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는 인구 754만(‘23)에 면적은 우리나라 남한의 2배보다 좀 더 넓은 면적에 90% 이상이 해발 180미터 이상인 산악국가다. 인도와 중국(차이나) 사이에 있다해서 이름 지어진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나라 중 유일하게 바다가 없는 내륙 국가다. 중국, 미얀마(버마),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에 둘러싸여 있어 자연스레 주변국과의 이해관계가 많을 수밖에 없는 나라다. 주변국과의 이해 관점에서 라오스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면, 문헌 상으로 남은 라오스 역사는 우리 나라의 고려 말 조선 건국 시점인 1353년 란쌍왕국의 설립부터 시작한다. 오래 전에 중국의 소수 민족이 건너와 정착하였으며 태국의 침입을 많이 받았다. 베트남과는 큰 산맥을 두고 있어 국경이 자연스레 나눠지지만 태국은 그 유명한 메콩강이 경계를 만들고 있으므로 힘이 강성한 쪽이 쉽게 상대를 넘볼 수 있었다. 그래서 120년 정도의 오랜 기간 태국의 지배를 오래 받았고 라오스 민족 100만 이상이 태국지역으로 강제 이주되기도 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라오스 문헌역사를 시작을 알리는 란쌍왕국은 백만 마리의 코끼리라는 의미를 갖는데, 이 란쌍왕국의 왕은 이전에 캄보디아로 잡혀간 라오스 왕자 출신이 캄보디아 아내와 함께 지금의 르앙푸라방으로 와서 세운 나라다. 그리고 오른 쪽 안남산맥을 경계로 둔 베트남과는 정치적인 영향 속에서 피를 나눈 혈맹국가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인도차이나 반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들어온 미국와 소련의 대결장이 되었던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1953년 프랑스로부터 실질적인 독립을 한 라오스에도 좌우 이념 대결이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베트남 공산주의와 함께한 공산당이 자국내 부패로 자멸한 민주진영과 싸우는 과정에서 베트남과 정치적인 운명체가 된다. 라오스는 북한과 같이 공산당이 지배하는 국가지만 경제적, 사회문화적으로 민주 국가와 같이 운영되고 있다.
라오스의 중요한 3도시로는 비엔티안, 루앙프라방, 방비앵이 있다. 남쪽지역의 비엔티안이 인구 90만 정도의 수도이고 인구 70만의 북부지역 루왕프라방이 2대 도시로 고대 수도였던 곳이다. 루앙프라방이 고대 수도였지만 1560년에 란쌍 왕국 세타티랏 왕이 강성해진 태국을 피해 남쪽으로 천도한 곳이 비엔티안이다. 우리 나라로 보면 개경에서 서울로 옮긴 셈이다. 루왕프라방은 유네스코에서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정도로 우리 나라의 경주와 같이 보존되는 지역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비앵이라는 곳이 있는데 우리나의 가평, 중국의 계림 등과 같이 산과 물의 도시다. 그래서 세계의 젊은이들의 몰려 와서 엑티비티를 즐기는 곳으로 유명하다.
3일 간 진행된 라오스 여행은 루앙프라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비엔티안은 현대 도시라고 한다면(현대 도시라 하더라도 우리 나라의 중소도시보다 작은 규모다) 루앙프라방은 역사 도시다. 비엔티안에서 루앙프라방으로의 이동은 열차나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는데, 공항은 일본의 힘으로, 열차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일환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비엔티안에서 루앙프라방까지의 거리가 300키로 정도 되었는데 우리가 이용한 고속열차는 2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1시간 정도 거리에 다음 말 액티비티로 즐길 방비앵 역이 있었다. 루앙프라방에서 관광은 황금칠로 도배한 거대한(실제로는 아담하게 느껴짐) 사원 몇 곳과 신비한 색채를 띠는 꽝시 폭포,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산(?)인 100미터 높이의 푸시산 등정, 이 나라를 관통하는 젖줄 메콩강 유람, 몽족의 특산품을 판매하는 몽족 야시장, 그리고 다음 날 새벽에 진행된 탁발 체험이었다.
루앙프라방은 루왕은 크다는 의미고 프라방은 황금불상의 의미로 큰 황금불상이라는 의미다. 120여년의 태국 지배뿐 아니라 약 70년 간의 프랑스 지배도 받으면서 독특한 도시 건축물의 모습을 나타낸다.
