목할 동상들이 있는데, 먼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고요한 돈강』의 작가 미하일 숄로호프(Михаил Шолохов, 1905~1984)의 돈강 위 보트 탄 형상이다. 보트 뒤 강으로 표현된 분수에 말 머리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영화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에서 나온 고골렙스키 가로수길(출처: dzen.ru)
고골렙스키 가로수길의 미하일 숄로호프의 동상(출처: m.maybe.ru)


그리고 고골렙스키 가로수길 막바지에는 가로수길 이름의 주인공인 작가 니콜라이 고골(Николай Гоголь, 1809~1852)의 동상이 있다. 그는 담대해 보이며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있다. 이곳에서 아르바트 지하 통로를 지나 조금 나아가면 니키츠스키 가로수초입에도 공원에 고골앉아있는 동상을 만날 있다. 고골이 말년을 보낸 근처의 동상은 앞서 만난 동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그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던 시기 모습이라 슬프고 우울하다.


고골렙스키 가로수길 고골 동상과 니키츠스키 가로수길 부근 고골 동상(출처: mosprogulka,ru, evgechesnokov.livejournal.com)
트베르스코이 가로수길 초입의 푸시킨과 곤차로바의 분수(출처: ВКонтакте)


다음으로 트베르스코이 가로수길 초입에 지나치기 아쉬운 조형물이 있다. 바로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Александр Пушкин, 1799~1837)과 부인 나탈리야 곤차로바의 분수로, 원형의 돔 아래 두 사람의 형상이 보인다. 이곳은 커플들이 들러 행복을 비는 장소로, 그 뒤로는 푸시킨 부부가 결혼식을 올린 교회도 있다. 이어서 나오는 가로수길 가운데에는 아름다운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Сергей Есенин, 1895~1925)의 동상을 만난다. 자연과 농촌을 노래한 그의 섬세하고 소년 같은 모습이 묘사된 듯하다.


트베르스코이 가로수길의 세르게이 예세닌 동상(출처: fotokto.ru)


트베르스코이 가로수길 끝에 트베르스카야 거리가 나온다. 이 거리를 따라 남으로 가면 붉은 광장이다. 트베르스카야의 거대한 푸시킨 동상이 있는 광장에서 뮤지컬 극장 건물 뒤로 넘어가면 스트라스노이 가로수길이 펼쳐진다. 이곳은 음악인을 만나는 길이다. 먼저, 앉아 있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Сергей Рахманинов, 1873~1943)의 동상이 우리를 기다린다. 세계적인 작곡가인 그의 동상 앞에서는 날이 따뜻할 때면 음악이 연주되고 사람들이 춤을 추기도 한단다. 그 가로수길 끝에는 소련 국민가수 블라디미르 비소츠키(Владимир Высоцкий, 1938~1980)의 기념비가 있다. 두팔을 벌리고 서있는 그의 모습에서 자유를 느낀다. 많은 음악가가 영감을 받기 위해 들러야 할 곳이다.


스트라스노이 가로수길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와 블라디미르 비소츠키 동상(출처: aramis7.livejournal.com, stranabolgariya.ru)


이후 페트롭스키 가로수길을 지나 라즈제스트벤스키 가로수길의 초입에는 중앙 시장이 있다. 가로수길을 걷다가 허기가 느껴진다면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배를 채워 가도 좋다. 라즈제스트벤스키 가로수길 주변으로는 저택 건물과 성당이 있어 주변 건축물을 유심히 살피며 갈 필요가 있다.


가로수길 거리에 걸쳐 있는 중앙 시장(출처: trip-for-the-soul.ru)


이어서 가로수길 중 가장 짧은 스레첸스키 가로수길 초입에는 나제다 크룹스카야(Надежда Крупская, 1869~1939)의 동상을 만난다. 그녀는 레닌의 아내이자 사회주의 동지였는데, 젊었을 당시 여성 혁명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동상 뒤 두 개의 철탑에는 크룹스카야의 연설문 일부가 인용되어 있다. 그리고 가로수길 막바지에는 엔지니어이자 건축가인 블라디미르 슈호프(Владимир Шухов, 1853~1939)의 동상이 있다. 그는 철 그물로 만든 모스크바의 슈호프 탑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굼, 푸시킨 박물관, 메트로폴 호텔 등 각종 건축물의 아치형 천장을 설계한 건축계의 거장이다.


스레첸스키 가로수길의 나제즈다 크룹스카야와 블라디미르 슈호프 동상(출처: ru.m.wikipedia.org, fotokto.ru)
연못이 있는 치스토프루드니 가로수길(출처: flectone.ru)


다음으로 이어지는 치스토프루드니 가로수길에는 연못이 있어 운치를 더한다. 호수를 지나 파크롭스키 가로수길 들어서기 직전에 가로수길 고리의 원천이 된 성벽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벨리 고로드 성벽의 일부로 추정되는 길이 50m, 너비 4.5m의 흰 석조가 2007년 발견된 이후로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원형의 극장처럼 둘러싸여 전시된 성벽 조각은 옛 모스크바를 상상해볼 수 있는 유일한 유적으로 남았다. 그 근원을 뒤로 하고 파크롭스키 가로수길과 야우스키 가로수길까지 걸어가면 기나긴 모스크바의 가로수길 고리는 끝난다.


벨리 고로드 성벽 일부(출처: autotravel.ru, azimutour.ru)




스토리도 있고 눈도 즐거운 모스크바의 가로수길 고리!

이처럼 모스크바 중심을 속속들이 산책할 수 있는 길이 또 있을까?


나무 사이로 인물의 형상을 한 다양한 동상, 가로수길 밖 감출 수 없는 건축물의 우아함까지.

러시아스러운 것들을 집약적으로 꿰뚫으며 여행할 수 있는 아주 멋진 '성벽 없는 성벽길'이다.


모스크바 가을 풍경(출처: mouzenidis-travel.ru)

* 모스크바를 여행하는 또 다른 방법! 강줄기 따라 유랑하기



※ 원문 관련 영상 [모스크바 최고의 산책, 가로수길 고리]

https://youtu.be/6Bos6Vvprek

출처: 유튜브 채널 여행과 사색



* 커버 사진 출처: carposting.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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