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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인원 세인 Jan 12. 2020

직장 야근 풀보다 위험한 야생의 숲

내가 사랑하기에 너무 위험한 당신

영장류를 바라보는 영장류 인간의 야생 일기#4



자유로이 나무를 건너 다니는 긴팔원숭이를 비롯하여 다양한 생물들이 숨 쉬는 숲을 사랑하지만, 숲은 그와 동시에 엄청난 위험성을 자랑한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모든 야생 동물학자들이 처음부터 필드에 익숙한 것이 아니다. 필자 또한 미리 경험하기 위해 본 연구를 시작하기 2년 전, 약 한 달 동안 이 곳, 인도네시아 구눙 할리문살락 국립공원의 필드를 겪은 바 있다. 그 당시에는 설렘과 패기가 가득하여 힘들어도 너무나 즐겁고 '내가 드디어 야생 연구를 준비하는구나!'라는 자아도취에 빠져있었기에 숲이 얼마나 위험한 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본 연구를 시작했고, 자기 자신의 체력뿐 아니라 같이 숲에 들어가는 어시스턴트들의 상태도 동시에 점검하며 데이터의 균형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숲의 위험성은 충분히 중요한 요인이 된다.



사실 숲의 위험성을 얘기하자면 밑도 끝도 없이 할 수 있다. 각 그룹의 서식지마다 난이도가 다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평평한 길이 드물다. 있다고 하더라도 긴팔원숭이가 땅에서 힘겹게 두 다리로 뛰어다니는 인간을 고려하여 '그래, 인간들이 너무 힘들어 보이니까 평평한 길이 있는 쪽으로 가볼까'라며 움직이지는 않기 때문에 길은 완전하게 랜덤이라고 볼 수 있다.


아니, 우리가 가는 곳이 바로 길이 되곤 한다.


사진1. 이 정도는 난이도 최하. 하급 중에서도 하급.


위 사진은 가장 쉬운 A그룹의 길임에도 폭우와 강풍이 도사리는 우기로 인해 매우 큰 나무가 쓰러진 것을 볼 수 있다. 어찌나 복잡하게도 부러졌는지 도대체 어디를 밟아야 하며 이 나뭇가지가 내 몸무게를 버틸까 하는 의문이 수십 번 들곤 한다.


차라리 평평한 길에 나무가 쓰러지면 낫다. 애초에 급경사를 오르내려야 하는 상황이면 굉장히 난처하다. 활동성이 강한 B그룹은 얼마 전인 1월 8일에 엄청난 난이도를 우리들에게 선사했다.


무려 20분 만에 그 높디높은 산을 2번 왕복하여 오르내린 것이다. 심지어 비까지 내려서 질척거리는 진흙투성이의 땅에 경사가 대략 70도는 되어 보이는, 말 그대로 '땅'을 기어오르니 얼마나 인간의 두 다리가 나약한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사진2. 비가 오면 다같이 우비를 입고 거대한 돌처럼 변하곤 한다. 마치 겨울왕국의 숲 속 친구들처럼.


이렇다 보니 지나다니면서 주변에 가시나무가 있는지 거머리가 있는지 갈고리 가시덩굴이 있는지 신경 쓰기 매우 어렵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긁히거나 가시가 박히거나 거머리가 목에 달라붙어 피를 쪽쪽 빨아먹는 사태가 발생한다. 물론 집에 돌아올 때까지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진3. 내 목의 피를 먹던 걸 떼내고 보니 어느덧 오동통해진 거머리 친구.

첫 한 달은 목에 거머리를 달고 살았다. 우리 연구소가 있는 마을은 인도네시아 구눙할리문살락 국립공원 내 전체 마을 중에서도 거머리가 적은 편인데도 나는 늘 물려 왔다. 이 정도면 모기, 거머리, 가시나무인 라탄까지 숲 속 모든 생물들이 나를 짝사랑하는 것이 분명하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들의 사랑고백에 YES를 외치기 어렵다.


사진4. 미끄러운 경사길에서 넘어지면서 가시나무 라탄 줄기에 강하게 베였다. 베이자마자 진물이 나서 숲에서 응급처치를 했다.


인도네시아 발리나 휴양지로 잘 알려진 동남아 지역에 가면 가시나무 라탄으로 만든 공예품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실로 라탄의 줄기는 매우 튼튼해서 공예품뿐 아니라 주민들의 일상에도 자주 쓰인다. 내가 있는 마을에서는 주로 다리를 만들거나 튼튼하게 양식장을 고정하는 등, 힘이 받쳐줘야 하는 곳에 자주 쓴다.


사진5. 라탄 공예품들. 일상에서 많이 봤을 것이다.

공예품은 아름답지만 숲 속에서 만나는 날 것 그대로의 라탄은 매우 반갑지 않다. 특히 갈고리형의 가시가 달린 것은 숲에서 다니는 것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올곧게 직선으로 나 있는 가시는 그냥 쳐내면 되지만, 갈고리형은 걸린 방향대로 당기면 그대로 살에 박혀서 피를 꽤 보게 만든다.


사진6. 올곧게 난 가시의 예.

이로서 숲에 갔다 오면 내 몸에는 많은 훈장들이 남는다. 팔과 다리에는 수많은 모기 자국과 멍, 가시로 인한 상처, 목에는 거머리, 옆구리에는 넘어질 때 생긴 상처로 가득하다. 이쯤되면 새로운 상처가 없으면 아쉬움을 느끼곤 한다.


사진7. 친구가 멍치곤 예뻐서 타투 아니냐고 놀렸던 멍 사진

한국이었다면 이러한 상처들을 가리는 데에 급급하고 나름 신경쓴다고 상처용 크림을 바르거나 푹푹 찌는 여름에도 긴 바지를 입어서 최대한 가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두고 나만의 숲 속 훈장임을 인정하게 된다.


이렇게 다치고 위험한데 왜 포기하지 않는지, 왜 모든 것이 편리한 한국에 돌아가지 않은지 궁금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이 글을 쓰는 바로 이 시점에 있다. 인터넷 시그널을 찾아 위로 올라와서 우리 마을을 내려다보는데 연구소에서 가장 가까운 숲에 사는 긴팔원숭이 A그룹의 콜링(울음소리)가 지금 막 들리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이 곳에는 긴팔원숭이가 있다.

이 곳에 내가 그토록 연구하고 싶었던 동물이 있다.

이 곳에 내 꿈이 있다.


이 세 문장이면 충분히 내 팔과 다리를 내줄 수 있지 않을까?


그 현장을 세세히 느끼고 싶다면,

인도네시아 긴팔원숭이 연구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owahalimun

필자 개인 연구 계정

@wild.life.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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