꽝시 폭포는 사슴이 파헤친이란 의미라 한다. 꽝시 폭포 맨 위에 사슴 조형물이 아마도 그 의미를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입구는 우리 나라 지리산에서 의도적으로 키우고 있는 반달가슴곰을 사육하는 곳부터 시작된다. 꽝시 폭포로 올라 가는 동안 좌우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반달곰이 우리는 반긴다. 조금 더 울창한 숲을 지나면 7단계로 구성된 1단계 옥빛의 꽝시 폭포가 자태를 드러낸다. 빛이 반사되어 눈부신 계단식 자연 폭포가 밀림과 함께 잘 어우러져 있다. 마치 아담과 이브가 나체로 몸을 드러낼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실제 서양에서 온 청년들은 하얀 살갗을 드러내고 옥빛 물 속에 몸을 담긴 채 유유히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매 단계마다 다양한 모습의 옥빛 꽝시 폭포는 맨 마지막 제일 높은 단계에서 절정을 이뤘다. 아래 단계에서와는 차원이 다른 높이에서 여러 모양으로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예쁘게 모양을 낸 폭포의 물줄기란 느낌이 들 정도.
라오스의 날씨는 우기와 건기로 나뉜다. 건기는 10월에서 4월로 11∼4월까지는 건기를 이루는 아적도성 몬순 기후이다. 기온은 12∼2월의 시원한 달에는 평균 16∼21℃이고 3∼4월에는 32℃가 넘는다 라오스관광의 성수기는 건기라 한다. 반면 우기는 5월부터 9월까지인데 연평균 기온은 28도지만 4,5월 중에는 38도까지 오른다. 우리가 머물렀던 6월말에서 7월초는 우기에 해당하지만 마지막날 아침에 잠시 내린 빗줄기를 제외하면 3일 내내 맑았고 기온도 한국보다 낮은 26도 내외였다. 가이드 말을 빌리면 라오스 관광 성수기라는 건기보다 우기 때가 관광하기는 더 낫다고 한다. 건기 때는 먼지가 너무 많아 고생하고 우기 때는 물의 색깔이 잦은 비로 탁해지기 때문에 둘 다 단점이 있지만 우기 때도 관광하기에는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아마,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는 말일 수도). 아무튼 우리 일행의 관광 일정은 날씨 상으로는 최고였다.
다음은 메콩강 유람이었다. 우리 한강과 같은 너비의 강이 라오스 국토 전역을 흐른다. 티벳에서 발원해 태국을 거쳐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까지 무료 5개국을 거쳐 흐르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진정한 젖줄이다. 강의 규모에 걸맞게 강에서 잡힌 물고기 종류와 크기는 바다의 큰 고기와 비슷할 정도이고 염전도 있어 강에서 소금도 생산된다고 한다. 메콩강 유람선에서 열대과일을 맘껏 즐기며 라오스의 가장 큰 기업이자 물까지 생산하는 라오비어를 마셨다. 처음 안 사실인데 라오 비어는 보리가 아니라 쌀로 생산된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그래서인지 더 맛있게 느껴졌다. 라오비어는 세계 맥주 대회에서 여러 번 금상을 받기도 한 이곳 최고의 특산물이라고 한다. 쌀로 만들면 맥주라 부를 수 없는 것 아닌지 궁금하다. 하긴 밀맥주도 있으니 쌀맥주라 해도 될 듯... 강 바람을 헤치며 이곳 열대 과일을 안주로 목넘김 부드러운 쌀맥주, 라오비어와의 만남은 이곳 라오스에서 최고의 시간을 만들어 줬다.
이어 몽족 야시장으로 이동했다. 몽족은 라오스역사에서는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철저하게 이용 당하고 버림받은 슬픈 종족이다. 미국은 베트남 전에서 이곳 산악 지형을 잘 아는 몽족이 필요했고 몽족을 비밀부대로 만들어 베트남 전에 이용하다가 전쟁에 패배하고 철수하면서 이들을 버리고 간 것이다. 그때부터 라오스 민족의 배신자가 되어 라오스와 베트남의 공격대상이 되어 뿔뿔이 흩어진 채 생존의 몸부림을 치며 살아온 종족이다.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자신들의 특산품을 비롯해 의류 등 각종 생활용품을 파는 곳이다. 우리는 이곳에서는 비교적 거금(?)인 8달러로 커플 티셔츠를 구입 했다. 다음 날 탁발행렬 때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좋은 가격에 잘 구입했다고 했는데, 집에 와서 세탁하고 나니 줄어들고 올이 나가 버려야 할 것 같다.
