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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Lee Mar 17. 2017

2014년 9월 말

돈을 잃어버리다

호주에 온 지 3년 쯤이 되었을 때, 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깨닫는다. 매월 초에 나가는 렌트비를 위해 넣어뒀던 돈들이 어느새인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출금내역을 살펴보니 Dan Murphy라는 곳에서 주로 80-90불씩 지불된 내역이 있고, WoolWorths, Coles Express에서 역시 70-90불씩 2-3주에 걸쳐서 약 2,000불이 빠져나간 것이다. Dan Murphy라는 상호명을 보고 나는 아내가 뭔가 필요한 것이 있어서 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뭘 그리 많이 샀냐고 물어보았다. 아내는 물론 아무것도 사지 않았고 나도 모르게 그 돈들이 빠져나간 것이었다. 갑자기 멘붕이 왔다. 어떻게 내가 쓰지 않은 돈이 빠져나갈 수가 있지? 게다가 Dan Murphy라는 곳은 알고 보니 유명한 Liquor shop이었고, WoolWorths라고 찍힌 것도 다시 살펴보니 WoolWorths Liquor인 것이다. Coles Express는 주유소이니 기름을 넣고, 술을 산 것이다. 나는 술도 마시지 않고, 주유소 주소도 내가 매번 가는 주유소가 아니다.

상황을 분석해 보니 누군가가 내 Debit카드를 사용해서 PayPass(터치)방식으로 계산을 하는 것이다. PayPass방식은 Pin넘버(비번)을 입력하지 않아도 100불 미만을 계산할 수 있어서 훔친 카드를 사용할 때 범인들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나는 카드를 분실한 적도 없고 3주 전쯤에 유효기간이 거의 만료된 카드를 가위로 IC 칩이 있는 부분까지 잘라서 4조각으로 만든 후 우리집 쓰레기통에 버린 적이 있다. 설마 이걸 누군가가 붙여서 재활용을 한 것일까?

결국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고 결국 어릴 때부터 뉴질랜드, 호주에 살아서 영어를 잘 하는 지인을 대동하고 은행으로 찾아갔다. 상황을 설명하니 조사를 하는 것에 최소 9주가 걸린단다. 카드를 사용하는 시간대의 해당 매장의 CCTV를 조사해서 내가 맞는지 아닌지를 조사한다니 믿어줄 수 밖에…

그렇게 4-5 주가 지나고 진행상황이 궁금해진 나는 확인 차 전화를 해서 어떻게 되어가고 있냐고 물어보았는데 상황을 모르는 상담원이 물어봐서 다시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을 바꿔준다. 새로 전화를 받는 사람도 상황을 모른다. ㅠㅠ 다시 상황을 설명했다. 또다시 정확한 담당자를 바꿔주겠다고 전화를 돌린다. 이 사람도 상황을 설명해 달란다. 헐… 그리고는 상황 설명이 끝나니 9주가 걸린다고 했는데 왜 벌써 전화했냐며 짜증을 낸다. 9주가 걸린다고 했으니 9주가 지난 다음에 연락을 하란다. 영어만 조금더 잘했어도 막 쏘아주고 싶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참을 수 밖에 없었다.

6주가 지난 즈음에 300불이 못 되는 금액이 통장으로 들어오고 은행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현재까지 진행한 조사에 대해 잘못 인출되었다고 밝혀진 금액을 돌려주는 거란다. 그리고 9주가 모두 지났다. 별다른 연락이 없었기에 다시 은행으로 연락해 보았다. 그랬더니 내가 뭔가 하나를 빼먹어서 진행이 안 되고 있단다. 아니 뭐라고?!?! 이렇게 황당한 일이!! 내가 중간에 전화했을 때도 아무말 안 하고, 그 후에는 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어서 일부 환급까지 해준 상태인데 조사가 진행이 안 되고 있다고???? 너무 화가 나서 전화를 받은 은행직원에게 한참을 쏘아붙였지만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빠진 한 가지를 추가한 다음 들은 말은 다시 9주가 걸린다는 것이었다.

처음 같이 은행을 가주었던 지인에게 상황이 이렇다고 얘기했더니 옴부즈맨 서비스에 클레임을 하라고 한다. 그래서 FOS(Financial Ombudsman Service)에 사건상황(?)과 진행상황을 모두 적어서 클레임신청을 냈다. 다음 날 FOS담당자에게 전화가 와서 조사가 2주가 걸린다고 했고, 2주가 지났다. 내가 전화를 하기 전에 은행의 직원 한 명이 내게 전화를 해서 돌려받을 돈이 얼마냐라고 해서 정확하게는 1,697불이었지만 1,700불 정도라고 얘기했더니 입금해 주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1시간이 못되어 1,700불이 입금되었다.

이렇게 호주에 온 이래 가장 황당한 사건은 거의 5개월이 걸려서 마무리가 되었다. 결론은 FOS는 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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