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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Nov 04. 2024

'J'가 맞닥뜨린 'P'식 도쿄 여행(1)

출발 이틀 전 결심한 부모님과 도쿄 자유여행

이 좋은 가을날
그냥 보내면 되겠어?


마침 기념일도 있어 10월 말은 부모님함께 특별한 시간을 보낼 참이었다. '마지막 는 시간이 괜찮다'는 우리 셋의 암묵적 합의도 이미 있었다. 그래서 나도 1-2개월 전부터 일부러 아무 일정 잡지 않고 있었다.


'가까운 에라도 여행을 다녀오면 좋겠다'

'안 되면 서울 인근 당일치기 여러 번 다녀와야지'

떠날 날을 생각하며 여행지 정보, 여행 상품수없이 검색해보고 매일 달라지는 상황 체크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J'(계획형)라 그런지 몰라도, 일단 뭐라도 미리 찾아봐야 마음이라도 편하다.


하지만 이젠 부모님이 예전처럼 맘만 먹는다고 움직일 수 있는 연세가 아니기에,

어디로 어떻게 갈지에 대한 결정은 생각보다  이루어지지 않았다. 

건강 상태, 날씨 등 여러 상황을 지켜보며 기다렸다.

그렇게 하루, 이틀..... 10월의 마지막주가 다가왔다....!


그래, 도쿄에 가 보자!
우리끼리 편하게.


드디어 결재가 떨어졌다!

그런데, 떠나는 날... 내일 모레.....?

마침 괜찮은 시간대의 도쿄 티켓이 남아 있는  방아쇠를 당겼다. 결정과 동시에 공 티켓은 바로 결제했고, 숙소도 여러 번 휘릭 보고 적당한 걸로 예약했다.


도쿄, 오, 도쿄!


즉흥 여행이다. 나 혼자도 아니고, 부모님과 자유여행! 괜찮을까?

그냥 마음 가는 대로, 가고 싶은 곳을 그날그날 정해 다니기로 했다. 준비 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이라니, 한편으론 너무 설렜다. 물론 부모님 모시며 이동하는 일은 오롯이 내 몫이지만!

여행작가라도 이런 경험은 솔직히 처음이다. 혼자 다닐 때는 고생을 자처하며 많이 걷고 덜 먹고 다니는데만 열중하는 스타일인데, 이젠 연로한 부모님과 함께 가니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챙길 게 많았다.


먼저 현지 이동에 필요한 것들을 다 찾아봤다. 다행히 도쿄는 많은 걸 갖춘 대도시! 숙소를 비롯한 웬만한 관광지는 지하철 이동이 가능했다. 부모님도 대중교통 이용은 각오하고 계셨던 터라, 동선만 잘 짜면 된다.

그렇게 항공권, 숙소, 지하철 패스, 포켓 와이파이, 여행자 보험까지... 이틀만에 준비 완료!(이런 건 필히 J식으로! 부모님을 길거리에 앉힐 순 없으니!) 역시 일본은 대중적인 여행지라서, 정보가 많아 급작스런 준비에도 어려움을 덜었다. 러시아는 언제나 그렇게 될까?


즉흥 여행의 흔적


그렇게 러시아가 아닌, 언어도 잘 모르는 나라로 부모님과 즉흥 자유 여행!

J(계획형)의 P(즉흥형)식 일본 여행이 시작됐다.


미션 수행 지하철


공항마다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제는 확실히 비수기, 성수기가 없다. 코로나19 이전보다 해외 오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진 느낌이다. 그 속에 우리도 있었다. 부모님은 5년 만에 첫 해외 여정이라 설레셨을 텐데, 엄청난 공항 인파와 기다림에 차츰 지쳐가고 계셨다. 쇼핑이고 뭐고 편안한 쇼파 빈 자리 찾아 앉아서 탑승 시각까지 체력을 충전했다.


혼자였으면 오직 목적지를 향해 직진했을 길이지만, 부모님이 계셔서 오며가며 짐꾼, 티켓 구입, 길 찾기, 화장실 위치, 앉을 자리 확 등등 할 일이 많았다. 게다가 도쿄는 나도 딱 한 번 와 본 도시라, 그야말로 매번이 미션 수행(!)이었다. 그래도 일본은 안전하고 우리와 비슷한 문화권이라 이질적이지 않은 게 다행이다.

친절한 구글맵


도쿄 도착해 맞닥뜨린 첫 미션은 숙소 찾아가기.

러시아였으면 어디든 어떻게든 찾아갔겠지만, 도쿄는 한국과 비슷한듯 달라서 연구가 좀 필요하다. 생각보다 대중교통, 특히 지하철을 포함한 열차 시스템과 종류가 꽤복잡했다. 처음엔 다 이해하려 하다가 내 갈 길만 찾는 게 답. 그나마 구글 맵의 신뢰도가 높아서 여행내내 많이 의지했다.


미리 찾아둔 경로대로 나리타 공항역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고 도시행 열차를 기다렸다. 열차표를 보니 옛날 우리네 지하철 티켓이 떠오른다. 우리도 이런 표를 가지고 지하철을 타던 시절이 있었지! 이 티켓은 역을 나갈 때까지 보관해야 개찰구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하철 티켓

 

열차는 정확히 시간표대로 운행되었는데, 배차간격이 긴 편이었다. 같은 플랫폼이라도 다른 열차 또는 회차 차량이 오는 경우도 있어 잘 확인하고 타야 한다. 숙소 위치를 고려해 선택한 열차는 고급 고속열차가 아닌 일반 급행 열차표(스카이엑세스)였고 지정석도 없다. 그래도 도쿄 대중교통을 타본다는 기분에 마냥 즐거웠다.


