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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나 Apr 12. 2021

그렇게 게으를거면 계획적이지를 말던지

일상 한 단락 열, 계획형 인간의 고통에 대하여

작년에 나온 수많은 MBTI 관련 콘텐츠들 덕에, MBTI는 혈액형만큼이나 익숙하게되었다. 인간을 어떻게 16가지 유형으로 나누겠느냐며 의심을 품을법도 하지만, 인스타그램에 돌아다니는 유형별 성격 특성을 읽다보면 꽤나 잘 들어맞는다.


내 MBTI 는 ESFJ.

그중에서도 J, 유난히 계획형에 치우쳐져 있다.

학교 시험기간에도 남들은 다 하는 벼락치기란 내겐 허용되지 않았다. 한 달 전부터 매일매일의 공부할 계획을 세운 뒤에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한 해가 시작되기 전에는 꼭 다이어리를 사서, 일년의 계획을 세우고 월별로 해야하는 일들을 빼곡히 적어내려간다. 일주일의 마지막인 일요일 밤에는, 끔찍히도 싫은 월요일부터 다시 돌아오는 주말까지의 할일들을 한 칸 한 칸 씩 채워두곤 한다.


어쩌면 피곤하게도 느껴지는 J형 인간의 계획은 여행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 - 바다가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짐을 챙겨 훌쩍 떠나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는 아무리 짧은 당일치기 여행일지라도 블로그와 SNS 후기를 수십개씩 보지 않고서는 좀처럼 문밖을 나서지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그럼 모든걸 계획대로 착착 잘 지키느냐?’ 라고 물어본다면, 말그대로 머쓱-해진다. 매주 플래너에 빼곡히 적힌 할일 리스트들 중, 지워지는것은 절반도 안되지 싶다. 작년부터 한주를 계획할때면 매번 쓰고있는 ‘일주일에 2번이상 글쓰기’ 는 단 한번을 지켜본 적이 없이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다.



매일 운동하기, 영어회화 연습하기 같은, 조금 더 알차게 살아보고자 계획했던 일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그 시간들은 대체로 누워있기, 휴대폰으로 웃긴영상들 보기 같은 것들로 채워지곤 한다.



그리고나서 저녁즈음, ‘아 오늘도 다 못했네, 내일 아침일찍 일어나서 해야지!’ 라고 자책하고, 다짐하며 하루를 마무리 하는 것이다. 그럴거면 차라리 계획을 세우지 않는게 어떻겠느냐마는, 지키지못할 약속이 될지언정 계획을 세워둬야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계획형 인간에게 계획세우는걸 포기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게으를거라면, 차라리 계획적이지를 말던지. 하지만 어떻게하나. 계획하고, 못지키고, 고통받는 계획형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듯 하다.

하루의 할일 리스트 중에서 몇 줄만 선이 그어진 채로 남아있을지라도, 계획을 세우며 모든 일이 내 생각대로 굴러가기를 바라는 미완성 계획형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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