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디자이너의 이어폰 이야기는 독일의 InEar
InEar ProMission X는 금수저이다. 제품 개발 기업은 물론 자재와 설계, 공정 그리고 구성면에 있어서도 갖가지 장점을 채운 제품이다. 그런데 이토록 잘난 금수저 같은 제품들을 리뷰할 때면, 이상한 심리 하나가 고개를 든다. ‘그래도 뭔가 하나는 부족하겠지...’라고 생각하며 흠이 있기를 살짝 기대해 보기도 한다. 부족함을 찾고야 말겠다는 의지도 아니며, 어떻게든 끌어내리려는 혹평의 결심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저 흠 없는 완전체는 없다는 사실과 금수저에 대한 동경과 질투 섞인 사심이 살짝 곁들여져 있을 뿐이다. 그래서 몇 날 며칠 밤을 그 부족함을 캐내려 귀 안에 땀이 나도록 Promission X를 꽂고 살았다.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ProMission X의 하우징에 길들여져 귓바퀴가 약간 확장된 것 같은 느낌이...)
InEar ProMission X는 모든 음역대에 걸쳐 충만함을 갖고 있다. 충만함에 끌려 과식하 듯 모든 장르의 음악과 소리를 적극적으로 들어 보았다. (우연히라도 작은 불편함이 귀에 꽂히기를 기대하며...) 그러면서 오래간만에 호캉스를 즐기듯, 정신줄을 내려놓고 호화로운 ProMission X의 넉넉한 서비스를 즐겼다. 그리고서 이제 몸을 세워 조용히 매스를 들어 음역대별 특징과 무대 연출 그리고 음악의 운영면을 해부하고 정리하려 한다.
ProMission X의 저음역대는 양감과 질감면에서 리치 하다. 심지 굵은 라인을 형성하여 빅 제스처로 움직이는 저음의 라인이 일품이다. 너무 펑퍼짐하게 퍼지지 않는 밀도와 다른 음역대의 기반을 단단하게 받치듯 흐르는 충실함이 멋진 센스처럼 들린다. 타악기의 타이밍 좋은 어택과 딱 좋은 공기의 울림도 멋스럽다. 초저음역대의 밀도와 깊이감에서 살짝 루즈함이 있는데 달리 말하면 저음 가격력이 위협적이지 않아 이 역시 마음에 든다. (물론 이제까지 들었던 리뷰 제품들 중 최고라 여겨지는 저음역대에 속하지는 않지만...) 표현컨데 “조절된 충분함” 어쩌면 이 표현이 ProMission X의 저음역대에 걸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 조절됨도 이미 필요한 분량을 차고도 넘친다. 이렇게 저음역대가 좋은 제품들은 중음역대에 대한 기대감도 고조되기 마련인데 말이다.
ProMission X의 중음역대는 있는 그대로 말해 대단히 좋다. 여러 장르의 어떤 무대를 듣던 표현 되고야 마는 ProMission X의 자신감은 중음역대의 굵은 기둥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고음과 저음 사이에 샌드위치 되어 고음 또는 저음에 묻어가거나 한 덩어리로 묻혀버릴 수도 있는 중음역대. 하지만 ProMission X의 중음역대는 많은 정보량을 내재하고 이를 통해 음악의 중심성과 음악 전체의 온도를 조절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중음역대 덕에 무대가 무척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을 기대하게 된다. 어쿠스틱 기타 음악과 중음역대 보컬과의 조합이 특히 좋으니 꼭 들어보시길 바란다. 매우 만족 넘치는 음악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고음역대로 넘어가 본다. ProMission X의 고음역대는 표현력이 넘치는 가수다. 힘 있는 직진성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까칠 거릴 선상에서는 기교 있게 품위를 지킨다. 그리고 거칠지 않은 자신감으로 쭉쭉 뻗는 힘을 가졌다. 사실 중저음역대가 단단한 제품들의 경우, 고음역대는 전체의 분위기를 닮아가며 온기감을 담기 마련인 경향이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고음역대의 온도가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고음역대의 선율이 지나가면 차가움이 느껴진다. 그래서 자연스레 중음역대와의 분리력이 생기고 선예감 있는 움직임을 분명히 들을 수 있다. 사실 ProMission X의 음역대별 정리를 하며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이 온도 차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보통은 일맥상통하는 분위기라는 게 있는데 ProMission X는 분명 전체의 따뜻한 온기가 있으면서 동시에 중간중간 차가운 라인을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온탕 속에서 냉수를 틀어놓으면 잠시 후 느껴지는 냉수의 흐름과 같은 냉기처럼 말이다.) 킥과 고음 보컬의 존재감과 에너지를 확연히 느끼게 해주는 선명한 파워가 있다. 그 파워는 해상도가 높아서 차가운 선을 갖지만, 초고음역대에서 뾰족하고 단단해질 수 있는 특성들을 흡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리얼한 사운드는 차갑지만 금세 주위의 사운드가 그 차가운 온도를 변화시켰다고 얘기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고음역대에 대한 정리가 된다. 솔직히 ProMission X의 음역대는 정보량이 너무 많다. 물론 나의 경험 부족도 있겠지만 제품의 대단함으로 인한 것인지 간명하게 정리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
