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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인원 세인 Jan 04. 2020

하루 10시간 야생 숲에서 뛰어다니기

야생에 물들 준비를 하다

영장류를 바라보는 영장류 인간의 야생일기#2


야생은 어떤 모습일까, 그 안에 사는 동물들의 하루는 어떨까, 라는 막연한 설렘을 안고 연구를 수행할 야생 열대 우림 속으로 들어갔다.


열대 우림에서 연구를 한다고 해서 숲에서 텐트 치고 야전 야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가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장기적인 연구를 위해 연구팀의 선배들이 엄청난 노력을 들여 지금은 연구를 수행하는 숲에서 가까운 마을에 있는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미 10년 이상 한국 영장류 연구팀과 연을 맺은 마을이기에 마을 사람들 모두 연구자들을 알고 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 특유의 온화한 미소는 마치 따듯한 부모의 품에 안기는 느낌을 준다.


사진1. 마을 길가에 앉아 있으면 늘 바삐 움직이는 닭 가족도 만난다.


긴팔원숭이라는 유인원이자 영장류의 한 종을 연구하러 간 것이지만 또 다른 유인원인 인간과도 공생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과 공생하는 것이 긴팔원숭이 연구보다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연구팀이 머무르는 마을의 사람들은 관계 속에 존재하는 긴장감을 모두 해제시킨다. 나긋하고 상냥한 말과 함께.


마을 이름은 치탈라합 센트럴(Citalahab Central)로 연구지인 국립공원 구눙할리문살락(Gunung Halimun-Salak)입구에서도 비포장도로를 차로 달려 1시간 30분 ~ 2시간은 가야 하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도시에서 편히 살 수 있는 것들을 살만한 곳도 없고, 인터넷도 꽤 랜덤인 편이다. 연구를 시작했던 10여 년 전에는 인터넷은 무슨, 가당치도 않은 소리였지만 문명과 기술이 빠르게 전파되면서 이제는 나름 LTE도 뜬다. 필자가 2년 전에 왔을 때에만 해도 3G였는데 그 사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했다. 물론 LTE여도 한 칸만 가능하지만.


사진2. LTE 한 칸이 최선이다. 가끔 운 좋으면 마을 가장 위로 올라가 두 칸을 얻을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자연스레 문명과 멀어지게 된다. 아니, 멀어져야만 한다. 인천과 서울에서 대부분의 삶을 보낸 필자는 사실 도시형 인간에 가깝다. 사족을 붙이자면 '자연을 본능적으로 그리워하는' 도시형 인간이다. 시골이나 영장류가 있는 자연 속 연구지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그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한강에서 돗자리깔고 치맥하는 것을 좋아하고 역전할머니 맥주집에 가서 오징어입에 얼음맥주 마시며 노래를 즐기는 것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치탈라합 센트럴 마을에서 생활하는 것이 낯설었고 도시를 많이 그리워했다. 비가 미치도록 내리는 날에는 파전에 막걸리를 하고 싶었고,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시원한 아이스 라떼도 테이크아웃해서 마시고 싶었다. 모든 영장류학자나 야생 속에서 일하는 동물학자들이 처음부터 모든 일을 척척 해내고 '그래! 나는 야생에 왔으니 이제부터 야생인간이다'하고 스위치 켜듯 행동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그 반증인 셈이다.


그런데 문득 돌아보니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에 있는지, 놀랍도록 순수하고 따스한 마음을 기꺼이 내주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상당수의 한국 사람들은-물론 30년도 채 안되는 삶을 살면서 봐 온 사람들이기에 일반화하기 어렵겠지만,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살아가기에 이 부분은 감안해주시면 좋겠다- 지긋지긋한 도시와 일터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이른바 '힐링'을 하기 원한다. 단순히 원하는 수준이 아니라 갈망한다. 필자도 한국에서 쉬는 날이면 공유차인 쏘카를 빌려 영종도에 가거나 경기도 쪽 자연 속 카페에 가는 등의 일상 탈출을 일삼곤 했다. 그러나 곧 그게 얼마나 어줍잖은 힐링이었는지 이 마을에 와서 알 수 있었다. 심지어 필자는 힐링 뿐 아니라 좋아하는 일인 연구까지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가.


이를 깨달은 후부터는 철저히 야생 영장류학자의 자세와 긴장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숲을 가는 날에는 더욱 몸에 힘을 주었다.


사진3. 숲에 들어갈 때 필요한 준비를 한다. 필드(연구지를 일컫는 말) 전용 가방에 1리터 물병, 점심 도시락, 긴팔원숭이의 행동을 모을 노트, 우비, 의약품 등을 챙긴다


숲에 가는 날에는 보통 아침 5시 10분(인도네시아 시간)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면서 정신을 차리고 필요한 장비를 챙긴다. 개인 짐 외에도 숲에 같이 들어가는 현지 어시스턴트 4명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무전기, 높은 나무에 사는 동물을 보기 위한 쌍안경, 다같이 먹을 간식인 캔디와 과자를 마당에 챙겨둔다.


그 후, 개인 짐을 챙긴다. 1리터 물병, 도시락통, 행동 데이터를 모을 노트. 간혹 마음이 생겨서 대포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챙기지만 숲에 들어가서 바로 후회하곤 한다. 너무 무겁고 그걸 매고 뛰어다니면 정말 전지훈련이 따로 없다.


사진4. 과자는 어제 먹다 남은 것, 잔에는 커피가 들어 있다.


