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회사 마케터 이야기
나는 '브랜딩'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마케팅을 업으로 삼기도 전에 학교나 교회에서 홍보와 관련된 일을 도맡아 각각의 행사에 브랜드를 입히고 알리는 것을 좋아했고, 전공은 아니지만 '브랜딩'과 관련된 책을 읽거나 강의를 찾아 들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언젠가 브랜드를 직접 관리하고 성장시키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늘 갖고 있었다.
두 번의 에이전시를 거치는 동안에도 '브랜딩'에 대한 갈증은 늘 있었다. 생명보험사, RTD커피, 캠핑브랜드부터 대기업까지 에이전시의 특성상 다양한 브랜드를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브랜드를 핸들링 할 수 있는 시간과 범위는 대행 계약의 범위 내였을 뿐 ‘내 브랜드'를 키우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때도 시간 틈틈히 '브랜딩'에 관한 자료를 많이 찾아봤던 것 같다. 특히 플러스엑스의 페이지를 자주 찾아보는 편인데, 이들이 홈페이지에 올려주는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는 어떤 과정을 거쳐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리해나가는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레퍼런스가 된다.
지금의 회사로 오게 되었고, 인하우스 마케터가 되었다. 이제는 내가 관리하고 키워나갈 내 '브랜드'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작은 회사가 가진 한계로 인해 플러스엑스에서 보던 거창한 '브랜딩'은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상품개발팀, 프로그램개발팀 그리고 마케팅팀인 우리까지 세 팀의 팀장이 모여 일주일에 한 번씩 서로의 업무를 공유하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던져보는 모임을 가졌다. 의기투합했던 팀장님 한 분이 출산과 함께 퇴직을 하면서 아쉽게도 모임이 중단되었지만, 서로 참 많은 아이디어를 내면서 부서끼리 협력해 새로운 일도 만들어보고, 실제 적용까지는 아니지만 종종 테스트 성격으로 아이디어를 구체화해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모임에서 나는 오랜시간 꿈꿔왔던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대한 이야기를 화두로 던졌다. 큰 회사들이나 브랜딩에 관심이 많은 스타트업들을 제외하고 우리와 같은 중소기업(심지어 제조업)에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리하고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아 막연한 꿈으로만 가지고 있었는데, 이야기 할 기회가 주어졌고 그 꿈에 동의해주는 동료들이 있었다.
상품개발팀장, VMD 담당직원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 주축이 된 비공개 TF팀이 꾸려졌다. 고객 접점의 모든 곳에 우리가 정리한 '브랜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당장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 내부 디자이너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디자인 가이드를 만들면 향후 실행하는 디자인 작업에 있어서는 일관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먼저 고객 접점에서의 브랜드의 현 상황은 어떤지 살펴보고, 우리 브랜드의 핵심과 방향성에 대한 정리를 했다. 그 후에 슬로건부터 로고, 브랜드의 컬러와 폰트 그리고 각각의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적용까지 우리만의 브랜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완성했다.
물론 그 이후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대기업들도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리하거나 BI를 바꾸고 나서 적용하는데까지 자원과 인력의 한계가 있어 쉽지 않은데, 우리 같은 작은 회사는 오죽하겠나. 그렇지만 우리는 아주 조금씩 그리고 서서히 우리는 바뀌어 가고 있다. '브랜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설정한지 2년이 지났고, 이후에 진행하는 일들의 가이드라인이 되어 적용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신규매장을 중심으로 매장에 들어가는 매대가 리뉴얼 작업 중에 있고, 영업팀에서 사용하는 차량용 랩핑까지도 바뀌고 있다. 작은 시작이 변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꿈에만 그렸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작은 회사의 마케터로써 상상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의 요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 꿈꾸는 일에 늘 관심을 가지고 준비되어 있을 것 / 2. 사내에서 이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볼 것 / 3.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을 때는 주저없이 실행해 볼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이 당장 실현되지 않더라도 인내를 가지고 기다릴 것'!! 회사가 작다고 해서 꿈꾸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는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