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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인원 세인 Jan 03. 2020

열대 우림에서 크리스마스를 외치다

2년 만에 돌아온 야생의 세계

영장류를 바라보는 영장류 인간의 야생일기 #1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야생일까.


필자는 그리 오랜 기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서 '아, 바로 이 곳이 야생이구나.'를 느꼈다. 한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스스로 만든 규칙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용기 있게 손을 엉덩이에 대면서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는 직장 상사나, 미니멀리즘을 종교로 삼은 나머지 자신이 할 일을 최소화하여 수행하는 직장 동료와 지내며 인간 세계의 야생을 충분히 경험했다.


사진1. 직장인이라면 모두 공감할 문구, 개인 애장템


그러다 문득, 진짜 야생은 어떨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가 흔히 머릿속에 그리는 바로 '그 야생'도 이렇게 치열하고 때로는 비열하고 때로는 안쓰러울 정도일까.


그래서 직접 가봤다.


사진2. 자연의 숨길만 남은 인도네시아 구눙할리문살락 국립공원에서


이왕이면 인간과 유사한 존재를 탐구하고 싶었다. 물론 야생의 숲에서 거머리를 연구할 수도 있다. 거머리도 충분히 인간과 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3. 사랑을 열렬히 나누는 지상 거머리(Tiger leech, Haemadispa picta)

위 사진처럼 성공적인 번식을 위해 서로 엄청난 노력을 한다는 점에서 일부 인간과 유사할 수 있다. 다만 모든 거머리가 자웅동체라서 한 쪽이 정자를 만들면 다른 쪽이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노력을 한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지만.


인도네시아에 위치한 야생의 숲에서 수도 없이 거머리에게 물리면서 느꼈다. 너희가 인간과 공통점이 있을 수는 있지만 연구하기엔 힘들겠다고. 내 피를 그만 가져가달라고 울부짖었다.


그럼 무엇을 탐구하기로 했는지 이쯤에서 언급을 하고자 한다. 바로 인간과 같은 영장류, 아니 유인원인 긴팔원숭이다.


이 친구들을 이야기하자면 복잡한 설명이 추가되어야 한다. 이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빠르게 설명하자면, 유인원 중 유일하게 일부일처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종으로 평균 약 35m 높이의 나무에서 생활한다.


사진4. 야생에 서식하는 긴팔원숭이 엄마 아유와 아기 아자입

'어, 분명 유인원인데 왜 이름이 원숭이야?'

라는 의구심이 든 독자가 있다면 매우 뛰어난 분이라고 칭찬하고 싶다.


그렇다, 영장류는 크게 원숭이와 유인원으로 나뉘는데 긴팔원숭이는 유인원임에도 원숭이라고 불린다. 이는 아무래도 이전에 긴팔원숭이의 존재를 몰랐던 과거에 생긴 실수일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구분을 위해 대중 강연을 가면 영문명인 '기번(gibbon)'이라고 부르곤 한다.


긴팔원숭이, 기번을 들어본 적이 없어 생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과거에 접했을 수 있다.


사진5. 2011년 방영된 동물농장에 등장한 긴팔원숭이 보리. 현재는 가정집 사육이 불법이다.


인터넷에 긴팔원숭이를 치면 '긴팔원숭이 보리'가 자동완성될 정도로 보리는 유명했다. 흔히 '거울을 보고 인간이 아님에 좌절한 긴팔원숭이'라는 제목으로 웹에서 떠도는 유명한 사진이다. 그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침팬지와 같은 대형 유인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거울 실험이 유인원 대상 자기인식, 인지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곤 했다. 거울 속 존재를 다른 개체로 인식하고, 그 개체가 무엇인지 탐구한 후, 그것이 결국 자기 자신임을 인지하면서 거울의 기능을 온전히 이용할 줄 아는 고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해당 연구는 1970년대 고든 갤럽 교수가 <사이언스> 167호에 <Chimpanzees: Self-Recognition> 논문을 게재하면서 알려졌다. 많은 동물들이 거울 속 존재를 다른 개체로 인식하는 선까지는 가지만, 그것이 결국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 우리가 인터넷에서 고양이와 개가 거울을 보고 짖거나 거울에 달려드는 영상을 볼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현재까지 거울 실험을 통해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동물은 유인원 중에서는 침팬지, 오랑우탄, 침팬지의 사촌이자 유연한 사회 구조를 가지고 열린 성관계를 하는 보노보가 있고 그 외로는 돌고래, 코끼리, 까치가 있다.


그러나 위 동물들 중에서도 수컷은 거울 실험에서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곤 했다. 이는 같은 수컷을 경쟁 대상으로 보고 경계하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기작에서 나온 행동으로 보인다.


놀랍게도 같은 유인원이지만 고릴라는 거울 실험에서 자기 인식을 하지 못했다. 긴팔원숭이의 경우, 흰손긴팔원숭이는 실패했지만 시아망(Siamang)이라고 불리는 다른 긴팔원숭이 종, 노란뺨긴팔원숭이, 흰뺨긴팔원숭이는 자기인식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와 같은 대형 유인원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나 연구 결과는 상당히 많다. 그러나 소형 유인원이자 유인원이 시작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긴팔원숭이, 기번에 대한 연구는 대형 유인원에 비하면 거의 없는 수준이다.


사진6. 주로 먹는 과일 빙빙(Bingbin)을 쥐고 있는 청소년 기번, 아모레


그래서 필자는 이 신비롭고 귀엽고 때로는 슬픈 할아버지, 할머니를 닮은 애니메이션 주인공 같은 기번을 연구하고자 인도네시아 야생에 뛰어들었다.


2년 전, 2017년 한 달 간 서베이 이후 2019년 11월 다시 찾아와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며 생긴 일들을 '야생일기'라 칭하며 연재하고자 한다.


글로는 전할 수 없는 현지의 생생한 사진과 소식은 아래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하면 좋다.


공식 긴팔원숭이 현지 연구 인스타그램

@owahalimun

필자의 현지 야생일기 인스타그램 (신규)

@wild.life.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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