시장 중간에 푸시산을 오르는 계단이 있었다. 푸시산은 신성한 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100미터 밖에 안되는 높이의 산이지만 더운 날씨에 계단으로만 이루어진 곳이라 오르는데 꽤 힘이 들었다. 오랜 풍파를 견뎌온 고색창연한 계단을 오르는 동안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과기묘한 불상들을 마주했다. 정상(?)에 오르니 루앙프라방의 시내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와 더위로 답답해진 가슴을 확 트이게 해줬다. 도시 전체가 유적지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도시를 이루고 있는 붉은 황토색 지붕들이 석양의 빛으로 반사되어 역사를 간직한 도시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완성하고 있었다. 중앙에는 생명의 젖줄, 메콩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간간히 부는 시원한 바람이 땀으로 덮힌 얼굴을 식혀 줬다. 꼭대기 건물 속의 불상도 보고 한 바퀴 둘러 보니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 곳이 나온다. 바로 루앙프라방의 석양을 보기 위해서다. 곧 있을 석양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기다리려다 기다리는 일행을 위해 아쉬움을 두고 하산했다. 다만 석양 직전의 사진은 건졌다.
다음 날 새벽, 특별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일찍 나섰다. 어찌보면 이걸 보기 위해 여기 왔을지도 모른다. 붉은 주홍빛의 가사를 입은 승려들의 탁발행렬! 노승에서 동자승까지 줄지어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육의 양식을 얻는 과정이다. 라오스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는 달리 불교를 국교로 하고, 국민의 90% 정도가 불교를 믿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승려들은 이곳에서 존경받는 직업에 속한다. 탁발과정은 승려들의 수련 과정에 속한다. 상좌불교의 특징은 수련을 통해 자신을 구원하고 해탈하여 영생을 얻는 것이다. 무소유를 실천하고 필요한 만큼만 얻어 생활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불자들은 보시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고 이렇게 공덕을 쌓아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태어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스님들은 탁발을 통해 얻은 것을 필요한 것만큼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다시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준다고 한다. 3달러를 내면 탁발에 참여할 수 있는데 찰쌀밥과 과자가 담긴 용기를 제공하고 탁발에 참여하도록 방석이 깔린 의자 자리를 제공해 준다. 현지인들은 양말을 벗고 꿇어 않아 탁발행렬을 맞이하는데 우리들은 의자에 앉은 채 그냥 참여해도 된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행렬이 오면 비닐 장갑을 낀 손으로 음식을 덜어 탁발 그릇에 담으면 되는데 현지인들은 기도하고 담는다고 했다. 과자는 동자승을 위한 것이라 해서 얼굴을 보고 어려 보이는 스님한테 과자를 넣어 줬다. 순식간에 찹쌀을 담은 통과 과자가 동났지만 의미 있는 행사에 참여했다는 느낌에 왠지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왓 씨앵 통이라는 사원을 방문했다. 왓 씨앵 통은 이곳 말로 황금도시의 사원이다. 과연 처음 만남 왓 씨앵 통은 온통 금빛으로 칠해져 있었다. 이 사원은 1560년 란쌍왕국의 세타티랏이 세웠으며 1975년 왕정이 무너질 때까지 왕실의 주요 행사가 열리는 왕가의 주요한 사원이었다고 한다. 한 눈에 들어온 왓 씨앵 통 사원은 첫 모습은 여러 겹으로 되어 있는 지붕이다. 다음 날 본 왓 마이 사원 역시 마찬가지로 이곳의 사원들은 여려 겹의 지붕이 사원의 위엄과 멋스러움을 더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왓 씨앵 통 사원은 벽화로 유명하다. 타일로 된 양각 부조형태인데 본 사원 앞을 장식하고 있는 생명나무를 표현한 부조가 눈에 들어왔다. 본 사찰 옆에는 왓 씨앵 통 건물 중 가장 화려한 건물이 있었는데 아예 황금칠로 도배된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왕가 장례용품을 보관하는 곳이었는데, 거대한 왕의 시신 운구 수레가 건물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큰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부처가 타는 뱀인 거대한 나가로 장식된 운구함에서 왕가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운구함 주위로는 수많은 부처들이 둘러싸 있었는데 아마도 왕가를 보호한다는 의미를 가졌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보았다. 본 사찰 안으로 들어가니 우리의 부처와는 달리 조금 눈이 커다란 좀 장난스러운 모습의 금빛 부처가 자리하고 있었고 출입구 쪽에는 우리나라의 성철스님과 같은 고승의 좌상이 역시 금빛으로 놓여 있었다.
