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뜻함과 뜨거운의 차이
11월 10일에 아들레이드로 이동 후 SA주의 규정에 따라 2주 격리를 하고 있습니다.
SA주에서 마련한 홈 쿼런틴 앱을 설치하고 매일 아침 증상이 없다는 걸 체크하고, 하루에 3번씩 랜덤한 시간에 카메라와 위치 정보를 사용하여 격리 장소를 이탈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멜번에서 같은 부대로 배치받은 3명의 다른 병사와 같이 방 4개짜리 에어비앤비를 빌려서 격리 중인데 집 밖으로 못나간다는 걸 빼면 마치 캠핑이나 휴가를 온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식사는 배달앱을 통하여 시켜먹거나 슈퍼마켓에서 음식재료를 배달시켜서 간단한 요리를 해먹기도 합니다. 가끔은 사진처럼 호주식 바베큐를 해먹기도 하고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것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는 것입니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는 동안은 물도 충분히 따뜻하지 않을 때가 많았을 뿐더러 제한된 시간 안에 샤워를 끝마쳐야 하기 때문에 따뜻한 샤워를 즐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아침 샤워가 더 따뜻하게 느껴지나 봅니다.
숙소의 보일러가 꽤 괜찮은 제품인지 샤워를 하는 동안 물온도가 거의 변하지 않고, 뜨거운 쪽이나 차가운 쪽으로 조금씩 온도 변화를 줘도 마음 먹은대로 온도를 맞출 수가 있습니다.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물줄기를 온몸으로 받고 있으면 참 편안한 느낌이 듭니다. 뜨뜻한 정도로 온도를 맞춰놓고 한참 동안 서있으니 너무 편안해서 나가기 싫을 정도입니다. 갑자기 조금만 더 온도를 올려보자는 생각이 듭니다. 살짝 수도꼭지의 레버를 움직이니 물이 더 따뜻해집니다. 몸도 덩당아 더 노곤해집니다. 살짝 더 움직여 봤습니다. 물이 살짝 더 뜨거워지는데 몸은 그 조금의 온도 차를 견디지 못하고 뜨겁다고, 불편하다고 느낍니다.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따뜻해서 편안했는데 온도가 진짜 살짝 올라갔다고 몸이 불편하지나? 그래서 다시 살짝 온도를 내려서 편안한 온도로 맞춰놓고 생각해 봅니다. 편안함과 불편함은 이렇게 사소한 차이로 결정되어지는구나.
조금더 생각해 봅니다. 시원한 샤워는?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별로 즐기진 않지만 몸에 열이 많은 편인 저는 젊었을 때(?)에는 찬물 샤워도 꽤 많이 했습니다. 겨울에도 말이죠. 찬물도 온도를 내리다 보면 어느 정도까지는 괜찮지만 어느 순간 시원함이 아니라 고통이 되는 순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편안함이 그런 게 아닐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아무리 편안한 무언가가 있더라도 그 정도가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불편한 것이 되는 게 아닐까?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좋은 말도 너무 많이 들으면 불편해지는 것도 사실 아닌가요? 편안함에는 경계가 있나 봅니다. 다른 말로 ‘정도’, 선’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정도를 지킵시다. 선을 넘지 맙시다.
오늘 아침 깨달은 것은 ‘따뜻한 것은 편안하고 좋지만 뜨거운 것은 불편하다.’입니다. 사진에 출연해준 카일과 블레이크에 감사를 전하며 이만 아침 상념을 마무리할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