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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인원 세인 Jan 12. 2020

직장을 나와 숲으로 들어가다

현실과 이상, 그 사이를 쫓아서

영장류를 바라보는 영장류 인간의 야생일기#3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몸부림치다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하던 나에게 부모님은 단 한번도 '그래서 커서 어떻게 벌어 먹고 살래?'라는 면박을 주신 적이 없다. 어떤 꿈을 갖던 어떤 흥미를 갖던 항상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셨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사진1. 인도네시아 야생 숲에서 긴팔원숭이를 관찰하는 어시스턴트(좌)와 필자(우)


사실 이렇게 이상적인 환경에서 완벽한 부모님의 심리적 지원 하에 자랐기 때문에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논하기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비단 가족과의 갈등 뿐 아니라 어디에서든 시작될 수 있다. 모든 현실 탈출 혹은 이상을 쫓는 꿈 이야기들이 다 그렇게 시작해서 그렇지.


자, 그럼 첫 문단을 조금 바꿔보자.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하던 나에게 부모님은 단 한번도 '그래서 커서 어떻게 벌어 먹고 살래?'라는 면박을 주신 적이 없다.

'커서 뭐가 되려고 그래?'와 같은 면박은 주신 적이 없긴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고등학교 입시 준비를 거치면서 현실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전공과 대학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부모님과, 그리고 나 자신과의 갈등은 매우 컸다.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내 인생 뿐 아니라 부모님의 인생에서도 하나뿐인 자녀와 매일 다퉈야 하는 어두운 시기였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꿈을 갖던 어떤 흥미를 갖던 항상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셨다.

지원군이 되어 주셨지만 경제적인 부분은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억만장자에 남부럽지 않은 부유층이라면 최소한 이 부분은 괜찮았겠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늘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부모님께서 금전적인 부담을 내게 지우신 적은 없지만 최소한 성인이라면 먹고 이동하고 특별한 활동을 하는 등 제 앞가림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이에 아르바이트 뿐 아니라 공모전이나 대회에 열심히 참여하여 생존비를 마련하고자 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그 이면에는 번아웃이 항상 있었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큰 부담을 수반한다. 특히 이미 모두가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는데 나만 그렇지 않을 경우, 친구들과 만나거나 사회 생활을 할 때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오는 외적 부담감과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옳지 않은 길을 간다는 내적 부담감이 동시에 생기기 때문에 더욱 힘들다. 내가 부모님께 어렸을 때부터 현재 20대 후반까지 줄곧 "동물이 좋아요"라고 외쳐왔기 때문에 뒤로 물러서기도 힘들었다. 즉, 나는 스스로가 만든 감옥에 갇힌 것이다.


스스로가 만든 감옥에 갇히다.


사진2. 스스로 만든 덫에 걸릴 것인가 (Dreamstime)

누구나 그렇듯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어떻게 돈을 벌어 먹고 살지, 이 정도 돈으로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부모님 부양은 어떻게 하지, 연봉 인상 협상이 잘될까 등의 무거운 고민을 안고 간다. 어느 정도 고려해야 할 고민 사항인 것은 맞다. 하지만 나는 이를 '스스로 만든 감옥' 혹은 '덫'이라 부르고 싶다.


우리는 그것이 덫임을 잘 안다. 특히 돈과 관련 해서는 알면서도 그 덫에 걸리곤 한다. 나 역시 알면서도 덫에 걸린 사람이다. 하지만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덫에 걸려 보았다. 많은 사람들은 돈을 택하고 자신이 소중히 안고 왔던 꿈이나 이상을 놓아주곤 한다. 이 글은 이러한 선택이 잘못 되었으니 어서 꿈과 이상을 좇아라!라는 내용이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과 달리 돈을 놓아주고 꿈과 이상과 손잡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살기 힘들다. 수입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일상적인 즐거움은 상당수 포기한다. 예를 들면, 인스타 감성이 충분한 연남동 카페에 자주 가서 친구들과 수다를 떤다거나, 번 돈으로 국내외 여행을 간다거나, 부모님의 환갑 생신 때 자랑스럽게 돈봉투와 꽃을 내미는 등의 소소하지만 큰 사치를 부리기 어렵다. 이러한 일상 소실의 고통이 있더라도 꿈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사진3. 당장 이 글을 쓰기 위해 더 좋은 인터넷 시그널을 찾아 산 속 마을에서 하늘에 가까운 위로 올라갔다
사진4. 의자는 크고 넓은 나뭇잎으로 대체한다. 한국 카페에서 가방 두는 의자까지 만들기 위해 총 4장의 나뭇잎을 땄다.

어디 일상 뿐이겠는가. 사진처럼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들도 포기해야 한다. 야생동물을 연구하고자 야생의 산과 열대 우림 숲에 뛰어들었지만 한국에서 단 한번도 시골생활을 길게 해 본 적이 없었다. 얼마나 무모했는지 이 대목에서 느낄 것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내 친구도 이 곳 환경을 보더니 대단하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


사진5. 씻고 있는데 갑자기 내 몸에 달려든 개구리


숲 속 강에서 내려오는 얼음장처럼 차디찬 물을 바가지로 퍼서 냉수마찰을 매일 하고 변기는 푸세식을 뛰어 넘어 완벽하게 수동형으로 작동시켜야만 한다. 비가 조금만 와도 전기가 나가는 것은 다반사이며 자고 있는데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소리로 ASMR을 친히 선사해 준다. 천장을 달리는 쥐들의 소리와 닭의 울음 소리는 모닝콜이 아닌 새벽콜이 되곤 한다.


그러나 도시형 인간이 이러한 생 야생의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솔직히 3일도 채 되지 않아서 적응했다. 그 이유는 나를 있는 그대로 둘 수 있고 표현하고 사람들과 부대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터넷 시그널이 안 잡히면 연구소 뒤에 있는 강에 가서 물장구를 치거나 마을 남자아이들과 찌를 만들어 장어 낚시를 하면 된다. 또 정전이 되어서 모든 곳이 암흑으로 물들면 초를 켜고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거나 본능에 맡긴 막춤을 추면 된다.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마당에서 멍 때리면 옆집 아주머니께서 오셔서 큰 귤나무에서 귤을 따다서 주신다.


사진6. 아니면 야생의 고양이들과 놀아주면 된다. 아니, 우리가 놀아지는 것일지도.

나는 이 마을 뒤에 있는 야생의 숲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긴팔원숭이라는 동물을 연구하러 왔지만, 되려 나 자신이 어떤 동물인지, 어떤 존재인지 연구하고 발견하고 그 속과 겉을 완전히 뒤집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분명 현실을 놓고 이상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태껏 기술한 것처럼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많은 지인들로부터 '나도 너처럼 되고 싶어' 혹은 '너처럼 살면 걱정이.없겠다'와 같은 사실이 아닌 씁쓸한 격려와 존경을 받기도 한다. 늘 행복한 것도 아니고 사람 관계나 정말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마주하는 등의 고충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을 후회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이 선택이 꽤 괜찮았노라고 이렇게 글로나마 목청 터지게 외치는 이유는 나의 '꿈'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진 7. 숲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어시스턴트 이스라와 함께. (@Jeongjoo Ha)

이상을 쫓고 싶다면 쫓길 바란다. 단, 그 이상이 이상으로 남지 않고 현실에 스며들어, 현실 자체가 이상이 되게 만든다면 어느덧 행복하고 멋진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모두에게 숲의 기운을 보내며,

유인원 세인.


인도네시아 긴팔원숭이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owahalimun

필자 개인 연구 계정

@wild.life.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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