사원을 빠져 나가니 바로 메콩강이 나타난다. 메콩강변에 이 사원이 자리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어서 이곳 아침 시장을 구경하러 갔다. 아침 시장에서도 전날 봤던 다양한 기념품과 의류들도 있었지만 아침 시장에는 먹거리가 많은 부분은 채우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띤 것은 마치 바다 고기 같은 어마 어마한 크기의 메콩강 물고기들이었다. 전날 잡은 것이라 큰 눈을 가진 물고기가 금방이라도 푸더덕거리며 움직일 것 같다. 각종 과일, 채소류가 즐비했고 나무토막 같은 큰 죽순이 기억에 남는다. 각종 육류를 시뻘건 채로 탁자 위에 뒤엉켜 있는 모습은 우리 6,70년 대 시장 모습이었고, 모습은 완전히 다른 시커먼 옹기종기 꼬물거리는 식용 개구리도 팔고, 물소 물렁뼈와 물소 털이 그대로 있는 물소가족도 식용으로 팔고 있었다. 아침 식사 전이라 뭔가 입에 넣을 것을 이리 저리 살피는 중에 각종 튀김류는 호텔 식사를 위해 스킵하고 우리 나라의 풀빵과 같은 코코넛 풀빵에 시선이 머물렀다. 안에 팔 같은 앙꼬는 없었지만 부드럽고 고소한 맛은 일품이었다.
그리고 출발 시간에 여유가 있어 동네 한 바퀴 둘러 봤다. 길 가에 이름 모를 예쁜 꽃들이 피어 있어 여러 번 카메라에 담는 동안 동네 시장에 다다랐다. 시장 입구에 주차된 오토바이 규모라 봐서 아주 큰 시장으로 느껴졌다. 시장 속으로 들어 가니 아침 시장에서 봤던 싱싱한 과일, 야채들과 갓 잡은 물고기 수많은 난전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특히 정육점 규모는 아침 시장에서 봤던 규모의 5~6배는 되었는데 주변에 큰 개들이 돌아 다니며 버려지는 고기 덩어리를 노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음에 간 곳은 왓 마이 사원으로 이곳 말로 새로운 사원이란 뜻인데, 옆에 있는 왕궁(지금은 왕궁박물관)에서 전용으로 사용했던 사원이라 한다. 왓마이 사원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 앞에 세월이 흔적이 그대로 느껴지는 멋진 불탑들이 있는데 18세기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불탑 옆에는 돌아가신 분(아마 권력자였을 듯)들의 영정사진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왓 마이 사원의 지붕도 왓 씨앵 통의 지붕처럼 다겹의 지붕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지붕 끝에는 나가(불교 신화동물)로 장식되어 있었다. 70년에 걸쳐 새롭게 지었다해서 아마도 새로운 사원(와 마이)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라오스에는 새해에는 3일간 대규모 축제 행사를 하는데 4월 14일~4월 16일 기간(이때가 이곳의 새해라고 한다.)에 열린다. 이때 왕궁에 있던 프라방을 이곳에 옮기는 행사를 하는데 프라방은 90%가 순금으로 되어 있는 불상으로 옆에 있는 왕궁에 모셔져 있었다. 기둥은 금색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부처의 일생이 그림으로 새겨져 있었다. 문틀도 금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사원 내외벽은 붉은 색과 검정색으로 되어 있었다.
