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ul Lee Mar 18. 2017

2012년 12월

자전거를 타다


영주권 신청을 해놓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원래는 2-3개월이면 나온다고 했는데 그 해 7월 1일부로 이민법이 대대적으로 바뀌는 바람에 내가 신청한 6월에 다른 신청자가 대거 몰리면서 업무가 전체적으로 지연되고 있어서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법무사의 답변이 있어서 마음을 졸이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영주권을 받기 전까진 내가 원래 일하던 웹개발 쪽으로는 취업이 어려웠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 알바를 해야했다. 내가 일했던 알바에 대해서 다 쓰기에는 그렇고 한 가지 말하자면 영주권이 나오기 전 한 동안은 투잡도 아니고 3잡을 뛰었었다.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먹고 살기 위해서..ㅜㅜ

각설하고, 알바 중 하나는 한국식품점에서 하는 알바였다. 오후 4시에 나가서 상품 진열, 빠진 상품 보충, 카운터에서 계산 등의 일을 했었다.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와서 약 20분 정도 달려서 가까운 기차역에 자전거를 세우고, 기차-버스를 타고 약 40분 후 가게에 도착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여름이었기에 날씨가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은 아니고 맑고 꽤 더운 날이었다. 기분 좋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기차역으로 가는 도중에 자전거 잠금장치를 안 가져온 걸 깨달았다. 잠금장치 없이 역에 세워 놓으면 98.56%의 확률로 누군가가 내 자전거를 습득(!)하게 될 것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니 벌써 역에 가까와져서 오며가며 30분 이상을 더 소요하게 되고 100%의 확률로 지각을 하게 되는 상황이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역까지 남은 5분 동안 내 머리는 평소와 달리 맹렬하게 회전했지만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가게까지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멜번에 온 첫날 집으로 가는 도중 길을 제대로 몰라서 골목마다 들어가야 했던 것과 달리 나는 이미 주변 지리를 거의 머리에 넣고 있었고 자전거로 가게까지 갈 수 있는 루트도 이미 머리에 떠오른 상태였다. 하지만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난 뭔가 당황스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비오듯 땀을 흘린다. 위에도 적었지만 이 날은 꽤 더운 날이었고 이 상황 때문에 땀으로 샤워를 하고 있었다.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과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을 빼면 15분이면 갈 수 있는, 사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였기에 다행히도 4시 직전에 가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자전거 잠금장치는 없었기에 가게 안의 조그만 창고에 자전거를 집어넣어야만 했었고 땀으로 흠뻑 젖은 데에다가 헬멧 때문에 엉망이 된 머리를 대충이라도 정리하려면 물이라도 한 번 적셔야 했기에 사장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원한 물로 대충 씻고 일을 시작했다.

이렇게 멜번에서의 곡절 많은 삶이 계속 된다.

작가의 이전글 2014년 9월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