이번엔 ProMission X의 음악-무대 운영을 보자. 음량과 음질에서 풍부하게 사운드를 쏟아낸다. 해상도가 넘치는 것이다. 온기감이 높은 편이지만, 개방성과 에너지가 조화되어 있어 답답하지는 않다. 또한 고음역대의 해상도가 높아서 온도 조절이 된다. 이런 중저음역대와 고음역대의 온도 차이는 색채감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준다. 음악의 중심 선율이 정위면을 포함하여 항상 중심에 그것도 크게 등장한다. 여기서 어렵사리 금수저의 흠을 굳이 짚어본다면 무대감이 기대만큼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늘 리뷰용으로 사용하는 대편성 오케스트라 곡을 들을 때 악기 배치와 악기 간의 경계선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동일 조건으로 재즈 앙상블을 들을 때도 스테이지가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ProMission X는 음악에 매우 충실하다. 세세함과 시시콜콜함에 악보를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음악에 대한 정보가 넘친다. 하지만 무대를 구성하고 그려주는 면에서, 그리고 공연장의 공기와 천정을 느끼게 해주는 데는 아쉬움이 있다. 음악을 듣는 즐거움은 매우 높고 보는 즐거움이 조금 떨어진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청음 제품에 무언가를 보여달라고 기대하는 것도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최근 출시되는 인이어 제품들은 이미 사운드의 정보를 시각화하고 공간을 느끼게 까지 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시류 혹은 시대의 기술을 경험한 이상, 무대 형성감에서 만족감을 못 갖는다는 것은 이 금수저의 큰 흠이라고 감히 얘기할 수밖에 없다. 기대감이 높을수록 실망감이 커지는 논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너무 훌륭한 경지의 기술을 갖추고 있는지라, 이 정도의 흠은 정말이지 단지 옥에 티 같은 “흠”일뿐이다. 그걸 알기에 과감히 지적질을 해본다. 하지만 이 문제는 또 다른 시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음악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지 모를, 가령 음악 속에 들어가 본 경험을 해보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마치 판타지 영화나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나 있을 것 같은 상상이겠지만, 현실세계와는 다른 시스템 속에 들어가 정신없이 지나가는 아찔한 움직임 속에서 뭔가 어마어마한 세상을 접할 때의 경이로움과 놀라움, 두려움 그리고 설렘이 존재한다. ProMission X는 그런 음악세계 안으로 우리를 넣어 버린다. 그러니 무대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린 이미 그 음악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괜시레 무대를 운운하는 것도 조금 웃길 수 있다. 정작 ProMission X의 장기는 다른 것인데 말이다.
금수저를 대할 때 숨겨진 대중의 심리를 떠올려 본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러니 그 다름이 멋지고 대단하고 부럽고 하면서도, 이미 갖추어져 있는 사람에게 부족함이 뭐가 있겠냐만은 그래도 뭔가 하나 부족해야만 한다는 심술보와 같은 심리도 있지 않은가. 그래야 뭔가 평범한 자신에게 작은 위로와 같은 보상이 오기 때문일까 싶다. 그런데 그 부족함이 당연한 기대에 못 미친 부족함이라면, ‘그럼 그렇지’라며 크게 한번 내리누르고 싶은 욕망도 있다는 사실. 하지만 어쩌면 그 평범하지 못한 부족함은, 부족함이 아닌 이미 그 너머의 또 다른 세상의 것을 꾸려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열린 결말로 이번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https://www.inear-monitoring.eu/en/index.htm
#InEar #ProMissionX #earphone #review #sounddesigner #music
#이어폰 #이어폰추천 #이어폰리뷰 #사운드디자이너 #밑미1일1포 #밑미
*.글 중 이미지는 제조사 상품 페이지와 본 글의 기고 매거진에서 발췌한 것임
https://www.audiopie.co.kr/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