옆에 있는 왕궁은 1904년에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왕족을 위해 지어졌기에 프랑스 미술풍이 더해졌다고 한다. 1975년 왕정이 폐지되면서 왕족은 유폐되고 이곳은 박물관이 되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지막이었다는 커다란 동상이 있었는데 당당한 모습에서 당시 위엄이 느껴졌다. 이곳의 내부 모습은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눈으로만 담았는데 금빛으로 장식된 멋진 사원 속에 프라방이 모셔져 있었다. 순금 90%로 만들어진 프라방 83센티 크기에 50키로 정도의 무게라고 한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왕실 건물이 보였는데 지금은 왕정 지배 기간 동안 각종 유품과 유물이 보관된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6월 말 이곳 기온은 우리 나라와 비슷했다. 따가운 햇빛이 내려쬐는 동안 벌써 온몸에 땀이 흥건하다. 이를 식혀 줄 최고의 장소. 메콩강변에 자리한 커피숍이었다. 우리나라의 큰 한강을 생각하면서 주변에 성냥곽 같은 아파트 건물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강기슭을 생각하면 된다. 그런 좋은 위치에서 강을 내려다보며 스치는 강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아이스커피! 게다가 이곳 열대 과일까지 먹으며... 그때의 기분을 생각하면 여행을 다녀 온 지 한참 지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게 좋다.
드디어 엑티비티 도시 방비앵으로 향했다. 방비앵은 이곳 산과 물의 도시로 중국의 계림, 우리나라의 가평과 같은 곳이다. 오전에 비가 왔다고 해서인지 메콩강의 지류인 쏭강이 황토색으로 변해 있었다. 저기서 카약을 하고 튜브를 타고 보트를 탄다고 생각하니 왠지 두려움이 밀려온다. 우리의 두려움을 눈치 챈 것인지 처음에는 이곳 석회 동굴인 코끼리 동굴로 데리고 갔다. 늘 느끼지만 석회 동굴 내부는 비슷비슷하고 생긴 모양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붙는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후덥지근한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최적의 장소란 점이다. 그리 길지 않는 시원한 동굴을 관람하고 이동한 곳은 짚라인 타는 곳. 일행 중 짚라인에 도전하겠다는 사람은 우리 부부와 우리 나라 가면 나이 제한으로 탈 수 없기 때문에 꼭 타야겠다는 70대 여성 두 분. 8단계로 이루어진 짚라인은 그야말로 스릴 속의 즐거움 그 자체였다. 안전장치와 보호모자를 착용하고 난 뒤 높은 장소로 이동하여 짚라인을 탔는데 두려움은 잠시 금세 그 상황을 즐길 수 있었다. 군대 가서도 안해 본 것을 내 돈 내고 이런 모험을 즐기리라 생각했겠는가? 거의 마지막 단계에는 300미터가 넘는 긴 강을 엎드려 건넜는데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어서 튜빙, 튜브 동굴 탐험 장소로 갔다. 튜빙은 튜브를 타고 동굴에 설치되어 있는 밧줄을 당겨 물을 거슬러 가면서 머리에 쓴 라이트로 동굴을 구경하는 것을 말한다. 동굴 밖으로 흘러 나오는 누런 물결이 도전을 주춤하게 한다. 사고 날지 모르기 때문에 앞 뒤로 이곳 경찰들이 직접 튜빙을 도와 준다는 말이 더 겁나게 한다. 그런데 튜브에 몸을 싣고 드러 눕자 말고 즐거운 도전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줄을 당기면서 시커먼 동굴을 따라 물결을 거스르는 재미에 금세 빠져버렸다.
이어 카약 경험이다. 보트 젓는 법도 모르는데 카약이라니? 기우였다. 두 사람이 탄 카약 뒤편에 이곳 현지인이 보트를 저어 주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고 우리가 잠시 보트 젓는 방법을 배운 것은 그냥 멋진 모양을 연출하기 위한 것이었고 상대편 카약에 물장난을 치기 위한 것이었다. 카약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강에서 튜빙을 즐기는 외국인들과 물장난도 하고 함께 여행을 하는 여행 동반자들과도 물을 뿌리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는 버기라는 4륜 자동차를 이용해서 블루라군으로 향했다. 버기를 타겠다는 사람은 우리 부부밖에 없어 우리 부부 버기 앞에는 가이드가 버기를 타고 인솔했고, 우리 부부 뒤에는 버기 운영회사 직원이 만약을 대비해서 버기를 타고 이동해서 우리 부부만 버기를 탔지만 버기 3대가 이동했다. 한국에서도 타본 적 있는 ATB와는 차원이 달랐다. 30분이상 비포장 도로를 이동해야 하는데 도로 곳곳에 소떼들도 이동할 뿐 아니라 오토바이, 자동차가 함께 이동하기 때문에 방심할 수 없다. 게다가 도로 곳곳이 심하게 패여 있어 진흙이 튀기 일쑤고 먼지를 뒤집어 쓰는 것은 기본이다. 스릴을 즐기면서 이동하는 동안 좌우로 스치 가는 방비앵의 아름다운 시골 풍경도 눈에 가득 담으면서 이동했다. 중간에 2번 쉬면서 음료수도 먹고 포토타임도 가지게 해 줬다. 단지 심한 굉음과 먼지를 일으키기 때문에 이곳 주민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블루라군은 세계 각지의 사람들로 붐볐다. 우기여서 그런지 블루라군의 물은 머리 속에 그렸던 것만큼 푸른 색깔은 아니었지만 실망할 정도도 아니었다. 외국인들 위주로 다이빙 도전이 이뤄지고 있었는데 아내도 아쉬웠는지 물에 뛰어 들었고 그네를 이용해서 다이빙도 하고 낮은 나무 위에서 다이빙도 하면서 TV에서 본 모습을 연출해 보려 했다. 어느 정도 물놀이를 마치고 다시 버기를 타고 내려 왔다. 내려 올 때는 좋은 길로 내려와 금방 쉽게 내려 올 수 있었다.
