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아기 고양이야....
새가 자주 찾아오는 우리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새집을 만들기도 하고 지난 겨울부터는 버드피더를 달아두고 새들에게 먹이도 나눠주고 가까이에서 관찰할 기회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학교 주변에 찾아오는 새들이 많아지자 새들을 노리고 나타난 길고양이들이 학교 주변에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새를 지키기 위해 고양이를 쫒아 내야 한다는 아이들과 고양이도 살아야 한다는 아이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들은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끝이 났고 학교에 찾아오는 고양이들에게 아이들은 어른들 몰래 먹이를 나눠주기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따뜻한 봄 날. 아이들 몇 몇이 아기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학교에서 키우면 안되냐고… 고슴도치도 키우고 있으니 고양이도 키우고 싶다는 이야기다. 어찌된 사연인지 들어보니 처음엔 학교 텃밭에 홀로 ‘야옹’거리는 아기 고양이를 유치원 아이들이 발견했다는 것이다. 유치원 아이들이 아기 고양이와 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초등학교 아이들도 여럿 그곳으로 달려갔고 어미 고양이가 주변 있을 것같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이들 딴에는 아기 고양이를 홀로 놓아두고 몰래 숨어서 지켜보기도 하며 엄마 고양이를 찾기 위해 노력을 한 것 같은데 하교시간은 다가오고 아기 고양이 홀로 밤을 넘기기 어려울 것같아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임시로 학교체육창고에 고양이를 놓아두고 엄마 고양이를 좀 더 찾아보기로 했다. 다음날 아이들은 자기들이 사용하던 담요도 가져다 놓아주고 학교 앞 하나로 마트에서 고양이 사료도 사다가 주기도 했다.
처음 발견한 곳이 학교 텃밭이니 금방 엄마고양이를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엄마고양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주말이 다가오고 있었고 날씨는 점점 더워져서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체육창고에서 아기 고양이가 지내는 것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학생다모임 시간에
아이들과 이 문제를 이야기 나누기로 한다. 다들 학교에서 키우자는 아이들의 의견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키울 때 문제는 없을지도 한 번 생각해 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좋은 점, 기대되는 점과 함께 걱정되는 점, 문제점도 아이들이 찾아냈다. 아이들 의견으로는 고양이를 쉬는시간마다 보면 심심하지 않다. 많은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잘 돌볼 수 있다. 고양이가 안전하게 자랄 수 있다는 의견과 고양이를 키우는 비용과 하교한 뒤 고양이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학교에서 키울 수 있다 없다는 선생님들이 결정해서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수업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하나씩 해결해 가면서 문제상황을 아이들이 해결해가며 배움이 이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기 고양이를 키우는 것보다는 잠시 돌보고 있다가 엄마고양이를 찾아주어야 한다는 의견을 계속 냈다. 졸지에 이산가족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고양이를 키워본 몇 몇의 아이들이 아기고양이를 유치원 아이들이 너무 오래 데리고 있어서 사람 냄새가 배어 엄마 고양이에게 돌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래서 고민할 부분이 더 많아졌다. 고양이를 학교에서 키우는 것에 대한 여러 상황을 먼저 생각해 보고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쉽게 결정내리지 말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들 모임이 있던 오후.
아이들은 모두 방과후 수업을 하고 있던 시간. 학교 주변을 계속 돌아다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학교 텃밭에서 상추를 살펴보고 있던 세 명의 여선생님들 주변에 가까이 다가서서 무언가 찾듯 야옹거리며 돌아다니는 고양이. 도망갈 생각도 않고 아예 한 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누워서 선생님들이 다가가도 무심히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의 엄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기 고양이의 울음소리도 점점 커져갔고 그 주변을 계속 어슬렁 거리며 자리를 뜨지 못하는 고양이 한 마리.
그런데.... 단 한 순간이었다. 아기고양이에게 천천히 다가와 살펴보듯 냄새를 맡던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의 목덜미를 콱! 하고 물어 버린 것은... 살짝 물어서 데리고 가려는 줄 알고 안심하던 우리들은 소리를 지르며 고양이를 떼어놓았다. 하지만 이미 아기 고양이는 이미 급소를 물려버린 뒤였다.
