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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nam Kang Oct 26. 2020

판타지여도 좋은 메두사의 당당함

성범죄 생존자에게 헌정된 뉴욕의 공공미술

벌거벗은 여인 동상이 크고 높은 콘크리트 빌딩을 노려보며 서 있다.

어깨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뱀.

한 손에는 남성의 잘린 머리를,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었다.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루치아노 가르바티(Luciano Garbati)의 작품, ‘페르세우스 머리를 든 메두사(Medusa with the Head of Perseus)’다.    

 

메두사가 노려보는 빌딩은 뉴욕 카운티 형사법원(New York County Criminal Court). 맨해튼 남부, 차이나타운과 가까운 시빅 센터(Civic Center)에 위치한다.


지난 3월 이곳에서 미국 영화계의 거물 하비 와인스타인(Harvey Weinstein)이 강간 및 성폭행 혐의로 23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그의 나이가 68세인 것을 감안하면 종신형이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와인스타인은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미국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 된 인물이다. 2017년 10월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그가 80명이 넘는 여성을 성희롱, 성폭행해왔음이 폭로됐다. 그 중에는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펠트로 등 유명 여배우도 있었다. 뉴욕 외 몇몇 도시에서도 그의 범죄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메두사 동상은 성범죄 피해를 딛고 살아남은 여성을 상징한다. 미투운동에 대한 지지의 의미로 최근 이 작품이 형사법원 건너 작은 공원(Collect Pond Park)에 설치됐다. 영구 설치는 아니고 내년 4월까지만 이 자리를 지킬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메두사가 성범죄 피해자를 나타낼까? 그리스 신화를 ‘다시’ 읽으면 그 답이 보인다.   

  

메두사는 본래 아테나의 신전을 지키는 신녀였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메두사의 아름다움에 반해 아테나 신전에서 그녀를 겁탈했고, 자신의 신전에서 벌어질 불경한 일에 분노한 아테나가 메두사를 머리카락이 뱀인 괴물로 만들어 유배를 보냈다. 그리고 훗날 페르세우스가 악명 높은 메두사의 목을 잘라 영웅이 된다.


메두사를 처단한 페르세우스 이야기는 유럽에서 조각상으로 즐겨 만들어졌다. 나도 로마 여행 때 바티칸시국에서 메두사의 잘린 목을 당당하게 치켜든 페르세우스 조각상을 본 적 있다.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Medusa with the Head of Perseus
바티칸시국의 페르세우스 동상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메두사는 성폭행 피해자다. 처벌을 받아야 할 이는 메두사가 아니라 가해자 포세이돈이다. 피해자 메두사는 괴물로 변하는 형벌을 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참수를 당했다. 이러한 해석에 기반해 메두사는 성범죄에서 살아남은 여성으로 새롭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가르바티가 메두사 조각상을 만든 것은 2008년. 그는 이탈리아 조각가 베벤누토 셀리니(Benvenuto Cellini)가 만든 페르세우스 조각상을 보고, 역으로 메두사 입장에서 신화를 재해석했다. 페르세우스의 잘린 머리는 자신의 머리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한다.     


10년이 흘러 미국에서 미투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던 2018년, 가르바티의 메두사가 뉴욕 기반 사진작가 벡 앤더슨(Bek Andersen)의 눈에 띈다. 앤더슨은 이 작품이야말로 미투운동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여기고 가르바티에게 뉴욕으로 와달라고 청한다. 의기투합한 둘은 뉴욕에서 이 작품을 알리는 활동을 했다. 12인치 크기의 복제품을 만들어 100점 한정으로 개당 750달러에 판매하는 프로젝트도 벌였는데, 완판됐다고 한다. 가르바티는 언론 인터뷰에서 “많은 여성들이 이 작품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고백했다”고 밝혔다.

     

나도 그랬다. 그동안 그리스 신화를 묘사한 숱한 동상을 봐왔지만, 어쩐지 ‘통쾌한’ 기분을 안겨주는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성범죄 피해여성은 두 번 ‘죽는다’. 범죄 자체로 한 번, 그리고 범죄 사실을 알린 이후 벌어지는 2차 가해에 의해 한 번 더.     