그리고는 롱테일보트를 타러 갔다. 모터를 이용한 보트이므로 다른 것에 비해 이건 껌이었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물살을 가르며 나가는 동안 방비앵의 아름다운 계곡을 즐기면 된다. 방비앵을 둘러싼 산의 모습은 베트남의 하롱베이가 물 밖으로 나온 모습을 연출하듯 아름답다. 모터의 스피드를 즐기는 동안 절로 함성이 나온다. 강가에 물소떼가 유유히 놀고 있고, 하늘 위로 열기구들이 떠 다니고, 경비행기도 떠 다닌다. 기분 최고다.
마지막까지 꽉찬 하루를 보내고 강변에 자리잡은 호텔에서 석양을 맞는다.
마지막 여행지는 비엔티안이다. 비엔티안으로 가기 전에 이곳 방비앵에서 우기 중에 처음 장대비를 만났다. 비가 오니 산책할 수도 없어 챙긴 수영복을 꺼냈다. 야외 수영장에는 우리 부부밖에 없었다. 장대비 속에서 수영을 즐기는 모습... 아무나 아무 때나 경험할 수 없는 호사 중에 호사다. 수경 없고 물이 깊으면 수영을 잘 못하지만 발이 닿는 얕은 곳만 다니면서 제법 빗속의 수영을 즐겼다.
이어 호텔뷔페로 아침을 먹었는데 이곳 쌀국수를 먹을 수 있도록 해줬다. 라오스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안남미도 짓지만 찹쌀 농사가 70%일 정도로 더 많이 짓고 가격도 찹쌀이 더 싸다고 한다. 알다시피 안남미도 좋은 쌀이지만 풀기가 없어 날리는 쌀이라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곳에는 밥을 지을 때 찹쌀을 주로 하고 거기에 안남미를 섞기 때문에 우리 쌀밥과 비슷하다. 아니 우리 쌀밥보다 훨씬 맛있었다. 이런 좋은 쌀로 만든 쌀국수 역시 기대를 갖게 했다. 가이드 말로는 쌀국수도 두 종류로 나오는데 하나는 베트남식 쌀국수 면이 있고, 라오스의 쌀국수가 면이 따로 있는데 이것을 맛 보라고 했다. 라오스 쌀국수 면은 베트남의 그것보다 더 굵고 더 하얀 면이었다. 나는 아예 처음부터 라오스 면으로 쌀국수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다른 먹을 것이 없었다면 몇 그릇 더 했을 것이다.
비엔티안까지는 고속도로로 이동했다. 고속도로 요금이 만만찮다 보니 이 지역 사람들은 잘 이용하지 않는단다. 그래서인지 도로가 텅 비었다. 비엔티안은 이곳 수도다. 과거 수도 루앙프라방에서 북쪽의 세력에 밀려 란쌍왕국의 세타티랏 왕이 1563년에 남으로 이동하며 세운 도시가 비엔티안이다. 우리로부터 조선이 개성에서 서울로 천도한 셈이다. 그후 란쌍은 루앙프라방, 비엔티안, 짬파싹 왕국으로 분리된 이후 1827년 비엔티안 왕국이 태국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비엔티안의 수도로 기능했다.