나리타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스카이 엑세스


한국에서 도쿄 서브웨이 패스(72시간) 바우처를 미리 끊어왔다. 72시간 지하철을 무한대로 탈 수 있는 표인데, 이게 도쿄 시내 다니는데 그렇게 편했다. 물론 이 패스는 도쿄 메트로(M)와 토에이 지하철(은행잎) 라인만 유효하다. JR이나 사철 라인 이용 시에는 별도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이처럼 열차가 다양하고 복잡해진 이유는 노선마다 운영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노선을 바꾸면 교통카드 이용 시 환승 할인이 안 되고 요금이 과금된다. 또 환승역이 지하로 이어진 곳도 있지만 바깥으로 나가거나 좀 많이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운 장소들도 좀 있다.


도쿄 여행의 가장 확실한 방법! 도쿄 서브웨이 패스
복잡한 도쿄 지하철(출처: 네이버)


공항에서 도시에 들어와서는 서브웨이 패스를 사용했다. 그렇게 다행히 헤매지 않고 숙소에 잘 도착했다.

도쿄는 물가가 비싼 편이서비스는 잘 되어 있으니, 굳이 고급 호텔을 고집하기보다 역세권의 비즈니스 호텔을 택하는 편이 더 실용적인 듯하다. 우리가 지냈던 3성급 호텔도 객실 크기는 작아도 웬만한 시설어메니티 등 모두 작게라도 구비되어 있었다. 놀라울 정도다. 역시 아기자기하고 실용적인 일본!

프론트에 한국어 구사 직원도 있었다. 그만큼 한국 여행객이 많이 온다는 거겠지?


그렇게 가장 큰 미션 수행 완료.


침대로 가득한 3성급 호텔의 어느 좁은 3인실


도쿄, 칭찬하고 싶은 것들


도쿄 첫 방문은 무려 9년 전. 그때는 현지에 거주하는 후배가 리드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 기억밖에 없다. 어디를 어떻게 가고 무엇을 했는지 상세한 건 대부분 잊었다.(당시의 나는 휴가 내고 놀러간 회사원이었음) 이번이야말로 여행작가로서 완전 새롭게 만나는 도시나 마찬가지였고, 모든 것이 실전이었다.


매일 가고 싶은 곳을 정해 도쿄를 다 그 장점이 확연히 보였다. 특히 부모님과 함께라 더 그랬다.

먼저, 도쿄 시내에서 짐꾼이나 노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가 조금 찾아보면 어디에나 있었다. 도시에 막 도착해서 요령도 없고 잘 몰랐을 때지하철역에서 무거운 짐을 내가 직접 들고 열심히 계단을 오르내는데(아이구 내 허리...), 다니다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단 걸 깨달았다. 지하철역이나 관광지 등 어디나 대기 중인 엘리베이터 덕분에 오래 걸어서 계단이 불편하신 부모님도, 짐이 있는 나도 더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웬만한 곳에 다 있긴 할 텐데, 이용해본 적이 없으니 보일 턱도 없다.)


어디에나 있는 화장실과 엘리베이터


또 어느 곳에 가나 깨끗한 화장실있었다. 그것도 심지어 무료다! 여행에서 화장실은 정말 중요하다.

도쿄 지하철역, 쇼핑몰, 관광지 어디든 화장실이 있다. 세면대 물과 물비누는 손만 대면 자동으로 나온다. 칸마다 (당기면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한)휴지도 늘 있었고, 센서 달린 변기의 물은 자동으로 내려갔다. 특별히 쇼핑몰 화장실에는 아기 의자와 침대, 수유실도 있어 아이 데리고 다니기도 좋은 환경이었다.

참 화장실에 아낌이 없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선진국인 만큼 화장실마다 잘 관리되고 있었다.



그리고 친절했다. 그것이 진심이든 가식이든 상관없다. 일단 톤이 높다.

いらっしゃいませ 이랏샤이마셰(어서오세요)

도쿄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던 것 같다. 어디를 가도 이토록 환영을 해주니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영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애를 쓰니 결국은 통한다. 그리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 서비스업에서 '친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버지는 매우 흡족해하셨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답한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아리가토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뒤에 몇 마디라도 더 하려면 다음에는 일본어 좀 더 배우고 와야겠다.


차내 온도 괜찮냐고 물어봐주던 친절한 택시기사님


또 눈에 띄었던 건 관공서에서 묵묵히 일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다.

공항에도, 지하철역에도 안내하시는 분들 중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많았다. 하는 일은 단순 작업이기는 했으나 먼지 날리고 사람 많은 그런 환경에서 마스크를 끼고 열일하시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본인도 얼마나 뿌듯하고 감사할까. 역시 고령화율이 높은 나라다웠다.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이런 모습을 만나게 될까?


지하철 플랫폼 위의 어르신


이처럼 다양한 장점들이 눈에 들어오니,

연로하신 부모님이 여행하시기에 도쿄는 꽤 괜찮은 곳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J'가 'P'식 여행을 하는 것도 예상 외로 해볼 만하다.

이렇게 편견없이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또 당연한 것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으니 말이다.


젊고 매력적인 도쿄, 긴자 거리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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