동물병원으로 데려가려고 아기 고양이를 들고 차로 달려가는 그 몇 분만에 아기 고양이를 숨을 거두고 말았다. 고통이 짧았다는 점을 위안삼아야 하나... 잔인한 동물 같으니라고... 곁에서 흐뭇하게 지켜보던 여 선생님들은 눈물을 흘렸고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아기 고양이를 든 내 두 손도 떨려왔다.
아이들에게 죽은 아기고양이를 보여줄 수는 없어서 텃밭으로 오르는 길 한 곁에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는 방과후 시간이 끝나길 기다려 아이들을 찾아갔다. 그간의 사정을 말하고 아이들에게 선생님들이 만들어준 아기 고양이 무덤을 안내해 주었다. "왜요? 왜 그러셨어요? 사람냄새 나면 엄마가 죽일지도 모른다고 했잖아요"
원망섞인 아이들의 하소연에 무어라 말을 건넬 수 없었다. "미안하다" "미안하구나"
"엄마고양이인 줄 알았어. 그래서 잘 데려가서 키워줄 줄 알았어"
"아기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고 아기 고양이가 있던 집 주변을 맴돌아서 엄마가 찾아왔는 줄 알았어"
우리 곁에서 머물던 아기 고양이는 그렇게 떠났다.
월요일이 되고나서 아이들과 다시 아기 고양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시 한 번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한 일에 대해 사과를 했고 아이들은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해 주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슬픈 일로 흘려 넘기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함께 더 고민해 보기로 한다. 학기초 수업을 설계하며 생태 프로젝트에서 버드피더 - 새관찰 - 버드세이버 활동으로 이어지면서 창문에 부딪힌 새를 어떻게 구조해야 하나라는 활동을 고민하고 있었다. 원래는 http://www.birdandmoon.com 이라는 웹사이트에서 If you Find A Baby singbird out of The Nest 라는 이름으로 둥지 밖에서 발견된 새를 구조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홍보 이미지를 만드는 활동이었다.
아기고양이의 죽음에 대한 되돌아보기 활동에서 고양이 죽음의 원인이 엄마를 잠시 떠나온 고양이를 사람들이 함부로 만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아기 고양이를 만나면... 이라는 주제로 비슷한 홍보물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만든 안내문은 학교 곳곳에 붙여두고 글을 읽지 못하는 유치원 아이들을 찾아가 다시 아기고양이를 만나면 지켜야 할 점에 대해 주의점을 알려주고 돌아왔다.
여전히 우리 학교 주변에서는 길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다.
얼룩무늬를 가졌다고 '호랑이'라고 아이들이 이름 붙인 녀석.. 학교에 가장 자주 찾아오는 텃줏대감같은 검은털이 있는 고양이는 강원행복더하기학교에 오는 고양이라고 아이들이 이름을 '행복이'라고 붙여 주었다. 갈색털을 가진 고양이 녀석은 아이들이 만든 새집 주변을 늘 맴돌아서 '사냥꾼'이라고 한다. 아기 고양이를 죽였던 고양이는 꼬리가 반쯤 잘려있고 쓰다듬으면 털뭉치가 자꾸 날려서 "뭉치'라고 한다.
이 녀석이 엄마 고양이인지 아니면 그냥 자기 영역을 지키려 한 전혀 다른 고양이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벌써 한 달 전에 일어난 아기 고양이의 죽음과 그 뒷 이야기를 담아내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이유는 나 역시 아기 고양이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인 것같다. 아이들도 이제 선생님을 원망하지 않는 것같다. 그리고 아기 고양이를 물어버린 뭉치도 용서한 것같다.
엄마고양이를 찾아주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모성애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고양이에게 마음대로 적용하느라 고양이의 습성이나 생태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잔인한 고양이가 아니라 그런 고양이의 생태를 이해하지 못한 나의 무지가 아쉬운 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누군가 아이들에게 가장 미안한 일이 무엇인가요? 하고 물으면 아기 고양이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