이렇게 준비를 마치면 아침 6시에 각자의 집에서 오는 어시스턴트들이 모두 모인다. 할리문은 16도~17도로 꽤 쌀쌀한 날씨이기에 따뜻한 차나 커피를 아침에 다같이 마시는 편이다. 간단히 안부를 묻고, 아침 6시 10분 즈음 아침밥을 먹는다. 요리와 청소, 연구소인 집을 전반적으로 관리해주시는 이부(Ibu, 인도네시아에서 기혼 여성을 높이 부르는 말이다) 아못의 아침은 환상적이다. 집밥 수준을 넘어 긴장이 서린 몸에 충분한 기쁨을 주는 밥이다.


사진5. 숲에 가지 않는 일요일에 혼자 있어도 이부가 요리를 해주실 때가 있다. 보기에 평범할지 몰라도 맛은 일품이다.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먹지만 이미 긴팔원숭이는 아침 5시 이전에 일어나 돌아다니기에 빠르게 숲에 가기 위해 5분 만에 밥을 해치운다. 그 후, 각자 숟가락을 챙기고 점심용 도시락통에 밥과 반찬을 꾹꾹 눌러 담는다. 숲에서 쓰는 체력이 꽤 되기 때문에 아주 풍족히 담는다. 필자는 처음에 숲에서 뛰어다니기 때문에 운동은 자연스레 되니까 밥 양을 줄여서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굉장히 허튼 생각을 해서 밥을 적게 가져갔었다. 그 날 바로 후회하고 다음날부터 고봉밥을 만들어 가져갔다. 그 후, 각자 무전기와 쌍안경을 챙기고 가방을 멘 뒤,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으면 준비 끝.


사진6. 늘 숲에 들어가는 처음까지는 컨디션이 좋다. 처음만. 아직 뛰어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소 뒤에 있는 숲에 많은 긴팔원숭이들이 살지만 모두가 인간의 유입을 반가워하지는 않는다. 여러 그룹 중 현재까지 세 그룹만이 사람에게 익숙해져서 도망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세 그룹만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행동을 관찰하고 원하는 데이터를 기록한다.


재밌는 건, 각 그룹마다 난이도가 다른데, 집에서 가장 가깝고 외부 사람들이 와서 에코투어처럼 돌아볼 수 있도록 다듬은 길이 있는 A그룹은 다니기 다소 편하다. A그룹을 가는 날에는 마음도 몸도 가벼워서 잘 웃고 어시스턴트들과 이야기도 많이 한다. 개인적으로 A그룹을 평화의 상징이라 부르곤 한다. 필자의 심신에 평화를 주기에.


사진7. A그룹의 다듬어진 길에서 찍은 필자의 사진. 바지도 장화도 모두 깨끗하다. 아직 넘어지거나 구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는 연구소에서 조금 더 가야하는 B그룹과 S그룹이다. 아직까지도 두 그룹의 난이도가 비등하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는데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연구소에서 숲 가는 길: B그룹 < S그룹

그룹의 행동 반경: B그룹 > S그룹

다니기 어려운 정도: B그룹 >= S그룹


다니기 어려운 정도에는 우기에 불어난 매서운 강을 몇 번 지나야 하는지, 산의 경사가 거진 80도인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S그룹은 가는 길에 강만 4번, 5번 지나가야 한다. 우기에는 위험도가 급증하는데 필자는 강에서 꼭 한 번은 넘어진다. 넘어진 후에는 장화에 물이 꽤 들어가서 어시스턴트들이 거기 물고기 안들어가있냐며 놀리곤 한다. 그렇다. 언제나 넘어지는건 필자만이다. B그룹은 강은 거의 건널 일이 없지만 경사가 정말 미쳤다. 올라가는 경사가 70~80도인 것도 힘들지만 더 큰 문제는 내려갈 때이다. 긴팔원숭이들이 우리를 배려해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아는 나무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때문에 두 다리뿐인 인간은 땅에서 바삐 움직여야 한다. 긴팔원숭이는 직진으로 나무 위를 움직이지만 우리는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한다. 다니다보면 가시나무인 로딴도 많고 각종 위험한 식물들이 즐비하다.


사진8. 미끄러지고 가시나무에 손이 박힌 결과물

간혹 독성이 있는 식물도 있어서 손이라도 스치면 계속 따갑고 쓰라리기도 한다. 그래서 필자는 손을 가슴에 올리고 뛰기도 한다. 웃기게 보이겠지만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긴팔원숭이를 중간에 놓치지 않고 열심히 따라다니다보면 어느새 잘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긴팔원숭이가 잘 준비를 하면 주로 큰 나무의 안쪽 튼튼한 가지에 앉아서 몸을 살짝 둥글게 만다. 나무 안쪽에 앉기 때문에 더 보기 힘들지만 대강 회색털뭉치가 앉은 채로 움직이지 않으면 자기 위한 자세(Posisi tidur, 인도네시아어)를 취했다고 간주한다. 그 후에도 움직임이 없으면 개인적으로 필자는 30분 기다렸다가 연구소로 되돌아간다. 그 시간은 그룹마다 다르지만 대략 오후 4시 30분 ~5시이다.


즉, 아침 6시 30분(그 전날 자는 나무를 아는 경우에는 아침 5시 30분)에 연구소를 출발하고 주욱 따라다니다가 오후 5시 ~ 5시 30분에 돌아오니 거진 10시간을 숲에서 보내는 셈이다.


숲의 온기와 비로 인한 축축함을 온 몸으로 받은 후 집에 돌아오면 노곤해진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숲을 가는데 비록 몸은 힘들지라도 마음과 영혼만큼은 숲의 기운으로 가득찬다.


다음 편에서는 구체적으로 필자가 긴팔원숭이의 어떤 행동을 보고 데이터를 숲에서 모으는지 기술할 것이다.


그럼, 다시 인터넷이 끊기고 문명과 멀어지는 숲으로 돌아가겠다.


#공식 인스타그램

필드 공식 계정 @owahalimun

필자 개인 계정 @wild.life.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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