얼마 전 안희정 사건을 폭로한 김지은 씨의 책 <김지은입니다>를 읽었다. 거물 정치인의 비위를 드러냈다면 피해를 감수한 용기와, 향후 벌어졌을 수 있는 추가 범죄를 막은 공로로 박수 받아야 하지만 그는 큰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로 한결 짐을 벗지 않았을까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아주 평범한 이름을 가졌음에도 그 이름이 버거워 상점에서 포인트 적립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확인 차원에서 “김지은 회원님 맞으시죠?” 하고 이름 불리는 일이 여전히 숨 막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팠다.

      

집에 들어오면 또 다른 경계가 생긴다. 어디에서든 내 존재가, 내 이름이 드러나는 것이 아직도 힘들다. 특히 투명한 약 봉투에 박힌 세 글자가 싫다. 내 이름이 인쇄되어 있다. 그 이름을 그대로 둔 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너무 찜찜하다. 내 흔적이 싫다. 지우개로 지우거나 물속에 넣어서 인쇄된 프린트가 물에 떠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자음 모음이 흩어지면 컵이나 세면대에 붙기도 하는데, 물로 잘 닦아서 내려 보내면 된다. 아니면 가위를 준비해서 아주 얇게 오징어채를 썰 듯 얇게, 아주아주 얇게 자른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도록, 가위가 없을 때는 손톱으로 아주 잘게 찢을 수도 있다. 이름을 지우는 방법을 하나씩 터득해가고 있다. - <김지은입니다> 중에서


뉴스 생방송에 나와 바르르 떨던 김지은 씨. 그와 마찬가지로 고통스런 시간을 견뎌내고 있을 박원순 사건의 피해자.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숱한 성범죄 피해자들을 대신해 메두사가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디딘 채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 같았다. 판타지지만 그래도 좋았다. 서울의 법원 앞에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For All Unknown Woman


타라나 버크의 인스타그램


하지만 이 작품이 미투운동 생존자를 상징하는 것에 대해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성폭행 가해자는 포세이돈인데, 메두사가 처단한 것은 엉뚱하게도 페르세우스다. 2006년부터 미투운동을 벌여 미투운동의 창시자로 불리는 타라나 버크는 흑인 여성이고, 흑인 여성들이 미투운동에 기여한 바가 큰데, 메두사는 늘씬한 백인 여성의 모습이다. 또 아테나가 메두사에게 내린 것은 형벌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타라나 버크는 이 작품에 X자 표시를 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미투운동은 가해자에게 복수하자는 것이 아니다. 치유하고 행동하자는 것이다”라고 썼다.      


일리 있다. 가해자는 법이 심판해야지 피해자가 처단해선 안 된다. 복수 내러티브는 또 다른 반감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성범죄와 하등 관련 없는 인생을 살아온 남성들은 이 작품이 섬뜩하면서 억울할 수 있다. 구전되는 내용도 제각각이고 해석도 다양한 신화 이야기를 성범죄와 연관시키는 것 자체가 무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미투운동 피해자를 상징하는 작품이 하나쯤 대중에 공개돼 있는 것은 좋은 일 아닐까.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듯 ‘당당해라’, ‘당신은 잘못이 없다’고 말해주는 존재가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힘이 돼줄 수 있기 때문이다.


메두사 동상은 10월 13일 공개됐다. 내가 찾아간 날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는데, 벌써 많은 사람들이 이 동상을 보러 온 것 같았다. 메두사의 발밑에는 장미꽃과 향초, 쌀, 묵주, 그리고 편지가 놓여 있었다. 편지 봉투에는 “메리를 위해 해 주세요, 모든 알려지지 않은 여성을 위해”라고 쓰여 있었다. 어딘가에 털어놓고 싶고, 위로와 응원을 받고 싶은 이야기가 메두사 발밑에 모여 있었다.          


(참고자료1)

(참고자료2)

(참고자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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