비엔티안에서는 몇 군데 쇼핑, 마사지 등을 둘 보는 시간이 있었고 관광지 두 곳을 갔는데 그 하나가 탓 루앙이다. 탓 루앙은 이곳 말로 위대한 불탑이라는 의미다. 황금색 부처의 사리가 모셔진 탑이라 한다.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시 여기는 건물로 란쌍왕국 세타티랏 왕이 세웠다. 거대한 황금빛 탑이 먼저 들어오고 그 앞에 우뚝 선 동상이 있다. 그가 바로 비엔티안으로 수도를 옮기고 이 불탑을 세운 세타티랏 왕이다. 전체가 황금색으로 덮혀져 있는 이 불탑은 높이도 45미터에 이르는데 신도들이 올라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이 탑은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찾아 기도하는 불탑으로 라오스 화폐에도 새겨져 있을 정도로 라오스 국민에게 신성이 여겨지는 건축물이다. 불탑 내부를 둘러보니 이 탑이 파괴되어 보수되는 과정을 그린 그림판들이 있었고 지역의 각종 불교 관련 기념물과 불상 같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불탑 네 모서리에는 커다란 북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탓 루앙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사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남 사원과 북 사원이 남아있고 나머지는 파괴되었다고 한다. 개방되고 있는 남쪽 사원을 들렀다. 사원 벽에는 사원 건립에 도움 준 사람들의 얼굴과 금액이 새겨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여러 불상이 우리를 반긴다. 불상들의 모습들이 한결같이 인도 힌두교의 세 신을 닮았다. 가이드에 물어보니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불상이라 했다. 루앙프라방에서 봤떤 라오스 최고의 승려의 금빛 좌상도 놓여 있었고 안쪽에 거대한 금빛 와불이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사원 한쪽 끝에 구부정하게 앉아 담배를 피고 있는 승려 모습을 보며 이곳 스님들의 신심을 의심하는 눈총을 보내기도 했다.
빠두사이, 라오스 독립기념문이며 파리의 개선문을 닮았다. 첫날 도착해서 이동할 때부터 여러 번 마주했던 것을 야경을 보기 위해 늦게 이곳을 찾았다. 과연 불빛 조명과 더불어 기념물 앞 물에 비친 모습까지 근사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 건축물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기념하여 승리의 문이라는 이름으로 건립되었다. 세계 2차 대전과 프랑스 독립을 위해 싸운 군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건축물이다. 조명을 받은 근사한 건물이란 생각에 사진 찍는데 급급해서 규모는 미처 몰랐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7층 건물에 높이 49미터 너비 24미터로 상당한 크기의 건축물이었다.
마지막에 들렀던 비엔티안 야시장은 메콩강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규모도 크고 시장 길이도 꽤 길었다. 이곳 젊은이들을 비롯하여 관광객까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려 기대를 했으나 쓸만한 물건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라오스는 제조업이 거의 없는 나라이므로 거의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된 물건들이었는데 한 눈에 보기에도 허름해 보였다. 사람들 틈을 헤집고 한 바퀴 돌고 난 뒤, 시장 옆의 강변을 올라 형형색색의 불빛 속에서 각종 놀이 기구에 몸을 담고 공휴일을 즐기는 모습을 보았다. 흡사 한국의 지방 축제에 가면 볼 수 있는 놀이공원과 같았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로 조금 이동하니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문재인대통령 방문 비석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카메라에 담고 난 뒤 야시장 입구로 돌아 왔다.
꽉찬 3일 여행을 마쳤다. 3일 동안 3개 도시를 여행하면서 최빈국의 하나라는 라오스에 걸인이 없는게 이상해서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이곳 경찰이 구걸을 못하게 하기 때문이란다. 비록 가난한 나라지만 추위도 없고, 태풍도 없는 자연 환경에다 비옥한 토지로 먹을 것이 풍부하기 때문에 걱정할 일이 없는 나라라고 했다. 그래서 이들은 큰 욕심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래서인지 라오스 국민들은 만나는 사람을 편하게 해 준다고 느꼈다. 이곳에는 루앙프라방과 비엔티안 두 곳에 한국어과가 있는데 아주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 말은 우리 한국 사람을 좋아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더 호감어린 눈길이 느껴졌다.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 많은데다가 치안도 좋고 사람도 좋고 물가도 낮은 아주 최적의 여행 장소가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여행한 최고의 장소를 수정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행복한 3일이었다.